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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야기] 토리야마 아키라 별세. 두서없이 쓰는 글

일본 만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을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vhs 시절 압도적인 인기를 끌던 콘텐츠들이었고, 후속작과 리메이크가 제작되었으며, 이들을 공중파 tv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게임이나 새로운 판본으로 출간되기도 했고요. 심심하면 절판내고 도중에 출판을 내던지는 만화계에서 꾸준히 오랜 기간 동안 작품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많은 것을 설명해 줄 겁니다.

 

여하튼. 그 두 작품을 만든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의 사망 소식이 오늘 전해졌습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의 건강이상설은 근래 계속해서 들려오던 것이었고, 그 동안은 그저 소문이라고 치부하고 넘어왔었습니다만...

 

여하튼 여러 커뮤니티 등에서 그에 대해 다루는 글들을 보고 이런저런 할 말이 생각나 이렇게 타자를 두드립니다.

 

두서 없이 그냥.

 

 


 

 

창작자를 논함에 있어 그가 남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대표작은 앞서 이야기했듯 단연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로 꼽히곤 합니다. 물론 걸형사 토마토나 코와 등의 단편들도 나름대로 알려져 있긴 합니다만, 까놓고 앞의 저 두 작품에 비할 바는 아니죠.

 

혹자는 80년대부터 활동한 작가의 대표작이 고작해야 저 둘밖에 되지 않느냐곤 합니다만, 실제 연재기간을 따지자면 15년을 넘는 기간 동안 주간연재를 지속한 결과물이고, 당대 주간연재 포맷에서 소년만화의 단행본이 40권은 커녕 30권이 넘게 나왔던 경우가 드물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연재기간 대비 작품이 적게 나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무엇보다 저 두 작품은 당대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었습니다. 드래곤볼의 말도 안되는 전세계적 흥행에 묻히는 감이 있지만, 닥터슬럼프도 소위 말하는 원탑을 찍었다 평가되는 작품이니까요. 역대 기록에서 닥터슬럼프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노라면, 대체 왜 초창기 잘 나가지 못했다는 드래곤볼이 꾸준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드래곤볼... 앞서 말도 안되는 전세계적 흥행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일본 만화 원작 가운데 드래곤볼 이상으로 인기를 얻은 콘텐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2020년대에 들을 정도로 지구적인 히트를 기록했던 작품입니다. 작가의 연재 종료 이후 작가의 손을 떠나 작품을 위시로 한 산업이 굴러간 케이스는 종종 있지만, 한창 연재 중에 이미 작가가 연재종료 여부를 결정지을 수 없을 정도로 국가적인 산업 규모가 되어 버린 케이스는 드래곤볼 이후로 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니까요.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은 각기 한국의 명랑만화와 소년만화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 두 작품이 가진 작품 내적인 매력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두 작품이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된 것이 9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만. 실제로는 그 훨씬 이전부터 해적판으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만화책을 구매하기 시작한 시기는 90년대 중후반부터이기 때문에 사실 저조차 해적판 실물을 본 것은 일부에 불과합니다만, 문방구에서 팔던 500원짜리 손바닥만한 책이나 정식 판본보다 500원 더 싼 1500원 짜리의 실물을 본 적이 있긴 합니다. 뭐. 여하튼.

 

닥터슬럼프는 한국의 명랑만화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물론 명랑만화는 검열이 기본인 한국에서 자리잡힌 장르였으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정한 영향 정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동화적인 요소에 현실에서의 팍팍함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명랑만화 특유의 알싸한 맛이 베이스가 된 상태에서, 이런저런 판타지나 sf적 요소들이 가미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닥터 슬럼프나 도라에몽 등이 여기에 포함되었던 거죠.

 

반대로 드래곤볼의 영향력은 명확했습니다. 상기의 명랑만화의 수명은 드래곤볼의 정식 수입으로 끝이났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드래곤볼의 파급력은 막강했고, 한국 만화에 끼친 영향도 훨씬 명확했습니다. 예컨데 당대 드래곤볼의 영향하에 있다 평가 받았던 소년만화를 말하라고 한다면 마이러브, 까꿍, 12지전사, 붉은매, 드래곤로드, 다이어트 고고, 뱀프1/2, 미스터부와 거꾸로가는동화, 토이맨 등등등을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뾰족뾰족해지는 파워업, 장풍대결, 퓨전 등등 드래곤볼이 정립한 공식을 차용하였으며 이것을 독자들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등장인물의 파워업 =  초사이어인화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드래곤볼의 위상이 압도적인 시절이었습니다. 엄연히 드래곤볼의 고유개념인 초사이어인화가 다른 작품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시기라는 거죠. 실제로 이 궤는 상당히 맞닿아 있어서 아직 협객 붉은매가 현역이던 시절 붉은매가 드래곤볼 파워업을 예견했다며 화제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붉은매의 파워업과 디자인 자체가 드래곤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생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상황이었던 겁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드래곤볼보다 앞서 소년점프의 정체성을 상징했던 근육맨의 작가 유데타마고는 소년 간간에서 드래곤볼의 영향을 받은 라이온하트라는 것을 연재했고(정작 저는 보지는 못했습니다), 초사이어인아에 이르는 각성 패턴과 연출이 하나의 클리셰로 자리잡아 무수한 소년만화들이 차용하기에 이릅니다. 연출이나 소재, 적들의 모습 등등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본 블로그에서 가장 먼저 썼던 글을 기억하시나요? 예. 바로 드래곤볼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드래곤볼에 대한 리뷰와 소년만화에 대한 담론이었고, 이것이 이어져 후에 나루토 리뷰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후 예정되었던 글이 바로 원피스에 대한 글이었죠.

 

드래곤볼이 완결된 이후, 소년점프는 커다란 위기를 맞이합니다. 이후 소위 말하는 암흑기라는 기간을 거치게 됩니다. 이 시기를 거치며 소년점프의 성향이 다소 바뀌게 되어 안티소년만화적인 성향이나 보이즈러브같은 것이 가미되기도 했습니다. 바람의 검심이나, 봉신연의, 떴다 럭키맨 류가 바로 그러했죠. 이러한 움직임은 드래곤볼의 부재한 영향력을 다른 독자들로 채우기 위한 움직임의 여파였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드래곤볼의 부재를 메꿀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암흑기를 끝낸 것은 결국 드래곤볼의 영향을 받고 자란 세대들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원피스와 나루토가 그 주인공으로, 혹자는 이를 두고 올드스쿨의 회귀라고도 했었습니다. 소년을 넘어 청년지로의 변화를 보여주던  소년 점프가 다시금 소년을 정체성으로 하는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이 경향성은 201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고, 원피스의 완결이 다가온 지금, 다시 드래곤볼의 완결 때를 떠올리게 하며 당시와 같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저 엄청난 영향력과 상업적 성과의 이면엔 작가는 일찌감치 연재를 종료하고 싶어했다는 현실이 위치해 있습니다. 십수년을 쉼없이 달려왔고, 실제로 건강도 꽤 상했다는 이야기가 오랜 시간 들려왔죠. 근래 장기 연재 작품을 연재한 사람들의 건강이상 소식이 굉장히 자주 들려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를 대표하는 드래곤볼이 그 사람의 정체성인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전반을 살펴보면 드래곤볼이 유달리 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닥터 슬럼프나 코와 류의 소소하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가는 류의 작가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꾸준히 변화한 그의 그림체들 전반을 바라봐도, 역시 드래곤볼의 각진 인상이 더 이질적이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드래곤볼의 작가라고 불리고 있네요.

 

 


 

주간연재는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하곤 합니다. 실제로 인기작의 작가들이 연재 중 자기가 제 정신으로 그린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종종 나오곤 하니까요. 그래서 두 걸음만 떨어져도 보이는 것들이 때론 작품을 그리는 중엔 작가들의 눈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작품에 몇개나 반영되곤 합니다. 그래서 작품엔 작가의 취향이 결국 어떻게든 반영이 되기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작가의 정체성이 작품에 반영된다고도 합니다.

 

실제로 드래곤볼에선 덩치가 작은 악당, 결코 본질적으로는 타락하지 않는 등장인물들 등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이 과정에서, 이 반대되는 설정들을 미디어가 소화하게 됩니다. 본편에선 운만 뗐고 소화는 하지 못한 것들을 애니메이션이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소화하기도 하고요. 사악한 초나메크성인의 개념으로 나온 슬러그나, 지구에 오지 못한 손오공이라는 콘셉트의 타레스, 한 번 더 변신할 수 있는 프리더인 쿨러, 16호 이전의 인조인간 등등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초사이어인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생긴 인플레현상을 해소해준 진짜 전설의 초사이어인 브로리 역시 그렇고요.

 

이들은 본편의 악역만큼이나 큰 인상을 남겼고 드래곤볼 유니버스를 확장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토리야마 아키라가 꽤나 긴 시간 동안 일본인들이 뽑은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만화 작가로 꼽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실제로 지금도 드래곤볼은 독특한 메카닉 디자인과, 특유의 액션연출, 캐릭터를 집어삼키지도 않지만 충분히 매혹적이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배경과 색체감각 등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특유의 화풍으로, 그 영향을 받은 이들이 지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토리야마 아키라의 아성은 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토리야마 아키라의 그림체는 그 자체로 일종의 아이덴티티가 된 상황이고, 그가 다른 작품에 그림을 그려주지 않는대신, 그의 화풍을 흉내낸 이들이 작품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드래곤볼은 계속 될 겁니다. 당장의 신작들도 있고요.

 

저야 뭐 드래곤볼 원작 코믹스파지만, 드래곤볼의 수많은 콘텐츠들이 구축한 유니버스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코믹스가 연재될 당시에도 드래곤볼 애니메이션엔 오리지널 에피소드들이 있었고, 만화가 연재가 종료된 후엔 작가의 몇가지 아이디어와 디자인 정도가 가미된 오리지널 후속작이 방영될 정도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여러 게임사에서 만들어지는 오리지널 스토리, 그리고 원작자가 복귀한 것으로 화제가된 신극장판으로 시작된 슈퍼 시리즈까지 보노라면, 드래곤볼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기를 끌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두서 없이 막 써갈겼습니다.

 

사실 아직도 실감이 잘 안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