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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언럭키 곤지암, 치악산 - 아이디어는 좋았던 거 같은데...

2018년. 곤지암의 흥행세는 엄청났습니다. 공포영화로서 한국 역대 2위의 기록을 썼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당대 평가도 그럭저럭 괜찮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특별할 건 없지만, 그래도 기본은 해준다는... 하지만 호러 영화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이들로부터는 박한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떨어지는 독창성을 상대적으로 생소한 은유를 심어주는 것을 통해 상쇄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형태는 리메이크나 이식작에 더 가까우며, 창작물에서 신선한 소재이던 인터넷 방송을 사용해 비교적 젊은 세대에게 더 어필할 수 있었지만, 정작 인터넷 방송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저게 20세기 후반에 케이블 채널에 프로그램을 팔겠다고 설치는 외국 모습이지 어디가 한국의 인방이냐"는 이야기를 들었죠. 무엇보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 자체가 이제는 완전히 유행이 지나가 버린, 정말 저예산의 영화에 한정되어 쓰일 정도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뭐, 어쨌거나 저쨌거나 상술했듯 곤지암은 성공한 영화였습니다. 애초에 호러 장르의 영화가 한국의 극장가에 걸려 본전을 넘어 흥행 대박 소리를 들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니까요. 제가 나름 괜찮게 평가했던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만 해도, 흥행은 그렇게까진 좋진 않은데 젊은 감독들 발굴하는 역할은 해야 하니까...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걸 생각해 보면 더더욱.

 

자연스레 포스트 곤지암을 노리고 나오는 영화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영화, 치악산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작사: (주)도호엔터테인먼트 ; 배급사: 와이드릴리즈(주) ; 해외배급사: (주)영화사벌집 ; 감독: 김선웅

 

아. 그리고.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치악산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산악자전거 영상 촬영을 위해 치악산을 찾은 라이딩 동호회 일행들. 그 일행엔 치악산에 산장을 가진 현지(김예원이 연기)가 처음 참여하였습니다. 그녀는 실종된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일행들과 함께, 아버지가 사라진 이 치악산에 찾아오게 된 것이죠. 이렇게 저렇게 영상을 찍던 그들은, 과거 치악산에서 끔찍한 토막살인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날이 어두워진 이후부터 그들 역시 알 수 없는 일에 휘말렸음을 알게 되어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구성만 따지자면 '낯선 산장에 온 철없는 10대들' 클리셰를 충실하게 따릅니다. (물론 작중 인물들이 10대는 아닙니다만) 타인에게 믿음을 주진 못하는 깐죽이 캐릭터가 가장 먼저 이변을 알아차리고, 가장 이성적으로 보이는 리더는 일행 전체의 안전보다 더 우선시하는 가치가 있어 일행을 서서히 파멸로 몰고 가고, 무언가 있는 미스터리 한 캐릭터는 개인의 비밀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일행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게 되며, 야시꾸리한 행동을 한 커플은 가장 먼저 파멸을 맞이한다는... 뭐, 구성만 이야기해도 어떤 방식으로, 어떠한 흐름으로 흘러가는지 파악이 가능하죠?

 

제작사: (주)도호엔터테인먼트 ; 배급사: 와이드릴리즈(주) ; 해외배급사: (주)영화사벌집 ; 감독: 김선웅

 

물론 이 과정에서 치악산만의 독특한 요소들이 몇 가미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치악산이라는 배경. 가상의 배경에 가상의 사건을 내세우는 게 창작물로서 훨씬 안전하긴 합니다만, 굳이 실화나 실제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포장하여 판매하는 것이 실적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공포는 우리 곁에 실존한다 느낄 때 무엇보다도 크게 증폭되니. 무엇보다 이 영화는 기존에 존재하던 치악산 괴담을 모티브로 하였기 때문에 치악산이라는 배경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 결국 이로 인해 원주시와 법적인 분쟁을 겪기도 했습니다만, 이로 인해 이게 정말 개봉 전 계획된 홍보라면 잘했다는 이야기가 될 정도로 개봉 전 이목은 확실하게 끌었습니다.

 

두 번째는 외계인이라는 소재. 80년대 초중반의 호러 장르의 절정부 이후, 호러 장르는 다른 장르들의 요소를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기존에 나올 만한 건 다 나왔다고 봤기 때문일 겁니다. 이전에도 실험적인 몇몇 작품이 있긴 했습니다만, 이젠 새로운 장르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콘텐츠들이 다시 새로운 장르를 형성할 정도로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죠. 시간여행이나 유령, 외계인 등의 초현실적인 요소가 현실적인 범죄의 요소와 엮여 나오는 콘텐츠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호러영화가 꾸준히 제작되어 온 환경 안에서의 이야기지, 한국은 그러지 못했죠. 아니, 호러라는 장르를 떠나서, 애초에 한국에서 외계인을 소재로 한 영화 자체가 드물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외계인을 설득력 있게 그리기 위해선 sf장르적인 요소들을 소화해야 하는데, sf장르는 할리우드 말고는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자본을 엄청나게 요하는 것이다 보니... 또한 외계인 및 UFO 장르는 21세기 들면서 확 유행이 꺾여 버렸죠. 그러한 상황에서 외계인 요소가 등장하는 한국의 호러 영화라는 것은 독특한 위치를 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익스트림 스포츠와의 결합입니다. 아마, 확신하지만 못하겠지만, 감독은 자전거가 자동차에 쫓기는 걸 꼭 찍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속도는 낼 수 있지만, 절대 차만큼 빠를 수 없고, 일정 속도 이상에서 부딪히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실제로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공포 중에 하나가 1차선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역주행하는 차량을 발견했을 때이기도 했죠. 이거 잘 살리면, 정말 그만큼이나 큰 스릴과 공포를 제공할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카체이스와 같은 장르가 구축되어 있고, 2000년대 들어 익스트림 스포츠 류의 액션이 유행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치악산은 성공하지 못한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성공의 이유를 찾기는 쉽지만, 실패의 이유는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선 남들과 다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만, 실패의 요소는 보편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어 무엇이 실패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이야기겠죠.

 

실제로 치악산은 개봉 이후 "산만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많이 끌어왔다", "너무 클리셰적이다"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전자와 후자의 평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그건 그리 좋은 영화는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외부에서 차용한 것은 많은데, 정작 소재와 이야기 정리는 제대로 못해,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재미와 완성도가 동시에 떨어진다는 소리니까요. 처음 언급한 곤지암이 독창성은 떨어질지언정 나름의 연출과 메타포를 통해 괜찮은 평가를 들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치악산은 그러한 측면에서 실패한 셈입니다.

 

ⓒ 영화보러 갈래(https://www.facebook.com/go2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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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꼽은 치악산이 실패한 원인 첫 번째는 치악산 괴담의 틀에서 결국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치악산 괴담은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다룬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배경이 치악산일 필요가 없었고, 굳이 토막살인일 필요가 없었으며, 굳이 군사정권 때 이야기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미 유행이 완전히 지나버린 외계인 이야기도 마찬가지. 치악산 괴담이 현시점까지도 계속해서 회자되는 상황이라면 또 모를까, 이미 유행이 완전히 지나가 버려 아는 사람도 "아 그때 그런 게 있었지" 수준이며, 본작에 외계인이 등장하는 것이 반전으로 소개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관객층에 대한 특정을 실패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치악산 괴담은 그 분량이 짧습니다. 그럼에도 괴담으로의 회자될 수 있었던 것은, 끔찍한 소재와 함께, 군사정권이라는 단절된 시대상을 엮어 "체감하지만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을 제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걸 두 시간 가까이 영화상으로 풀면 괴담 본연의 공포를 얼마나 제시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죠. 물론 변주를 위해 시간여행이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넣긴 했지만 이게 공포를 주는 메인 요소가 아니니 결국 언 발에 오줌누기 같은 느낌이 되는 겁니다. 산만하다는 이야기도 여기서 나왔겠죠.

 

두 번째는 군사정권하에서의 강력범죄라는 요소를 잘 살리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보통 권위주의정부는 자기들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이 권위로 찍어 누른 온갖 요소들에 역풍을 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소련이 연쇄살인 등의 강력범죄는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이기 때문에 소련에서는 벌어질 턱이 없다며 자국의 범죄들을 외면해 더 큰 피해와 혼란을 야기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영화에서 가장 큰 공포고, 실제로 사람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본 작은 이걸 거의 살리지 못했습니다. 흔히 "야밤의 산에서 불현듯 마주쳤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도 귀신도 아닌 사람이다"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 자체가 관객이 사는 현실의 요소를 다뤘을 때, 관객들이 가장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곤지암은 환자들에 대한 인권탄압과 독재정부에 대한 메타포를 엮어서 이를 해소하며, 지금 영화상의 인물들이 겪는 일에 대해 당위성을 부여했는데, 본 작은 그걸 거의 제대로 해내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것은 예견된 피해이며,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그릇된 판단으로 개인이 불행을 겪게 되었다"는 식으로 전개하려 했던 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만, 결국 본작은 아버지의 실종과 엮인 개인의 불행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고, 이야기의 중심부와도 제대로 엮이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는 디테일의 부족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쉽지 않겠다..."라고 생각했던 포인트가 있습니다. 영화 시작 이후 채 5분이 지나지 않았을 시점인데, 격렬하게 바이크를 탄 후 헬멧을 벗는 등장인물의 뽀송뽀송한 원샷을 본 시점에서였습니다. 자전거를 한겨울에 타도 땀이 차고 머리가 눌리는데, 영화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주요 등장인물의 첫 소개씬에서, 어떻게 꼬질꼬질해지고 엉망이 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인 호러 영화가, 저런 식으로 등장인물을 보여주니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더니 이래서..."라는 말이 나와 버린 것이죠. 다른 포인트도 있습니다. 영화 내 치악산 사건의 조사결과가 정리된 지하실이 나오는데, 엄연히 정식 조사과정을 거친 결과로 정리된 자료들이 왜 그런 데 있었느냐를 떠나, 먼지 날린다는 시늉만 한 뒤 마치 어제 작성한 것처럼 깔끔하게 나열된 서류들이 나옵니다. "뭐야 이게 시간여행의 단서? 그러면 여기 사람이 없는 게 말이 돼? 이미 여기 조사하던 사람들이 다 당한 건가? 아니 그럼 민간인이 당한 게 유출된 건 말이 돼? 애초에 여긴 왜 존재하는 거야? 그냥 소품 준비가 제대로 안된 거 아냐?"라는 생각이 순차적으로 떠오릅니다. 그 외에 작중의 자료로 제시된 vhs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당시 손상된 자료가 보여주는 스크래치가 아니라 디지털 데이터가 손상된 식으로 묘사되는데 대체... 그리고 작중 시간은 고작해야 20~30년 전으로 묘사되는데, 아무리 그 사이 기술발전이 컸더라도 과거 사람들이 뭔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건 그리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정부가 정보를 차단하여 생긴 결과라는 식으로 추가적인 묘사가 필요한데, 그걸 제대로 못했죠.

 

네 번째는 인과관계의 결핍입니다. "왜 똑같은 상황인데 쟤는 살고, 얘는 죽어?" 같은 식의 상황이 반복해서 벌어집니다만, 본 작은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진 못합니다. 보통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해답까지 제시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종국엔 어느 정도의 단서를 내놓고는 합니다. 그래야 이야기의 통일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본작은 그렇지 못했죠. 본작은 리메이크된 이블데드와 같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캐릭터와 이야기의 진행에 가장 가깝게 달라붙은 캐릭터가 별개인 류의 영화입니다. 진행은 사촌오빠역을 맡은 민준 역의 윤균상이, 이야기와 가장 많이 엮인 캐릭터는 현지 역의 김예원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보통 현지는 특별한 캐릭터로 제시되고, 주변 인물들이 이에 대한 비밀을 파헤칩니다. 그리고 이 비밀이 다 해소되었을 무렵, 기존 캐릭터들의 비중을 이 캐릭터로 옮겨 내용을 진행하고 정리하죠. 하지만 이 부분이 제대로 정리가 되질 않아 현지 캐릭터가 희생자인지 위기의 초래자인지 등이 제대로 묘사되질 못했습니다. 배우도 갈피를 못 잡는다는 느낌이 강하고요. 보통 이렇게 비중이 급격하게 바뀌는 류는 관객이 보는 것만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도의 작중의 규칙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납득을 하죠. 이 부분이 부족합니다.

 

다섯 번째는 차용하는 것의 거리감입니다. 본 작은 상술한 것처럼 독특한 소재들을 결합하여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보통 하나의 콘텐츠는 장르라는 거대한 물줄기 속에 비교적 거리감이 가까운 소재들을 엮어 만들곤 합니다. 예컨대 sf 호러 장르로 특정한 콘텐츠를 만든다면, 비교적 가까운 소재로는 외계인-납치-인체개조-정신세뇌-인간사이에 숨어 있음 등을 내세울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비교적 거리감이 가까운 소재들로 만들어낸 콘텐츠는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장점은 단연 사람들을 설득하고 쉽습니다. 이미 약속된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단점은 이야기의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만든 영화 중에 하나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때론 거리감이 가깝지 않은 소재들을 엮기도 합니다. 예컨대 미드 수퍼내추럴의 한 에피소드에선 외계인-성범죄-성적조작-살인사건 등을 엮은 바 있는데, 꽤나 화제가 되었었죠. 물론 이는 코미디 장르였지만, 여하튼 나름의 신선함을 부여할 순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지는 작품들의 숫자가 적은 이유가 있죠. 장단점으로 풀어봅시다. 장점은 신선하고, 독특한 소재만으로 기억되기 쉽습니다. 온갖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소재만으로 주목받는다는 것은 아주 커다란 강점입니다. 단점은 간단합니다. 만들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려운 소재들을 엮었다 보니 그 이상의 연출이나 묘사가 필요하고, 이걸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산만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십상입니다. 치악산은 여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신선한 요소들을 끌어오긴 했지만, 제대로 된 재해석이 없어 뻔하단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메인 스토리에 제대로 섞어내지 못해 산만하다는 이야기를 동시에 듣게 됩니다.

 

여섯 번째는 적당히 타협한 연출들입니다. 이 영화가 개봉 전 끌었던 이목을 생각해 보면, 이 영화는 사실 꽤나 무난한 연출만을 취합니다. 개봉 전 마치 수위 높은 슬래셔 영화처럼 여겨지는 일련의 과정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닙니다. 외계인 납치 영화 계열의 잔혹하고 끔찍한 정도의 손에 꼽힐 정도고요. 오죽하면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보고 "무섭지 않다. cg값 아깝다"는 이야기가 잔뜩 나왔을까요. 또 다른 예가 이태환이 연기한 이삭이라는 캐릭터입니다. 처음 그가 종교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는 걸 보고 "아. 외계인 관련해서 신성모독으로 나가려는구나. 세상의 기원은 외계인이며 종교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라고 할까? 아니면 외계인이 우리가 이야기하던 신이고, 인간은 그저 이러한 외계인에게 인신공양을 하는 존재 정도라는 걸까? 그러면 주인공 일행은 그 제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딱히 유의미한 어필을 하지 않습니다. 비주얼적인 부실함은 둘째 치고, 저 캐릭터가 존재하는 의의와 기능하는 방식을 보면 제작자들도 분명하게 염두에는 뒀던 거 같은데, 저 끝까지 가는 연출이 없으니 캐릭터 자체가 붕 떠버립니다. 이게 일반적인 방식으로 개봉했던 영화면 소위에 대한 비판은 "대중성 때문에 그렇게 했구나"하면서 넘어가겠지만, 개봉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보노라면... 사실 좀 아쉽긴 합니다.

 

 

 


 

그렇다면 본 작은 원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기존에 클리셰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이 영화를 바라보았을 때 어떻게 내용을 정리할 수 있을지, 한 번 살펴봅시다.

 

첫째. 외계인 기원설과 외계인 납치 실험설. 본작에서 외계인이 지구의 문명이 본격적으로 꽃피기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인류와 접촉했고, 일종의 숭배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일부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고, 한반도 역시 이러한 외계인 숭배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외계인은 어떠한 이유로 지구 특정 지역에 자신들을 감추었고,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외계인의 존재는 잊혔지만, 정부 등은 이러한 외계인의 존재를 알고 있고, 이를 관리감독하고 있습니다. 민간에서의 외계인은 괴담 등으로 회자되는 선에 그치지만 말이죠. 또한 인간의 관리 여부와 무관히 외계인은 가축이나 인간등을 초월적인 기술을 통해 납치하여 실험하기도 합니다. 토막 된 인간의 시체는 이러한 실험의 부산물이고요. 작중 '무언가'가 있는 현지는 이러한 외계인의 또 다른 실험의 대상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둘째 현지의 아버지와 현지. 현지의 아버지는 일련의 사건 이후 현지 일행을 조사하러 온 조사관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실종되어 버렸고, 현지는 그런 아버지를 잃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다 영화 시작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주변인들의 도움을 통해 그를 극복하려 합니다. 하지만 현지의 아버지는 단순한 실종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로 인해 실종된 것이었고, 현지는 치악산에 온 이후 지속적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찾게 됩니다. 현지의 아버지는 본 작의 다른 이들과 같이 외계인의 실험의 대상이 되어 죽었는지, 아니면 외계인의 동료가 되었는지, 그조차 아니라면 외계인의 기술을 손에 넣어 또 다른 존재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지가 다른 이들과 계속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영화상 제시된 다른 이유는 단 하나도 없으니, 결국 그녀의 아버지가 어떻게든 영향을 미쳤다는 소리겠죠. 이 아버지의 현시점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단서가 제공되었다면 영화의 평가가 조금은 더 나아졌을까요?

 

ⓒ 영화보러 갈래(https://www.facebook.com/go2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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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현지. 현지는 등장부터 독특합니다. 첫 등장부터 앞으로 벌어질 일을 관객에게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치유받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지만 그 결말은 결국 파멸입니다. 그리고 그 장을 마련한 것도 그녀죠. 과거의 상처로 고통받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상처에 대해 어찌 보자면 무기질적으로 대응합니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 빙빙 돌리는- 그러니까 제정신 아니라는 취급을 받고, 실제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며 주변사람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합니다. 그녀는 미래의 자신을 마주한 유일한 이며, 종래 시간 여행을 하고서도 살아남은 유일한 이가 됩니다. 그녀는 붉은빛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도 다른 이들과 달리 바로 사망하지 않습니다. 결국 본 작은 현지가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일련의 이야기이며, 현지가 외계인과 무언가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몇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지는 기존에 이미 특정한 외계인의 실험을 당하던 존재였다"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외계인의 지시에 따라 (자기가 알 건 모르건) 다른 이들을 치악산으로 유인했고, 결과적으로 일행을 파멸로 몰고 갔다는 겁니다. 그녀가 실험의 대상이 된 것은 엑스파일의 권력협회처럼 그녀의 아버지가 자발적으로 내놓은 것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그녀의 아버지가 실험대상이어서 어찌어찌 엮여 그리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현지는 시간여행에 특정한 영향을 주는 '변곡점'적인 존재기에, 외계인은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설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외계인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존재고, 하나의 대상을 현시점의 존재로만 파악하지 않습니다. 현재는 미래인이자 동시에 과거인이고, 이러한 존재는 어찌 되었던 외계인의 입장에선 그저 스치고 지나갈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변곡점적인 그녀의 존재는 결국 외계인의 주의를 끌었고,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그녀의 주변사람들이 파멸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네요. 세 번째는 영화상의 세계는 현지를 중심으로 펼쳐진 작은 우주라는 겁니다. 그녀의 존재여부에 따라 세상의 흐름이 결정됩니다. 외계인은 이러한 흐름에 몸을 싣거나 관조할 수 있는 존재고요. 현지는 미래에서 과거로 오고, 다시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것을 통해 정해진 시간대에서 무한히 존재하는 인물입니다. 그녀가 존재하기에 세상이 존재하고, 과거로 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그녀의 행동은 결국 과거로 가는 자신을 완성합니다. 아마 루프물과 같은 구성을 취하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외계인의 실험실 속에서 펼쳐진 개인을 둘러싼 무한한 루프물.

 

네 번째는 고대문명과 외계인입니다. 고대에는 인신공양이 존재했고, 이들이 숭배하는 대상이 외계인이었다면, 결국 인신공양의 대상은 외계인이 되겠죠. 그리고 인신공양이 단순히 미신적인 믿음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 외계인의 요구와 정말로 무언가가 존재하는 프로세스에 의한 결과물이었다면? 그리고 그 인신공양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그 인신공양의 대상이 바로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국가는 그러한 인신공양을 외계인에 대해 협조하고 있었다면? 실제로 이러한 내용을 다룬 호러 영화도 존재하고, 소속화되고 부속화되어 소모되는 개인상이라는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공포도 작용하기에 호러 영화로서도 나름 의미가 있는 모양새였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영화에서 했던 거라는 소리는 들었겠지만.

 

 


 

길게 썼습니다.

 

저는 ott로 봤고, 상당한 악평을 들었었기에, 기대감을 상당히 낮춘 상태로 봤었습니다. 그랬는데-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나쁘게 보진 않았습니다. 물론 좋게 봤다는 이야기가 아닌 건 아시죠?

 

 

여하튼 그렇게 본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저는 대체적인 줄거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볼 일 없겠지 싶어 유튜브에서 이에 대해 논평하는 영상 하나를 봤었거든요. 또한 저는 한국 괴담 모음이라고 해서 치악산 괴담에 대해 다룬 내용을 과거에 본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걸 바로 연결시키진 못했었지만. 그래서 뜬금없다고 말하는 요소들에 대해 비교적 무던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근래에 봤던 호러 영화들의 완성도를 생각해 보면 이 정도는 수위가 높지 않다 뿐이지 그래도 열심히는 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된다 생각했습니다. 좀 디테일이 부족할 뿐이지... 세 번째는 그래도 소재의 조합이 신선한 영화는 완전히 구태의연한 영화들보다는 보는 재미가 있다는 겁니다. 이 글이 길어진 것처럼 이것저것 해야 할 말도 많아지고요. 실제로 영화 평론가들 가운데엔 영화 자체의 완성도와 비등할 정도로 영화의 아이디어를 높게 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당시 감독의 포스터를 이용한 자체적인 홍보나, 지역과의 갈등 같은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점에, 극장이 아닌 자기 집에서 봤다는 점도 빼놓을 순 없을 겁니다.

 

상술했지만, 이 영화는 곤지암과 적잖은 키워드를 공유합니다. 친숙한 지역의 어필, 인터넷상에서 어필되었던 유행하는 소재, 특정시기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를 암시로 녹여냄, 젊은이들이 유튜브 영상 등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벌어짐 등등처럼 말이죠. 하지만 치악산은 곤지암에 비해 홍보상 현실적인 공포가 더 부각되었지만 실제론 초현실적인 요소가 메인이었던 케이스입니다. 곤지암이 흉가나 유령 등이 떠오르는 식으로 홍보하고 실제로 작중 그들이 나왔던 것과는 다르죠. 또한 곤지암은 관련된 병원이 인터넷상에서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었고, 또한 그와 관련된 콘텐츠를 국내외에서 계속해서 만들던 도중 개봉했던 작품이었던 데 반해(영화 개봉 이후 붐이 더 커졌죠), 치악산은 정말 한 때의 괴담으로 그쳐(실제로 벌어졌던 일이 아니라는 게 밝혀진 이후 급격하게 사그라들었죠) 말 그대로 아는 사람들만 아는 괴담이었습니다. 애초에 유행이라는 게 언제 왔다 언제 가도 이상하지 않은 불안정한 것이라 치악산 괴담은 영화의 흥행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을지 잘 알 수가 없네요. 또한 곤지암이 이전의 정권들에 대한 이런저런 심벌을 (비판의 수위 자체는 낮지만) 비교적 쉽게 알아챌 수 있도록 한 것에 비해, 치악산은 그조차도 되지 못했죠. 또한 곤지암이 저게 무슨 인방이냐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어찌 되었건 당대 크게 유행이 일던 인터넷방송의 틀을 제대로 갖고 와 사람들이 친숙함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에 비해, 익스트림 스포츠 영상 촬영은 그 미치지 못했으니까요.

 

뭐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는 했고, 타인에게 재미있다며 적극적으로 추천할 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나름대로 흥미롭게 이야기할 수도 있고, 이런 것도 있다며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영화에 대해 좋다고 이야기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사족1. 여러모로 예전에 봤던 무서운 이야기 영화 시리즈의 특정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여우골이라는 제목이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는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무서운 이야기의 나열인데- 이 여우골에 대한 평가가 개 중에 가장 낮다는 점입니다. 무서운 이야기 3은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중에 제일 평이 낮고, 여우골은 그 무서운 이야기 3에 속한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재미가 없습니다. 뭐, 재미야 주관적인 문제입니다만... 다행히(?) 치악산은 여우골보다는 재밌습니다. 훨씬.

 

사족2. 영화를 떠나서. 왜 치악산 괴담이 최초에 생겨났을까요? 그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직관적으로는 '치'와 '악'이 주는 어감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뜻이야 큰 산이라지만 '악'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고, 치라는 것도 꿩 한자를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질 않으니 '치'가 떨린다 같은 게 자연스럽게 떠오르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본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말입니다. 더군다나 치악산의 유명도도 있습니다.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정도에 미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듣도보도 못한 정도의 산은 또 아니며 이름을 대면 "아. 거기 명산이지." 할 정도의 유명함. 그래서 더 피부에 닿는 배경이 될 수 있었겠죠.

 

사족3. 영화 개봉 전에 외계인이 나올 것이라 예언한 글이 소소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애초에 해당 괴담은 실제로 존재했던 겁니다. 실제로 지금도 2010년대 즈음해서 당시에 인터넷에 떠돈 당대의 글들을 찾아볼 수 있고요. 그 글에서 외계인 어쩌고 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링크

 

사족4. 유행이라 쓰기엔 오래됐고, 당연한 배경으로 깔기엔 또 너무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괴담이라 좀 애매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아니, 저는 애초에 십수 년 내에 만들어진 괴담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물론 아파트 초인종 괴담이나 장산범 괴담은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했으니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사족5. 어느 시점에서 일단 글이나 쓰고 보자며, 아카이빙 용으로 쓰고 나중에 tts로 영상을 만들어 올리자라며 가독성이나 읽는 분량 같은 걸 거의 생각하지 않고 쓰고 있는데, 다음부터는 그래도 이 정도로 글이 길어지면 좀 잘라서 나열하도록 해야겠네요. 막상 저보고 다른 사람이 이 정도로 글을 쓴 분량을 읽으라고 하면 잘 읽지 않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