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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데드풀과 울버린 - 반가운 얼굴들. 마블 지저스까진 아니지만

 

예~전에.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매번 평행세계 이야기를 하니까 제작진들도 개개 게임의 개성과 어필 포인트를 잘 모르게 되어 버렸다. 그나마 남은 캐릭터 쇼도 이미 몇 번 반복한 것을 하질 못하니 캐릭터의 생기조차 빠져나가 버렸다. 시리즈로 국물을 계속 뽑아내야 하는 구조에서 획기적으로 스토리를 진행시키질 못하는 상황에서 이러면, 결국 관객은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바뀌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혹평을 했던 바가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평행세계'라는 게 자기 마음에 드는 거 뽑아 쓰기에 너무 편한 설정이라 그렇습니다.

 

"이 캐릭터를 활용해야 하는데, 이 캐릭터의 근간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지금 시점의 캐릭터만 덜렁 가져와선 쓰질 못해요. 그렇다고 그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다 다루기엔 분량이 부족합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그 사건을 겪고 피폐해진 시점의 캐릭터를 평행세계를 뛰어넘어 데려오면 됩니다!

 

"이 소재를 활용해야 하는데, 이 소재는 꽤나 복잡해서 설명하는데 적잖은 분량이 필요해요, 이 게임에선 못 씁니다." 무슨 그런 걱정을! 그 설정이 확립된 시점의 요소를 차용하고, 공부는 게이머가 알아서 해 오라고 하면 되죠! 요즘 유튜브 에디션도 있고, 게임을 새로 구매해서 보면 더 좋고요!

 

"이 캐릭터의 성장을 위해선 고난이 필요한데, 이 캐릭터는 전작에서 이미 겪을만한 부정적인 사건은 다 겪었고, 대략적으로 성장도 끝났습니다. 이걸 부정해버리면 전작과 캐릭터의 본질을 해칩니다." 그럼 인위적으로 느껴질 고난을 축소하고 은근슬쩍 캐릭터를 이전 시점으로 되돌리세요! 그리고 본편을 진행시킨 후에 다시 원상 복구하면 됩니다! 어차피 평행세계를 뛰어넘어 별에 별 일이 다 일어나는데, 그 정도를 과연 관객이 신경 쓸까요!

 

옙.

 

오늘 이야기할 데드풀과 울버린도 여기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저는 영화 엘렉트라와 데어데블, 그리고 드라마 로키를 보지 않은 상태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2000년대 초를, 저 개인적으로는 평행세계 콘텐츠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시점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마블의 원작 만화를 떼어놓고 보더라도, 까놓고 말해 고전 취급받는 시간여행 콘텐츠부터가 사실상 평행세계의 그것과 다를 바가 거의 없죠. 지금 마블이 하고 있는 것과 30년 전 드래곤볼이 했던 게 뭐가 얼마나 다를까요? 그리고 그 드래곤볼이 시간여행의 요소를 따왔던 터미네이터로부터는? 마블에서 평행세계를 이야기하며 몇 번이고 언급하는 사랑의 블랙홀, 백투 더퓨처, 핫텁타임머신, 터미네이터 등등이 있습니다. 작중에선 이것은 마블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야기적인 활용방식은 대동소이합니다. 다만, 편의성 측면에선 인과를 무시해서 훨씬 유연하게 쓸 수 있어 창작자의 측면에선 더 편하기는 하겠죠.

 

이게 평행세계물이 시간여행물의 하위 카테고리에 속하지 상위 개념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시간이동물은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규칙이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 규칙 안에선 관객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몰입도를 보여주는데, 평행세계물은 너무 편의적이어서 관객들이 몰입을 하려다가도 소위 '깨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처음 마블이 평행세계의 악당을 메인빌런으로 내세우고, 이 멀티유니버스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꾸려나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기대는 하늘을 꿰뚫었습니다.

 

첫째. 마블은 이미 멀티유니버스의 이야기를 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습니다. 엔드게임이 개봉하기 전에 나왔던 여러 썰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타노스를 물리치기 위해 여러 시간대의, 여러 평행세계의 어벤져스가 협력한다는 내용이었죠. 실제로 다소 과할 정도로 시간의 흐름을 강조하는 연출(예컨데 블랙위도우의 헤어스타일이나 캡틴의 수염이나 등등)이 다른 시간대의 어벤져스가 협력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함이라는 썰도 있었고요. 실제로 이것이 이뤄질 수 구조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영화 본편에선 과거의 타노스가 현대로 오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구조만 따지자면, 상술한 묘사가 이뤄지기에 부족함은 없었죠. 그리고 이후 멀티버스 사가가 이뤄진다고 하면서, 저 썰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번에야 말로 진짜 저 방식대로 묘사가 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미 죽은 아이언맨, 은퇴한 캡틴 아메리카도 저 때 다시 모습을 보일 거라 진지하게 주장하죠. 이것이 현실화되느냐 아니냐의 여부를 떠나, 저게 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것은 꽤 중요했습니다. 다음 사가의 설득력을 이미 구축한 상태였다는 것이니까.

 

두 번째. 디즈니의 폭스 인수. 21세기 히어로 영화의 주된 흐름은 결국 넷입니다. 디즈니의 어벤져스 시리즈, 소니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디씨의 디씨확장유니버스, 그리고 폭스의 엑스맨 시리즈. 그 외도 이런저런 시리즈가 있긴 하지만 말이죠. 여하튼, 저 가운데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 비교적 근자에 이르기까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서도 결국 외적인 이슈로 문을 닫아버린 콘텐츠가 있습니다. 바로 엑스맨 시리즈죠. 고점만 이야기하자면 히어로 무비 장르에서도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고, 주제의식 측면에서도 꾸준히 소수자에 대한 담론을 다뤘으며, 소재와 시도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어벤져스 시리즈보다도 앞선 면이 있는 기념비적인 시리즈입니다. 그런데 이 엑스맨 시리즈가, 다시 마블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마블은 엔드게임으로 고점에 고점을 뚫고, 5년 동안 리부트만 세 번 한 스파이더맨 시리즈까지 대흥행시킨 시점이었습니다. 디씨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마블이 완전히 히어로판을 지배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되지 않는 게 이상한 시점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마블이 평행세계 소재를 활용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기존의 엑스맨 유니버스를 그대로 통합한다'는 파격적인 소식까지 들려오기에 이릅니다.

 

세 번째. 멀티유니버스 콘텐츠의 유행과 디즈니의 역량. 속된 표현이긴 하지만,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 스스로 이미 평행세계 콘텐츠로 끝장을 봤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걸 마블의 히어로들이 영화상으로 보여준 적은 없었으니까요. 더군다나 마블 히어로 무비는 기존의 할리우드판의 모든 자본과 인력을 빨아갈 정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초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콘텐츠기에, 기존의 콘텐츠와는 차별화되는 무언가를 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던 것이죠. 실제로 인피니티워와 엔드게임은 관객과의 머리싸움에서 이겼다는 평가를 들었던 작품들이고, 기존의 시간여행물과 차별화하겠다는 선언까지 했었으니, 이들의 평행세계물도 또 다른 무언가를 시도할 거란 바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데드풀 그 자체보단 멀티버스 사가에 대한 비판에 가깝겠네요.

 

첫째. 마블은 멀티버스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편의주의적으로 쓰고 있어서, 쉽게 쉽게 후딱 넘어갑니다. 결과적으로 그 얕아진 고민만큼이나 얄팍해진 이야기와 캐릭터로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고, 개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선 멀티버스와 얽히면 안 된다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엄연히 멀티버스 사가를 주창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당히 좋지 못한 흐름이라 할 수 있죠.

 

두 번째. 엑스맨 사가에 대해서도 슬슬 일관된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 나오는 이야기는 '기존 엑스맨 시리즈의 출연자를 적당히 끌어와 활용하면서 마블 유니버스 내에 엑스맨의 존재를 익숙하게 만든 후, 멀티버스 사가를 끝내며 세계관 통합을 하는 인커젼을 일으켜 소프트리부트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뭐 납득은 되지만 이걸 두고 너무 멀리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도 어쩔 수 없죠. 애초에 지금 개별 영화들 전부가 각자의 유니버스라는 설도 돌았는데, 이런 것까지 생각하면 과연 이 규모의 이야기를 끌고 갈 역량은 될지 의문이 듭니다.

 

세 번째. 차별화의 실패. 멀티유니버스의 유행도 유행이거니와, 이걸 히어로 장르에서 활용하고 있는 다른 콘텐츠들이 있다는 것이 패착입니다. 보통 이런 장르의 유행 때는 선두주자가 크게 이점을 보고, 후발주자들은 이와 차별화하는 것을 통해 다른 이득을 누리려 합니다. 하지만 마블은 선두주자도 아니고, 후발주자로서 특별한 시도를 하지도 않았죠.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거 봤던 건데."라고 생각되는 장면이 드물지 않습니다. 장르적 유사성 내지 오마주라 표현할 수 있지만, 상술한 얄팍한 고민과 어우러지며 양산형 이야기처럼 여겨집니다.

 

 

 


 

자, 이제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를 해 봅시다. 먼저 줄거리부터.

 

영화는 데드풀이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시작됩니다. 엄연히 세계를 구한 영웅이지만, 그는 그 길을 버리고 일반인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삶은 그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천생연분 같던 애인과도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권태의 끝에 그에게 찾아온 것은 '평행세계에서 데드풀로서 활약한다'는 선택지였습니다. 그는 그걸 단번에 받아들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세계가 파멸할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세계의 존재의의라 할 수 있는 '울버린의 죽음'이었고, 그는 그 파멸을 막기 위해 파멸의 트리거라 할 수 있는 울버린을 다른 차원으로부터 데려옵니다.

 

하지만 이는 세계의 멸망을 되돌릴 수 있는 것과 직결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울버린과 데드풀은 결국 쓰레기 차원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의 지배자와 갈등을 빚으며, 그가 전 차원을 붕괴시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결국 그들은 그곳의 반란군들과 협력하였고,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세계의 붕괴를 막아내고, 마침내 평행세계의 평화를 이뤄냅니다.

 

뭐, 대충 이야기했는데 어떤 흐름인지는 잘 아시겠죠?

 

 

 


 

사실 이 영화는 좀... 애매한 영화입니다.

 

엑스맨 유니버스를 대표하는 것은, 라이언 레이놀즈의 데드풀이 색다른 방식으로 어필했다 하더라도, 결국 어찌 되었건 휴 잭맨의 울버린입니다. 엑스맨 사가는 결국 울버린 사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마저 돌았을 정도고요. 그래서 울버린이 출연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데드풀과 울버린은 기존 엑스맨 유니버스가 마블 유니버스에 녹아들게 하기 위한 장치일 것이라 여겼습니다. 일종의 바톤터치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반대로 말하자면 "데드풀이 자신의 일상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어벤져스에 가입을 하려 했지만, 자기의 진정한 근원은 그것이 아님을 깨닫고, 자신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이 일상이라는 것은 결국 엑스맨 시리즈를 말하는 것으로- 이 영화는 마블 유니버스로의 귀속이 아닌 평행세계로서 대등하게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고요. 데드풀의 변화나 성장 같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니었던 겁니다. 애초에 "파랑새는 우리 집 다락방에 있었다" 클리셰를 따르는 작품군이었던 거니까요.

 

구조만 따지면, 차라리 로건의 속편에 가까운 모양새입니다. 자신의 모든 걸 남기고 떠난 울버린의 모습을 보고 자란 이가, 결국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몰린 울버린에게 진정한 자신을 깨닫게 하는 모습이니까요. 아마 적잖이 호불호가 갈린 것도 여기서 기인할 겁니다. 로건은 너무 완벽하게 이야기의 막을 내렸는데, 조심스럽게 약간의 연장선을 제시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이야기를 계속되게 만들어 버렸고, 데드풀 영화 고유의 맛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버렸으니까요. 더군다나 이 영화는 단순히 로건의 마무리만이 아닌 다른 캐릭터들의 마무리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는 야심을 내비쳤습니다.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마찬가지로 너무 편의적으로 쓰인 소재들이 눈에 너무 띕니다. 폐인이 된 울버린은 로건에서, 기존의 멘토가 멘티가 되고 멘티가 멘토가 되는 관계는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각각 쓰였던 겁니다.  그 외에 여러 요소들도 마찬가지.

 

액션은 초월적으로 강력한 캐릭터와, 전차원적인 방식으로 구성된 소재가 등장하다 보니 데드풀 특유의 액션이 좀 낮게 와닿는 면이 있었습니다. 같은 면에서 오락성도 특별히 뛰어나다 느끼지 못했습니다. 불합격선에 간당간당한... 합격선 위쯤?

 

나름대로 하고픈 말도 있었고, 보여주고픈 것도 있었고, 의미도 대략적으로는 알겠는데- 결과적으로 나온 게 좀 애매한 영화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단순히 오락성과 영화적 완성도만 따졌다면 정말 썰로 돌았던 로드무비의 라쇼몽 버전으로 엑스맨 유니버스에 대해 관조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이 영화는 진입장벽이 꽤 있습니다. 몇 편의 영화를 봐야 한다... 수준이 아닙니다.

 

 

일단 문화적 차이부터. 예컨대 캐나다 드립이 있군요.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 캐나다 사람이죠. 그가 연기한 캐릭터 데드풀도 캐나다 국적입니다. 울버린도 캐나다 국적이지만, 해당 캐릭터를 연기한 휴 잭맨은 호주 사람입니다. 캐나다 드립자체가 미국에서 잘 쓰이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 관객들에게 잘 체감될까... 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캐릭터는 물론이고 배우 국적까지 신경 쓰면서 보는 경우가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네요.

 

ⓒ marvel comic books

 

또한 여러 세계의 울버린들. 일단 코믹스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영화화된 에피소드들이 아닙니다. 몰라도 재밌게 볼 수 있다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만 단신 울버린 같은 경우는 실제로 계속해서 새로 영화를 찍을 캐스팅에서 단신 배우로 할지 휴 잭맨처럼 장신 배우로 할 지 꾸준히 이야기가 나왔던 소재인지라 그에서 그치는 것만도 아닙니다. 헨리 카빌의 울버린도 마찬가지. 캐스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리얼 타임으로 쫓아갔던 사람들이 제일 많이 웃을 수 있을 겁니다.

 

세 번째 구 마블 원작의 히어로 영화들. 몇 년 전 개봉했던 스파이더맨 3편만 해도 샘스파 세 편을 다 봐야 해서 허들이 높다는 소리가 나왔는데, 한 술 더 떴습니다. 설마 제가 안 본 히어로 영화의 캐릭터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일렉트라라니. 딴엔 꽤 봤다고 생각했는데도. 블레이드야 삼부작이 당대에도 그렇고 지금도 평가가 꽤 괜찮기 때문에 반가움이 컸습니다만.

 

네 번째 캐스팅 개그. 상술한 울버린과 관련된 컷들도 있고, 언제까지 울버린을 휴 잭맨이 연기할지에 대한 농담도 있습니다. 또한 블레이드가 자신은 유일하다 드립을 치지만, 드라마 블레이드가 제작되었던 바 있고, 뭣보다 새로 캐스팅해서 등장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죠. 물론 아직 본편에 정식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또한 갬빗의 경우는 캐스팅이 되고 제작단계까지 밟았지만 취소된 케이스입니다. 이런 걸 다 아는 사람이 국내 관객들 가운데 몇 명이나 될지 잘 모르겠네요.

 

다섯 번째 드라마 로키. 평행세계 관리 기관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관련된 내용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 이 소재를 봤을 때 얼마나 피부에 와닿을지... 잘 모르겠어요. 보통 어떤 이슈가 터지고, 히어로가 그걸 수습하고, 그 과정에서 해당 기관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세계관이 확장되곤 합니다. 그러니까 보통은. 그런데 본 작은 이미 다른 매체에서 모습을 드러낸 기관이 등장해서 영화의 기승전결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한 편, 히어로의 주먹 한 방에 피투성이가 됩니다. 소재 자체는 흔하고, 기능하는 방식도 뻔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해당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안 사람은 어떻게 와닿을지 정말 가늠이 안됩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거나, 최소한의 설정에 대해선 알고 가는 게 좀 낫지 않나 싶네요. ...드라마 로키를 이야기한 시점에서도 대충 알겠지만, 기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이해는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캡틴 아메리카를 누가 연기했는지 정도는...

 

여섯 번째로, 꼭 봐야 하는 영화들. 일단 로건. 이건 무조건 봐야 됩니다. 그리고 데드풀은 1, 2편... 1편만 봐도 될 거 같지만, 2편에서 저지른 일이 살짝 언급되기 때문에 그래도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엑스맨 시리즈도 최후의 전쟁 정도는 봤다면 괜찮겠네요. 그 외엔 사실 해당 캐릭터를 누가 연기했었는지만 알아도 무방합니다. 메인 스토리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이들은 없거든요. 그래도 필요최소한으로 즐기고 싶다면 블레이드 1편, 갬빗은 영화가 없고, 판타스틱 4도 1편만 봐도 될 거 같고... 엘렉트라는 엘렉트라 영화를 봐야 하는지 데어데블을 봐야 하는지.. 데어데블을 보는 게 좀 낫기는 하겠네요.

 

일곱 번째로 할리우드 가십입니다. 휴 잭맨의 이혼 드립도 그렇고, 엘렉트라와 데어데블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해당 배역을 연기했던 벤 애플렉과 제니퍼 가너는 실제 부부 사이였고, 이혼한 뒤에도 같이 살며 '아메리칸 스타일'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습니다. 이외에도 마블의 최근 상황이나 제작방식의 흐름에 대해서도 아는 게 영화를 이해하는 데 편합니다.

 

보통은 이런 드립을 치면 상대 캐릭터가 리액션을 하며 그 분위기로 웃겨주는 경우가 있는데, 하필 4의 벽을 넘는 캐릭터가 하나뿐이다 보니 적절하고 과장된 리액션을 상대 캐릭터가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도 그리 긍정적으로 작용하진 않은 듯합니다.

 


 

상술했듯, 이 영화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녹아드는 엑스맨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되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엑스맨 시리즈는 마블 없이도 여전히 잘 존재할 수 있다 어필한 작품이고요.

 

제대로 된 마무리를 짓지 못한 엑스맨 시리즈에 대한 일종의 헌사이자(감독은 러브레터라고 했다더군요), 그 영화를 본 관객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인 것입니다.

 

영화의 메인 악역은 찰스의 여동생처럼 보입니다만, 사실 이야기의 구성에서 배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 영화는 멀티버스를 자의적으로 무너뜨리려는 기관의 인물이 사실상 최종보스 격인 존재인데, 이 인물은 사실 현실에 존재하는 기업가형 캐릭터에 가깝습니다. 그는 인기캐릭터 울버린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상황이 닥치자 해당 제작 계획을 아예 날려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실제로 갬빗 등의 영화가 취소되기도 했죠. 반면 그나마 인기를 끈 캐릭터인 데드풀은 디즈니 라인으로 끌어와 특별히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를 제작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블의 구세주라 스스로를 주창한 데드풀이 제대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한 구 마블 영화 캐릭터들을 출연시키고, 그들의 세상을 구원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세계에 울버린을 정착시키기까지 합니다. 

 

영화는 예전에 개봉했던 스필버그작의 레디 플레이어원과도 같습니다. 레디 플레이어원 역시 영화감독의 자전적인 캐릭터들과 기업가형 악역이 등장하는데, 그 악역은 게임에 대한 이해보다는 그 영향력과 그로 인한 수익에 훨씬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로열티 부서를 이용해 다른 게이머들을 압박하는데, 이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하고 치환하면,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저작권을 들이밀며 압박해 로열티를 받아내는, 창작자와는 거리가 먼 기업자의 면모를 의미하거든요.

 

분명히 그만의 울림이 있고, 나름의 감동이 있는 작품이긴 합니다. 여기저기 뭐가 툭툭 걸리는 것만 빼면.

 

 

 


 

툭툭 걸리는 것 몇 가지 이야기해 볼까요?

 

터미네이터 3를 두고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후대의 영화가 아무리 망해서 끊임없이 재평가되어도 이 영화는 결국 시리즈를 다시 시작했다는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이죠. 로건으로 울버린 사가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사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겁니다. 반대로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로 완벽하게 사가가 마무리되었다고 여긴 사람들에겐 로건이 반대로 사족 취급을 받았었습니다. 결국 시대와 관점에 따른 문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울버린을 데려오는 것을 통해 현 차원의 파멸을 막았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울버린이 부재하게 되어 버린 그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냐는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몇천 년 후의 이야기라고는 합니다만.

 

대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하고는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습니다. 디씨의 플래시를 이야기할 때도 그랬는데, 해당 소재를 사용한 히어로물들... 소재하고 결말을 짓는 방식이 너무 겹칩니다. 적을 물리치기 위해 다중차원에서 동료를 모은다거나, 적이 된 다른 차원의 자기들을 만난다거나, 적을 직접 물리치기보단 차원의 존재 규칙을 지키게 하는 것을 통해 자멸케 한다거나. 앞으로도 이걸 계속 쓸 거 같은데, 감당이 가능하려나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익숙한 캐릭터들을 충격요법으로 쓰는 것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닥터스트레인지 시리즈는 호러 장르라 감안하면 저것이 쓸 법한 것이기는 했지만, 반대로 멀티버스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기에 독으로 작용했던 케이스라 여겨집니다. 그래도 본작에선 아군급 조연 캐릭터들은 저 정도로 소비했다 소리까지 들을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적의 카메오급 캐릭터들은 마찬가지의 소리를 들을 것 같습니다.

 

 

 


 

이젠 좋았던 점에 대해서 몇 가지 써보려 합니다.

 

첫 번째. 반가운 얼굴들. 이런저런 조역과 카메오들이 많이 나옵니다. 엑스맨 시리즈가 90년대부터 시작된 연대기고, 블레이드가 90년대 중반에 개봉했던 영화니 역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개인적으로는 블레이드의 웨슬리 스나입스가 가장 반가웠습니다. 

 

두 번째. 그래도 해피엔딩. 로건의 완벽한 마무리. 하지만 그래도... 라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본 작은 최소한의 만족감은 줄 겁니다. 물론 이 세계의 로건은 그 세계의 로건이 아니고, 로라도 그 세계의 로라인지 아닌지 확언은 없기 때문에 말장난 아니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세 번째. 울버린의 가면. 본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사전에 아예 정보를 없이 가서 정말 기대도 않았던 장면인데 좀 짜릿했습니다. 90년대 국내에 발매되었던 vhs나 게임에서 울버린을 먼저 접했던 사람들은 전율이 일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90년대 후반 엑스맨 영화가 개봉한 이래로 울버린이 가면을 쓴 건 처음입니다. 다만 좀 어색한 장면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투구나 가면은 그만큼 소화하기 어렵기는 하죠.

 

네 번째. 지랄 맞은 멀티버스는 그만하자는 대사. ...정확히 이거였는지는 헷갈립니다만, 대충 저런 의미였습니다. 제가 내내 멀티버스에 관련하여 비판을 했는데, 작중에도 저런 대사가 나왔다니... 꽤 의미심장하죠? 실제로 멀티버스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구성하면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원이 무너져서 전 우주가 멸망하는데, 장르를 건물 내에서 펼쳐지는 살인사건 정도로 제한할 수가 없잖아요. 더군다나 최대관객의 최대 재미를 지향해야 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최소한 만들고 있는 사람들도 이게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는 걸 인지는 하고 있다는 거니까요.

 

다섯 번째. 울버린의 복귀. 휴 잭맨이 언제까지 울버린을 할 수 있을지 본인도 잘 모를 겁니다만, 확실한 건 정말 잘 어울리네요. 연기하기 어려운 영화였을 건데, 잘했습니다. 진짜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재미있다 재미없다가 아니었습니다. 내부에 교통정리가 제대로 되고 있나라는 생각이었죠.

 

하나의 무비 유니버스 속에서 개별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각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더없이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소화해야 하는 주요한 소재가 있고, 이 소재를 활용하는 데 있어 최선의 수는 대략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최소한 자기들끼리는 변별력을 가지려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쉽지 않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군요. 물론 이건 내부적인 이슈도 이슈지만, 경쟁작들에 대해서도 고려를 해야 하지 막상 쉬운 일은 아닐 거란 생각도 듭니다.

 

이 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가장 이슈가 됐던 말이 있습니다.

 

"내가 바로 마블 지져스다. 내가 마블의 구세주다."

 

실제로 마블이 전성기는커녕 페이즈 1 때보다도 폼이 안 좋은 것 아니냐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애초에 성공의 가능성이 그렇게까지 높지 않던 더 마블스나 블랙팬서 2는 제쳐놓더라도 역대급 흥행을 했던 작품의 후속작이자 크로스오버물에서 주연급 활약을 했던 토르의 네 번째 영화와 샘 레이미의 히어로 유니버스의 복귀 등으로 기대받았던 닥터스트레인지 2, 그리고 본격적으로 멀티버스 사가의 문을 연 앤트맨 3 등의 실패는 굉장히 뼈아픈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영화의 완성도도 꽤나 괜찮고, 캐릭터 자체의 개성도 강하며, 4의 벽을 넘어서 활약할 수 있는 데드풀의 존재는 이러한 유니버스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수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하다로 대충 정리되는 것 같네요.

 

그럼에도 괜찮게 즐길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과연 이렇게 결론을 내린 데드풀 그리고 울버린이 어떠한 방식으로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본격적으로 합류할지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 되기도 하였고요.

 

 

 

 


 

사족1. 블레이드와 데드풀이 묘한 대사들을 주고받습니다. 이는 과거 블레이드 3에 라이언 레이놀즈가 참여했었기 때문인데- 하필 블레이드 3은 세 편의 영화 가운데 가장 낮은 평가를 받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레이놀즈의 비중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죠. 참고로 라이언 레이놀즈는 언제나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사족2. 다양한 능력자라는 범주 하에서 보면, 역대급 영화가 나왔어야 했습니다만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배우들이 고생은 한 것 같은데 각 영화들의 고점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이래서 크로스 오버 영화가 쉽지 않죠. 그래도 재생능력을 가진 자들끼리의 치열한 싸움은 꽤 볼만합니다.

 

사족3. 해당 장르에서 공무원형 내지 기업가형의 악역 캐릭터는 정말 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본인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고, 최악의 악당들에 비해 적당한(?) 정도의 악함을 지니고 있지만, 그가 종사하고 있는 기관이 초월적인 기관이라 그의 결정이 상상을 초월한 미래를 야기하는 식의 캐릭터들. 현실에서 정말로 보기 쉬운 존재들이고, 실제 창작물에서도 드물지 않게 나오지만, 이쪽을 최종보스로 설정하면 이야기 꾸리기가 만만찮습니다. 실제로 본작에서도 사건의 해결은 그의 상사 같은 존재가 해줬죠.

 

사족4. 휴 잭맨은 울버린으로 완전히 복귀한 것이려나요. 로라도 같은 세계에 정착한 것인지? 아직 확실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만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건 전혀 없네요. 물론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기존 마블 유니버스와의 합병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니. 거기다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속한 이상 속편을 내고 싶다고 낼 수도 없는 환경일 테고...

 

사족5. 마블 내에선 멀티버스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합니다. 일단 긍정적인 포인트는, 멀티버스를 쓰는 경쟁자들이 한동안 나오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디씨는 리부트를 앞두고 있고, 소니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었다고 하네요. 또한 마블 자체적으로도 판타스틱 4와 불확실한 영화 한 편 정도를 제하면 개별 영화가 멀티유니버스를 더 이상 메인으로 쓰지 않을 거 같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포인트 첫 번째는 이제 어벤저스 5까지 남은 시간이 1년 반인데, 과연 의도한 만큼 빌드업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두 번째는 반복되는 깜짝 카메오 출연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