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이 가진 엄청난 파급력에 대해선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얼마 전 작가의 죽음이 전세계에서 불러 일으킨 반응을 보세요. 만화 대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이지만, 지구적인 인기를 끌었다 할 만한 만화의 숫자는 의외로 적습니다. 그 적은 만화 가운데 첫번째로 꼽히는 것이 바로 드래곤볼이죠. 어떤 비판이나 단서를 붙여도, 결국 드래곤볼은 특별할 수밖에 없는 만화인 것입니다.
그 드래곤볼의 영원한 주인공이 바로 손오공입니다. 연재 기간 내내 원톱 주인공으로 활약했으며, 그에 상응하는 인기를 끌었습니다. 드래곤볼이라는 만화는 손오공이라는 캐릭터의 일대기로 보아도 무방하며, 손오공은 재패니메이션의 한계를 넘어 지구적인 인기를 끄는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손오공은 손육공이라고 불리며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실제로 이런 말을 들을 만한 이런저런 이유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서서히 선을 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미 완성된 원작의 캐릭터성에 이러한 해석을 억지로 덧씌우려하는 것이죠. 실제로 원작의 몇몇 장면들을 두고 사이코패스니 육공의 시작이니 하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여기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건 작품 내적인 해석에도 심각한 오류를 끼치는 것에 해당하여, 작품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반박을 해보고자 합니다. 실제로 저 뿐만이 아니라 적잖은 이들도 원작의 손오공을 두고 저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말하는 분 가운데 '원작을 본 사람들'은 그냥 웃겨보려고 하는 농담조의 말인 경우가 절대다수일 겁니다. 결국 제가 하고자 하는 건 저런 웃겨보고자 하는 농담들을 진심으로 알아듣고 부화뇌동하는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겠네요.
일단 손오공이 손육공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90년대 중후반 원작이 완결된 이후, 드래곤볼은 관련 파생작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작의 폭발적인 파급력에 비해 뭔가 하나 둘씩 나사가 빠져 있는 상태였고, 드래곤볼도 결국 소위 말하는 '오와콘(끝장난 컨텐츠)'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이들도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물론 드래곤볼은 드래곤볼이었기에 저런 부정적인 전망조차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단서를 달곤 했습니다만, 여하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드래곤볼을 해체분석하여 만들어지는 신작들이 서서히 드래곤볼의 위치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원작자가 참여하지 않은 작품들은 그 퀄리티의 문제를 포함해 정통성 부족까지 앓으며 온전한 속편으로 인식되지 못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드래곤볼 슈퍼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이전의 관련작들이 원작자의 참여가 디자인 감수 수준에 머무른 정도였다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원작자가 스토리 등에 참여하여 제작된다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정식 속편이라는 타이틀까지 달게 되며, 이전의 극장판이나 gt, tv스폐셜 등이 확실하게 비정사작품으로 넘어가게 되었고요.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신극장판 '신과 신'은 그렇다치더라도 이후 전개되는 내용들이, 비정사작품으로 넘어간 시리즈에 비해 딱히 더 낫다고 말하기 힘든 퀄리티를 보여줘 버린 겁니다. 특히 드래곤볼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손오공이라는 캐릭터의 해석이 원작과 너무 큰 차이가 나 버렸습니다. 이전 구극장판에서도 심심찮게 손오공 캐릭터의 해석과 관련한 문제들이 터졌었는데, 슈퍼에서는 그 정도가 비교도 되지 않게 심해진 겁니다. 원작자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여 슈퍼에 나오는 저 캐릭터는 손오공이 아니다 손육공이다... 라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어 버린 겁니다.
사실 손오공과 손육공의 네이밍은 과거 원피스의 작가 오다 에이치로의 육다 드립-원피스를 그렇게 재밌게 그리던 오다가 이렇게 그릴 리가 없다. 지금 원피스를 연재하는 건 오다가 아니라 육다다-에서 기인했다 봐도 무방합니다.
드래곤볼도 마찬가지죠. 결국 손오공과 손육공 드립의 근원은 드래곤볼의 원작자 토리야마 아키라의 평가문제와도 맞닿는 겁니다. 특히나 드래곤볼의 신시리즈에 대한 세일즈 포인트가 다름아닌 원작자의 참여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생각하면요.
사실 드래곤볼은 그 엄청난 인기에 맞춰 상당한 미디어 믹스를 행했습니다만, 미디어 오리지널 콘텐츠 가운데 그나마 원작에 얼굴이라도 비춘 캐릭터는 손오공의 아버지 버독 하나일 정도로, 토리야마 아키라는 원작은 원작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심했습니다. 애초에 그는 원작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상당히.... 뭐랄까요, 무미건조했달까요?
작가는 만화나 캐릭터에 대해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 일쑤였고, 특정 설정에 대해 생각은 했지만 작품에 그리지는 않았다는 말을 종종 했습니다. 자신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다루는 방향성에 대해 하던가 말던가라는 느낌을 주는 코멘트를 하여 오리지널 미디어믹스가 원작의 해석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생기게 만들기도 했고요. (다소의 억지가 섞인 나열이기는 합니다) 작가가 자기 작품에 별 관심이 없는 경우는 그렇게까지 드물진 않지만, 드래곤볼 정도로 지구적인 히트를 기록했다면 보기 싫어도 볼 수 밖에 없는데도 이랬던 겁니다. 어떤 작가들은 자기가 그린 작품과 캐릭터를 자기의 자식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거기다 드래곤볼은 토리야마 아키라가 그린 작품 전반을 살펴봤을 때 유달리 튀는 작품입니다. 환경과 인간, 자연과 과학의 조화를 베이스로 깔고 있는 작품들과 드래곤볼을 나란히 놓고보면 확실히 궤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드래곤볼의 단편과 원작이 차이가 날 정도죠.
더군다나 토리야마 아키라는 십수년의 장편 연재작 2개만으로 이미 일본 만화 역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가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트렌드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 평가받은 20세기 이후 굳이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따라갈 필요도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년만화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했습니다. 소년만화의 대표격이던 드래곤볼은 해체와 분석의 대상이 되었고, 십수년의 시간이 흘러 그것을 다시 조합한 만화들이 다시금 히트쳤고, 이들조차 완결이 될 타이밍이었습니다. 한두군데 빠졌다는 평가를 받던 드래곤볼의 파생작들조차 이러한 트렌드를 따라가던 상황이었고요.
이러한 원작자가 참여한다는 건, 사실 생각보다 훨씬 위험부담이 큰 일이었던 것인지도 몰랐던 겁니다. 그 압도적인 정통성 확보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여기서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애초에 그가 얼마나 참여하는 건데?" 라는. 상술한 내용대로 그는 애초에 미디어믹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고, 드래곤볼에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으며, 애초에 출판사의 작가란에 이름만 올려놓아도 수익을 얻는 류의 계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원작자가 검수를 했느니 호평을 했느니 하는 것들을 세일즈 포인트 삼은 것은 이전에도 계속 있었고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원작자 방패노릇시키려고 저기 앉힌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그가 트렌드에 뒤쳐진 걸 업계 사람들이라고 몰랐을까요? 그가 이전에 디자인 검수 수준 외에 애니메이션 관련 콘텐츠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던 걸 그 사람들이 정말 몰랐을까요?
동시에 그들은 드래곤볼이라는 콘텐츠를 무리하게 진행시킬 때 가장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존재가 원작자라는 걸 모르지 않았겠죠. 또한 뭘 어떻게 만들어도 여러 드래곤볼 콘텐츠와 비교되며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는 것도요.
뭐, 거칠게 정리하자면 손육공 이야기가 나오게 된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원작자의 참여를 부각한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는 겁니다. 애초에 구작들처럼 작가가 '애니는 애니, 원작은 원작'이라고 선을 그었다면,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손오공 캐릭터 해석을 잘못하는 건 유구한 전토이었다"라면서 넘어갔을 겁니다.
그렇다면 원작은 손오공의 저러한 평가에 있어서 완전무결했느냐? 그렇게 물으신다면 아니라고도 답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슈퍼 등장 이전에도 손오공에 대한 이런 저런 왜곡밈이 존재했습니다. 지상 최악의 아버지라거나, 남편이라거나, 사이코패스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저 육공이라는 밈도, 기존의 이러한 왜곡된 캐릭터 해석과 결부되며 더욱 심화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손육공의 시작이 신 시리즈인 슈퍼가 아니라, 애초에 드래곤볼 원작에서부터 그 모양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곤 하죠.
다만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원작을 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다 아실 겁니다. 손오공은 드래곤볼의 원톱 주인공이었고, 극히 일부 기간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그의 위상을 위협하지 못했습니다. 손오공은 연재 기간 대부분 가장 강력한 캐릭터였고, 일행을 대표하는 리더격 캐릭터였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이자, 앞으로의 문제에 대비하는 조언가였기 때문입니다.
원작에서 비롯된 손오공에 대해 왜곡된 밈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몰상식적인 행동. 둘째, 타인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투지상주의적 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로는 이렇게 보일 수도 있다 수준의 농담 정도입니다만, 의외로 이걸 진지하게 주장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여하튼 저러한 행동의 예들은 대략 "사이어인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부르마의 발언, 마인부우 편에서의 "죽어도 드래곤볼 되살리면 된다"는 식의 손오공의 대사, 그리고 베지터 등을 살려둔 행위 등이 꼽힙니다.
하지만 반박해볼까요?
첫째, 몰상식한 행동들... 그러니까 일반적인 상식 이하의 멍청한 행동을 한 케이스를 꼽아봅시다. ...생각 나시는 거 있나요? 손오공이 성인으로 접어든 이후로 한정하면 딱히 생각나는 게 없을 겁니다. 실제로 손오공은 Z편 들어 손오반의 아버지로 등장한 이후, 적잖은 기간을 죽어 있거나, 다가올 적에 대비해 수련을 하고 있거나 했습니다. 일상 파트의 절대적인 분량 자체가 적습니다. 손오공의 몰상식한 행동의 상당수는 아직 사회화되지 않은 유년기 시절, 그리고 엄연히 원작과 분리되는 극장판과 tv판 오리지널 에피소드 정도에서나 묘사됩니다.
실제로 원작의 손오공은 위기 상황에서 일행을 다독이고 통솔하며 해결책을 마련하는 두뇌형, 지휘관형, 선지자형 현자 캐릭터에 한없이 가까웠습니다. 일행 중에 힘이 가장 강해 부각되지 않았을 뿐 손오공은 어떠한 소원을 들어준다는 드래곤볼이나, 심각한 상처도 단숨에 낫게 하는 선두나 덴데, 위기상황에 나타나 아낌없이 주고가는 노계왕신보다도 이야기에 사기적으로 기능했죠. 그가 가진 전투력 외적 능력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마주니어 편에서는 초능력을 사용하고, 베지터편에서의 독심술이나 전심술을 사용합니다. 프리더편 이후엔 순간이동까지 사용하죠. 이건 절대 단순무식한 전투원 캐릭터가 활용하는 능력들이 아닙니다.
둘째로 타인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태도, 소위 사이코패스라는 말로 자주 표현되는 부분에 관해서입니다. 손오공은 오랜 기간 절대선에 가까운 캐릭터로 평가되어 왔고, 실제로 지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몇번이고 희생한 전형적인 절대선격의 캐릭터입니다. 그런 캐릭터의 입에서 "드래곤볼로 살리면 돼" 따위의 말이 나왔다고 하니 사람들이 기함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손오공의 저러한 태도는 극단적인 양자택일-그러니까 인류멸망vs지금 조금 죽고 나중에 되살리기-의 경우에서나 비롯됩니다. 실제로 비슷한 코멘트를 피콜로가 하기도 했음에도 피콜로를 두고 사이코패스니 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죠. 왜냐면 손오공과 대비되어야 하는 정상인 포지션을 부여받았기에 손오공과 동급으로 평가되어서는 안되니까요. 실제로 셀 전 당시 오반을 두고 손오공과 피콜로가 한 대화로 피콜로가 진정한 오반의 이해자이며 부자와 같은 관계라 선동합니다만, 사실인가요? 아니죠. 피콜로는 손오반의 진정한 이해자가 아니었습니다. 피콜로는 오반의 성장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고, 초사이어인2로 변한 손오반을 두고 놀라움을 표할 뿐이었습니다. 둘 중에 손오반을 더 이해하고 있었던 건 결국 손오공이었습니다. 단지 손오반이 자신의 생각보다도 더 아버지인 자신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뜻대로 쉽게 되지 않았을 뿐. 결국 이 또한 손오공이 초월자형 현자, 선지자 캐릭터에 가깝기 때문에 벌어진 겁니다. 더군다나 손오공은 작중 시간대의 절대적인 기간만 따지면, 이승의 사람이 아닌 기간이 짧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류의 캐릭터가 으레 그렇듯, 그는 현세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고요. 과연 그러한 캐릭터에게 사이코패스라고 말하는 게 맞는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세번째. 전투지상주의적 태도. 드래곤볼은 적이 아군이 되는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콘텐츠이기도 합니다. 최초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야무치부터가 그러했고, 이후 천진반과 피콜로가 그 뒤를 따랐으며, 베지터는 아예 이 분야에 있어 절대적인 상징으로 자리잡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마인부우와 우부도 이러한 경향을 따르죠. 손오공은 극악한 성향의 캐릭터에게도 실력을 겨룬다는 명목으로 승리 후에도 그들을 살려두곤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결과만을 놓고 보자면, 비판하기 애매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프리더와 셀 정도로 극악한 이들이 아니면 결국 개심했고, 손오공은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이러한 위협을 이겨냈거든요. 애초에 손오공은 끊임없이 노력해서 강해지는 류의 수련가형 캐릭터이고, 이 수련의 결과를 배틀로 확인합니다. 전투력 비교로 빵 터진 드래곤볼이지만, 의외로 그 부분에 있어서 무던하게 지나가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실제로 이런 전투지상주의적 태도는 전투쾌락주의적태도와 달리 선을 넘으면 바로 조치를 취하기 때문에 장르적인 한계를 떠나서도 딱히 비판하고픈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손오공은 굉장히 특이한 캐릭터입니다.
맨손격투가, 야생아, 전투마니아, 수련가, 대식가, 불살주의자, 적에게 개심의 기회를 주는 절대선적 캐릭터, 신적인 존재와의 관계 등은 비교적 흔해진 설정입니다. 하지만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등의 설정은 지금도 잘 나오지 않는 것들이죠. 캐릭터의 본질을 구성하는 설정들은 마주니어 편을 들어 완전히 구축되었고, 캐릭터의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것들은 시리즈가 계속되며 하나씩 덧붙여 지고 있습니다.
손오공이라는 캐릭터는 일정 시점- 마주니어편 이후로 캐릭터적으로는 완성이 되었습니다. 더 변할 여지도 없구요. 기껏해야 마인부우 편에 들어 더 능글맞아진 정도? 하지만 이조차 이전의 에피소드에 비해 코미디의 색체가 짙어진 덕분이었습니다.
손오공의 캐릭터의 완성은 이야기의 완결과도 맞닿았습니다. 하지만 드래곤볼은 인기작 중에 초 인기작이었고, 연재는 작가의 의도와 무관히 계속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손오공의 캐릭터 성장은 이야기의 진행과는 무관한 요소가 되었고, 이후 손오공의 후계자, 손오공의 이해자와 경쟁자라는 틀을 통해 이야기를 다시금 전개하게 됩니다. 손오공이라는 캐릭터의 활용은 일행의 최강자와 대표자 캐릭터를 넘어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었고, 이는 파워 인플레이션의 끝판왕 소리를 듣는 드래곤볼의 대외적 평가와 무관히 비교적 다양한 캐릭터들이 활약할 수 있는 장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는 베지터라는 캐릭터의 부각과도 맞닿습니다. 베지터는 손오공에 비하면 정말로 쓰기 좋은 캐릭터입니다. 악역으로 등장했지만, 피치못한 사정에 의해 주인공 일행과 협력하고, 어쩌다 일행이 되지만 여전히 문제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저질러온 잘못을 깨닫고, 이윽고 완전히 일행으로 합류합니다. 동시에 주인공과의 라이벌리는 계속해서 유지하고요. 작품 전반의 구성만 따지자면 차라리 베지터쪽이 더 주인공에 가까운 셈입니다.
결국 이는 신시리즈를 전개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손오공이라는 캐릭터가 변할 필요성이 있긴 했다는 소리죠. 원작에서부터 손오공이라는 캐릭터의 극적변화가 제한되었던 상황인데, 신시리즈에서까지 그걸 이어가기는 난이도가 너무 높았을 겁니다. 이미 손오공은 셀편이나 마인부우편 시점에서 초월자형 캐릭터에 한없이 가까웠고, 심지어 일행에서 두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강했-심지어는 가장 강한 건 조커형 캐릭터라 사실상 여전히 원톱인 상황-으니까요. 이 캐릭터로 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앞이 막막해져 버리는 것이죠.
신시리즈에서 원작의 캐릭터들은, 그렇잖아도 변화한 트렌드에 맞춰 크고작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원작에서 너무 일찍 완성되어 변화의 폭이 적어 이야기를 구성하기 어려웠던 손오공은, 여타의 캐릭터들보다도 더 큰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슬슬 마무리 지어 봅시다.
비교적 근자에 와서, 원작을 봤다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손오공의 저러한 밈이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는지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게임이더군요. 손오공의 일대기를 그린 원작재현으로 유명한 게임이 다시금 인터넷 방송 등을 타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인 이상 절대로 원작 수준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죠.
실제로 게임에선 특정 인물의 심리묘사나 특정 에피소드, 대사 등이 생략됐는데, 이 영향으로 손오공이 크게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상술했듯 손오공은 초월자형 예언자 및 전략가 캐릭터인데, 그 캐릭터의 디테일한 묘사를 날려버리니 벌어지는 상황에는 관심없이 내용진행에만 몰두하는 비인간적 캐릭터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통해 새로이 유입되는 이들이 있을 수 있고, 드래곤볼은 계속해서 새로운 판본으로 나오는 상황이니까요. 금일의 육공 이야기도, 그러한 밈 때문에 만화를 보지도 않고 깔아뭉개는 일부의 태도가 걱정되어서 비롯된 것이니, 한 번 쯤 지구적으로 유행했던 만화를 보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네요.
사족1. 몇 주 전에 쓰기 시작한 글인데, 이제서야 마무리합니다. 하고픈 말은 많았는데 차라리 훨씬 더 짧게 축약하는 게 좋았을지도. 이런 건 위키의 독자문서 글에서나 쓰는 건데 말이죠.
사족2. 아 이미지 넣기 귀찮네요. 이런건 ai가 안해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