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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b급 영화와 못 만든 영화는 달라 - Oh! 투명인간 (2010)

EggSHOW 2024. 7. 10. 09:00

솔직히 이 영화를 언제봤는지 잘 기억이 안납니다. 아마 동아리방에서 봤을 거 같긴한데... (이 시기에 별에 별 영화를 다 봤었으니까요.)

 

여하튼. 얼마 전 인터넷 서핑을 하다 어쩌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봤습니다. 케빈 베이컨에 대해 검색하다 투명인간이라는 소재가 겹치는 이 영화가 검색란에 뜬 것이죠. 케빈 베이컨의 법칙의 실증이었달까요. 그 포스터를 보는 순간,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기하죠? 영화를 언제봤는지 제대로 기억도 못할 정도로 기억이 희미한, 심지어 이제까지 완전히 잊고 있던 영화인데 그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하다니.

 

사실 이 영화는 잘 못만든 영화입니다. 점수를 굳이 매길 필요도 없습니다. 만화 에피소드 한 편을 영화로 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보통 b급 영화들이 저예산으로 제작되었다는 실드를 받으며 낮은 완성도에 대해서도 일종의 면피를 취하곤 하는데, 그건 그 영화들이 영화 그 자체만으로 나름의 설득력을 갖췄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장르적인 재미를 추구하지만 영화적인 재미는 한정적인 경우, 그 경우는 영화에 대한 평가를 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냥 정말 뇌 비우고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면서 봐야 하는 수준의 영화입니다. 사실 더 이야기할 거리가 없을 정도로요.

 

 

실제로 이 영화는 영화 그 자체보다는 원작이 되는 시리즈가 훨씬 유명합니다. 당장 저부터가 이 만화를 보진 못했지만, 존재 자체는 알고 있을 정도니까요. 정확하게는 다른 만화에 대해 다룬 글을 보다, 이 만화에 대한 인용을 봤는데, "아... 그 때 그 만화가 이거였구나..." 했던 거랄까요. 아마 동네 만화방에 해적판으로 있었고 지나가는 길에 본 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

 

여하튼 이 원작만화는 80년대에 연재가 되었던 것이고 당시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모양입니다. 내용은 친척집에 얹혀 살던 토오루는 어느 날 자신이 연어알을 먹으면 투명인간이 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음흉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고를 치게 됩니다. 사춘기 소년의 망상같은 이 내용은 물론 명백한 한계를 정하고 있습니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이 투명능력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선은 넘진 않는다는 거죠.

 

 

사실 글을 쓰기 참 난감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 영환 사춘기 소년의 망상같은 영화입니다. 사춘기 소년 특유의 선을 줄넘기 넘듯 넘었다 들어왔다 하는 게 베이스가 된 상태에서, 심지어 망상까지 하는 것이니까요. 투명인간이라는 소재는 이 황당한 상황을 더 황당하게 풀어내는 소재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 영화와 만화는 명백히 섹스 코미디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이 장르는 특유의 오버스러움과 비현실적임을 기저에 깔고 있습니다.

 

애초에, 80년대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니까요. 비슷하게 드래곤볼의 초반부 내용을 두고 2020년대의 잣대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도, 일견 수긍할 만하지만 당대 연재되던 잡지의 다른 작품들의 수위와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야기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지금의 엿보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첨단기기의 발달로 인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개인의 프라이버시 인식이 비교도 되지 않게 높아지기도 했고요. 당연히 남을 엿보는 행위는 범죄고, 사회에서 용인되거나 작중에서도 권장되진 않지만, 당시의 시대상과 기술발전,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을 고루 따져야 한다는 거죠.

 

애초에 특정 장르에서는 시적 허용처럼 용인되는 수준의 클리셰를 과할 정도로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작품을 즐기는 올바른 태도가 아닐 수 있는 거겠죠.

 

자. 슬슬 투명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인간은 집단문명을 구축하기 이전부터 사냥감을 사냥하기 위해 은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하여 위험한 장소 등을 오가는 투명인간이라는 소재는 널리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현실에서도 투명화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고요.

 

투명인간은 자신을 감추는 것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이율배반적인 소재로도 활용됩니다. 더군다나 욕망을 드러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독특한 포인트죠. 예전엔 마법이나 도술같은 것으로 투명인간이 되었다면, 19세기의 소설을 기점으로 SF적 성향을 띈 것들도 포함되기 시작했습니다. 본작은 연어알을 먹는 것을 통해 투명인간이 되는 주인공의 특이체질로 인한 것이니 굳이 이야기하자면 후자에 가깝겠네요.

 

「Oh!透明人間」場面写真(c)2010中西やすひろ/少年画報社/インターフィルム

 

뭐 길게 썼습니다만, 투명인간이라는 소재는 상술한 이 영화의 장르와 맞물리며 깊은 고뇌의 그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원작이 원작이니 영상 화보 정도의 철저한 눈요기와 흥미 정도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야기도 투명인간이라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라기보단 허술한 주인공의 멍청한 행동으로 인한 얼렁뚱땅 사고뭉치 사건사고에 훨씬 가깝고요.

 

이러한 장르 영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보통 벗은 여자의 몸을 가장 많이 보여줄 것 같지만, 정작 가장 높은 노출 수위와 벗은 몸을 보여주는 것은 남자 주인공이라는 점이지요. 이건 아마 일종의 방어논리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뭐?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하는 이런 영화가 말이 되냐고? 이 영화에서 옷을 제일 많이 벗은 건 남자 주인공이야!" 라는 식의.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저는 90년대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의 영화더군요. 2010년 즈음 기억할 만한 영화들 몇을 늘어놓자면...만추, 악마를 보았다, 인셉션, 아이언맨, 트랜스포머 등등등이 있는데, 이건 b급 섹스코미디 영화임을 감안해도 심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 극장 개봉용 영화가 아니라 원작 만화 팬들을 위한 팬서비스 식의 비디오 영화겠구나" 했는데... 이거 검색을 좀 해보니까 극장개봉 영화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실 좀 믿기 힘들 정도로 싸게 찍은 티가 나는 영화입니다. 애니메이션도 아닌데 뱅크신이 있다니까요. 2010년대면 디지털 작업으로 완전히 전환되었을 시기 아닌가 싶은데 뱅크신을...? 

 

 

 

 

 


사족1. 소재가 소재고, 장르가 장르다보니 작중 등장인물들 가운데 제 정신인 사람이 몇 없습니다. 보통 주인공이 제일 제 정신이 아닌 장르인데, 주인공보다 한 술 더 뜨는 사람이 몇 나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주인공의 캐릭터성은 망나니형에 가까운데, 투명인간 능력을 주인공이 얻어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사족2. 계속 뒤적거리다보니 제가 존재를 알았던 만화가 80년대 원작 만화가 아니라, 그 만화를 기반으로 리메이크해서 만든 2000년대 만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제목은 Oh! 투명인간21입니다.

 

사족3. 제가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투명인간에 대한 담론이나, 변화된 시대상에 따른 다루기 힘들어진 소재에 대한 이야기나, 팬서비스격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이야기나, b급을 주창하고 만든 영화는 못만든 영화와는 엄연히 다르고 장르적인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그 세계관에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제가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에 속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목도 남사스럽게도 '투명섹스와 그녀의 블랙홀'입니다. 아니 원제가 '오! 투명인간 투명소녀의 등장!?(Oh!透明人間 インビジブルガール登場!?)'인데??? 너무 막나가는 것 아닙니까, 심지어 2014년 영화인데?

 

사족4. 제가 영화의 2편을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단의 저 제목을 당혹스럽게 여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엄연히 원작이 있는 작품군이라 미디어믹스가 원작이 상정한 선을 어지간하면 넘지 않을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1편은 분명 노출이 있지만, 상술한 것처럼 흥분하면 투명화가 풀린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에 절대 선은 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술했듯, 여자보다 남자가 훨씬 많이 자주 벗습니다. 이 영화에서 노출은 어찌보자면 코미디의 수단이기도 하죠. 더군다나 노출과 행위는 엄연히 심의등급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아마 이 정도의 수위면 몇몇 국가에서는 청소년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저 제목은 2편이 비교가 안되게 수위가 높거나, 언제나처럼의 제목장난질의 결과물이겠구나 생각을 하는 거죠.

 

사족5. 제가 이 영화를 두고 90년대 비디오 영화 아니냐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일단 제가 검색한 자료로는 2010년 개봉한 극장용 영화인데... 찍어뒀다 한참 나중에 개봉했을 수도 있고, 극장도 큰 규모가 아니라 소규모로만 개봉했을 수도 있으니 너무 큰 의미는 두지 않으려 합니다. 실제로 속편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영화 본편에 대한 이런저런 케어는 잘 되고 있진 않은 모양입니다. 유튜브에 본편이 저화질이긴 하지만 통으로 올라와 있네요.

 

사족6. 본편보다 사족이 더 알찬 거 같은 건 기분탓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