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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마담 웹.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망한.

일단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1. 이 글의 서두 부분은, 마담웹 개봉 1주일 후 썼던 글입니다. 쓰고 나서 마무리해야지... 하다가 석 달? 넉 달 정도가 흘러 버렸네요. 다른 글 쓰다가 "아... 이거 안 썼었구나" 하면서 후다닥 쓰고 있습니다.

 

2. 바꾸어 말하자면 마담웹을 본 지 몇 달의 시간이 흐른 후에 쓰는 글이라는 점을 감안해 주세요. 어느 정도냐면, 원래 무슨 논조로 쓰려고 했던 건지 아예 기억이 안나서 저 스스로가 글을 몇 번이고 읽어봤을 정도입니다.

 

3. 여하튼 글을 쓰려고 했을 땐 상당히 신랄하게 쓰려고 했던 거 같은데, 이젠 그때의 감정조차 무뎌진...

 

 


 

히어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에 크게 네가지의 줄기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 불리는 디즈니 산하의 프로젝트. 명실공히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촉발시킨 대표주자이며, 히어로 영화가 유행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리즈기도 합니다. 실질적으로 제대로 된 마무리를 한 유일한 시리즈며, 고점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히어로 무비 시리즈 가운데 원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파이더맨 등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전통의 히어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dc의, dc 확장 유니버스입니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 세대를 불문하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히어로 아이피를 소유하고 있으며- 뭐가 어쨌건 시리즈를 마무리하긴 했으니까요. 마블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다양한 소재를 다뤘고, 마블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영화도 꽤 냈고, 또 마블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마무리의 의도를 갖고 유니버스를 정리한 유이한 시리즈기도 합니다. 현재는 새로운 시리즈로 리부트 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한창 제작 중입니다.

 

세 번째. 엑스맨 시리즈. 브라이언 싱어 감독으로 대변되는 엑스맨 유니버스는, 마블 산하의 콘텐츠이기는 하나 영상화권리는 별개의 주체에 속해있어 그간 마블과 얽히지 않고 제작되고 있었습니다. 전자의 둘은, 제작자체는 00년대부터 이뤄졌지만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은 2010년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엑스맨 유니버스의 역사는 특히 주목할만합니다. 거진 십수 년을 앞서 있으니까요. 또한 데이즈 오프 퓨처 패스트와 로건이라는 확실한 이야기의 결말과 세대교체가 존재하는 시리즈기 때문에 유니버스적 완성도가 높다 평가되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저점에 속하는 영화들의 비율이 적잖다는 점 때문에 원탑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진 않고, 결국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합병되어 더 이상 콘텐츠가 지속되진 않습니다.

 

네 번째. 스파이더 버스. 스파이더맨 역시 마찬가지로 마블 산하의 콘텐츠지만 영상화권리는 별개 주체인 소니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와는 따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은 dc의 다크나이트 시리즈와 함께 가장 잘 만들어지고 가장 크게 히트한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샘 레이미의 세 번째 영화는 제작사의 간섭으로 인해 완성도가 떨어졌고, 그가 떠나고 만들어진 두 편의 리부트는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경쟁사에 가까운 마블이 어벤져스 시리즈로 온갖 흥행기록을 써내리는 상황에서, 스파이더맨의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선 통 큰 결정이 필요했죠. 그로 인해 디즈니와 협업하는 형태로 새로운 영상화가 진행되었으며, 이것은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소니는 이런 스파이더맨의 가치는 유지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온전히 주도권을 가진 유니버스를 만들길 바랐는데, 그게 바로 스파이더맨이 없는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습니다.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 좋죠. 영화를 흥하게 하는 1등 공신들입니다. 더군다나 스파이더맨 시리즈엔 악당들이 모인 팀 '시니스터 식스'가 있습니다. 이들은 보통 스파이더맨에게 패합니다만, 때론 스파이더맨을 이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완전히 파멸시키는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악당 캐릭터는 악당 캐릭터이고 이것은 결국 히어로 캐릭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캐릭터의 구조나 매력이 성사되는 것인데, 정작 그 히어로 캐릭터 없이 영화를 제작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거죠. 소위 말하는 '앙꼬 없는 찐빵' 꼴이 나 버릴 수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여기서 스파이더맨의 특별함이 부각됩니다. 캐릭터의 인기와 영향력만을 놓고 본다면, 백여 년에 가까워지는 미국의 슈퍼히어로계에서,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는 꼽히는 스파이더맨이기에 뭔가 다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던 거죠. 실제로 다크나이트 개봉 이전 가장 잘 만든 슈퍼 히어로 영화로 꼽혔던 것이 바로 소니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였고, 차근차근 영화를 만들다 보면 마블과 맺은 협약도 끝나갈 테니까요. 더군다나 마블과 디씨 역시 빌런팀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개봉할 것이라 천명한 상황에서, 시니스터 식스 정도의 유명세를 가진 빌런팀을 활용하지 않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여하튼 이리저리 삐그덕 거리며 소니의 스파이더 유니버스는 진행되었습니다. 시니스터 식스에 해당하는 캐릭터들의 단독영화가 하나둘씩 만들어졌고, 마블에서 제작된 캐릭터들도 억지로 나마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국 자사의 영화 캐릭터 베놈을 마블의 스파이더맨 영화에 나오게 하는 데 성공시켰죠.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완성도였습니다.

 

 

 


 

'스파이더맨이 나오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한계는 시니스터 식스류 캐릭터가 중심을 잡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로 기어코 작용하고야 말았습니다. 영화를 어둡게 만들 것이다 어쩐다 해도 결국 최대한의 관객을 들여야 하는 환경에서 그들은 빌런이 될 수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영화의 완성도도... 실제로 모비우스는 조롱거리로만 소비되고 있고, 흥행은 했는데 왜 흥행했냐는 소리까지 들은 베놈까지...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소니는 계속해서 스파이더버스의 외연을 확장시키기 위한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그 시도가 실패한 상황이 또 오고야 말았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마담웹이 바로 거기에 속하거든요.

 


 

제게 마담웹은 낯선 캐릭터는 아닙니다. KBS에서 방영해 주었던 94년판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 후반부 가장 중요한 인물로 나온 캐릭터였으니,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죠. 특히나 마담웹은 여러 차원의 스파이더맨을 한 곳으로 모으는, 소위 요즘 식으로 말해 도파민 폭발시키는 일을 해낸 캐릭터였으니 더더욱 강렬하게 인상이 남았었습니다.

 

다만, 애니메이션 종료 이후 내용이 이어진다 알려진 이후 코믹스의 이런저런 내용이나, 마담웹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캐릭터는 익숙하나 내용은 낯설죠. 애초에 마담웹 자체가 흔히 이야기하는 예언자형 도우미 캐릭터기 때문에 전면에 나서는 일이 없었기에 이는 비단 저만의 이야기는 아니었을 겁니다.

 

여하튼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3개월이나 지나서인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다만 타자를 두드리다 보니 떠오른 한 가지가 있긴 합니다. 거미줄로 엮인 운명 초월적인 존재와 거미 토템류 의 이야기들은 코믹스 쪽에서도 상당히 호불호가 갈렸던 것으로 기억하거든요. (지금 알아보니 슬슬 해당 설정을 폐기하려한다는 이야기까지 검색이 되네요) 그걸 영화에 그대로 갖고 와서 좀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와 코믹스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결정적인 몇몇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질감은 영화에 대한 접근성의 문제를 낳게 되는데, 이를 적절한 각색을 통해 보완해야 합니다. 때론 어떤 영화들은 이러한 이질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영화 고유의 매력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죠.

 

마블 코믹스에는 거미능력자들은 스파이더맨의 성공공식을 비틀어서 만들어진 것으로, 2000년대 들어서야 성립된 거미토템과는 그 기원이 무관했습니다. 실제로 이 설정은 피터 파커의 매력 '우연히 능력을 얻은 일반인'을 크게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자와 별다르지 않은 너드 캐릭터가 알고 봤더니 우주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선택한 존재였다"는 것은 사실 꽤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일이었죠. (그래서 몇몇 설정에선 애초에 피터 파커는 그러한 예정된 운명에 선택된 존재는 아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설정은 이미 거미 능력자가 존재하는 코믹스에선 적용해 볼 법한 일이었습니다. 여하튼 당대에 유행하는 소재라는 것이 있고, 어찌 되었건 일정한 통일성을 가져야 작가들이 갖고 다룰 수 있으니.

 

요컨대 해당 설정의 존재 의의는 스파이더맨의 일정한 개성에 타격을 줄지언정 끌고 가고 싶은 다른 거미 능력자들이 있을 때나 비로소 존재한다는 겁니다. 결국 영화는 이 부분을 적절하게 각색해야 했습니다. 애석하게도 "또 다른 버전의 여자 스파이더맨 실사 드라마는 취소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실패해 버린 상황이고요. 애초에 지금 소니의 스파이더 버스는 결국 (토비, 앤드류, 톰, 혹은 새로운 배우 넷 중 누가 될 진 모르겠지만) 스파이더맨의 복귀를 강하게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있는 건데, 이 영화는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설정 그 자체만으로 판을 흔드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스파이더맨을 여러 거미 능력자들 중에 하나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뭐. 영화 줄거리 잠깐 이야기해 볼까요? 사실 정말 뻔한 영화라 뭐라 이야기하기가 곤란하긴 합니다만... 여하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구급대원으로 활동하는 캐시는 다른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도 그래서 떠나보냈고, 아이를 갖는 것도 상상조차 하지 않죠. 이건 그녀가 그녀의 부모로부터 버려졌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자신이 다른 이를 사랑할 수는 없다고 여긴 것이죠. 그러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이 이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통해 세 명의 소녀들을 죽이려 드는 거미능력을 가진 이를 막아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거미능력을 가진 사내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래를 볼 수 있는데...!

 

예. 이것만으로 결론까지 예측이 가능하죠? 그녀의 '가족의 부재'로 인한 상처는 새로운 대안가족을 통해 치유받게 되고, 운명의 거미줄 능력을 통해 자신이 사랑받고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보는 미래는 그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단순히 미래를 피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악당과 차별화되며 비로소 마담웹으로 각성하게 됩니다.

 

 


 

어찌 보자면 참 무난한 영화입니다. 미래에 대한 개척의지, 가족에 대한 사랑, 스스로에 대한 믿음 등등등... 하지만 지나치게 무난해서 딱히 강점이 없다는 점은 치명적입니다. 장르적인 재미가 부족하며, 캐릭터가 행동을 하는데에 관객이 납득하지 못하고, 그래서 캐릭터 개개인의 매력이 떨어지고, 이런저런 액션이 부실하고, 일부 소품이나 구도는 흥미롭지만, 일부 디자인은 민망합니다.

 

결국 아쉬운 영화가 되었습니다만, 사실 이 정도로 망할 줄은 몰랐습니다. 영화 개봉 이후 대놓고 배우들이 저 정도로 강하게 이야기한다는 건 제작과정에서도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건데... (실제로 초기 기획을 변형시켜 스파이더맨과의 연관성을 뭉개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썰이 있었죠)

 


글을 슬슬 마무리하려다 최하단부에 영화가 물음표(?)를 띄우게 하면 망한다라고 쓴 논지를 발견했습니다. ...격렬하군요.

 

아마 개봉직후엔 등장인물들의 행동원리가 잘 납득이 안 갔었나 봅니다.

 

빌런 캐릭터는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 미래를 막기 위해 행동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사실 그리 합리적이진 않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뭐 하는 존재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성공한 사업가인 거 같긴 한데 규모는 또 생각보다 작습니다. 또 사람 얼굴을 하나하나 구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생해서 갖춰놓았는데, 정작 주인공 일행이 내내 타고 다니는 차는 제대로 추적을 못하니 뭔가 싶기도 하고... 사악한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는 여러 차례 변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매력이 있긴 합니다만, 여태 나온 사악한 스파이더맨 가운데 가장 초라합니다.

 

주인공 캐릭터는... 사실 이 영화는 주인공 캐릭터가 원톱인 영화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주인공 캐릭터와 주인공의 어머니 캐릭터, 빌런 캐릭터 외엔 다 없어도 될 정도인데- 이 주인공 캐릭터도 뭔가 애매모호합니다. 주인공 보정을 잔뜩 받아서 이야기의 몰입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고, 잘 기억은 안 납니다만 굳이 왜 저렇게 행동하나 싶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기에 가까운 능력을 갖고 있어 적절히 다루기 어려운 캐릭터인데, 뭐만 했다 하면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주니... 각성 부분을 떼어놓고서도 말이죠. 나름대로 연기에 변주를 주려는 면모가 보이긴 했습니다만 의미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세 사고뭉치 캐릭터는 원래 트러블 메이커로 구성된 캐릭터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넘어갔습니다만... 마찬가지로 왜 굳이... 라는 느낌을 주긴 합니다. 셋 중에 하나만 나와도 유사가족 관계를 통한 가족애는 충분히 부각되었을 것 같긴 한데 말이죠. 나름 코믹스 시리즈에서 원톱을 줄만한 캐릭터들을, 히어로로서의 각성 이벤트를 거치지도 않고 환상으로나마 셋이나 등장시키는 건 욕심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요.

 

벤과 메리는 스파이더 유니버스와 다리를 놓아주는 캐릭터이고, 스파이더맨이 아직 없는 세계관에서 더 내용이 전개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만. 메리는 비중이 적고, 벤은 나름대로 매력을 보여줬습니다만 히어로 지망생들이 너무 많은 이 영화에선 그 이상 부각되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사족1. 이제야 영화가 끝난 이후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기억이 났습니다. 마담웹을 보곤 "참 디자인이 구리다..."라고 했었네요.

 

사족2. 저와 비슷한 세대들은 스파이더맨과 멀티버스를 꽤나 친숙하게 여길 겁니다. 상술한 kbs에서 방영했던 94년작 스파이더맨 tas를 봤기 때문이겠죠.

 

사족3. 영화 본편보다는 시사회에서의 사진, 그리고 부정적인 반응을 다룬 콘텐츠, 그리고 개봉 이후 배우들의 코멘트가 더 화제였던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