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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쿨타임만 돌면 까이는 레디 플레이어 원. 동의하시나요?

EggSHOW 2024. 8. 4. 09:00

이 영화는 '사다리 차기'고, '게임규제를 옹호한다' 등등의 프레임에 대해 여러 차례 반박하는 글을 썼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보통 직접적으로 반박하기보다는 조롱하거나, 비추정도만 하거나 하더군요.

 

이미 커뮤니티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에 대한 대략적인 평가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 평가의 내용은 정말 흥미롭게도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이건 좀 놀랍죠. 나름대로 함의하는 상징들이 녹아있는데,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들도 어느 정도의 옹호의견이 있는 걸 생각하면, 이 영화가 커뮤니티 내에서 받는 평가는 당혹스럽다못해 황당할 지경입니다.

 

그렇기에 레디 플레이어 원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바뀌질 않을 겁니다. 이 영화는 이미 평가의 대상이 아닙니다. 조롱의 대상이고, 증오와 울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최소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앞으로도 쓰레기라 불리는 일이 더 많을 겁니다.

 

 

흥미로운 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저 의견이 비롯된 것이 한 리뷰어의 말이었다는 겁니다. 물론 공감을 받았고, 많은 이들이 보는 것이었기에 저만큼이나 퍼진 것이 사실입니다만, 엄연히 저 리뷰어와 다른 말을 하는 평론가들도 많았다는 점입니다. 이게 단순히 평론가에 대한 대중의 유리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리뷰어의 농담이 때론 평가를 위한 분석보다 우선한다는 건 낯선 일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보다도 우선해야 하는 자신이 직접 영화를 보고 직접 고민하는 것이 어느 순간 완전히 거세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계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가 국내 평론가들에게 나쁜 평가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해외의 평론가들에게서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별점이 나쁜가, 그런 것도 아니거든요. 영화의 가장 우선하는 것은 개인의 감상이라며 다른 평론을 짓밟는 이들이 정작 다른 리뷰어의 농담을 갖고 조롱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일단 사다리차기라는 의견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볼까요? 자, 게임의 승리를 통해 회사를 물려받게 되는 대규모 이벤트의 당위성은 일단 제쳐놓읍시다. 이런 건 창작물의 시적 허용식으로 허용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그 회사를 물려받은 다음, 바로 해당 이벤트를 없애고 자기가 회사를 운영하는 게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일겁니다, 저 주장에 따르자면. ...맞나요, 그게? 홀리데이가 죽음을 앞두고, 해당 세계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해당 게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물려주고자 한 것인데? 그럼 홀리데이가 계속 게임을 운영할 땐 끊임없이 사다리를 차고 있었던 거라는 소리일까요? 저는 이에 대해 딱히 반박할 뭔가를 찾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기본 설정에 나오는 내용이라.

 

왜 이 의견이 힘을 얻었을까... 솔직히 잘 이해가 안됐는데, 널리 퍼진 게임 소설의 영향이 아닐까 어느 순간 조심스레 추측하게 되었습니다. 한 때 크게 유행했던 게임소설에서, 가상현실 게임은 신분상승과 재산획득의 가장 요긴한 수단이었습니다. 본작의 주인공은 게이머로서 이걸 해낸 사람이고, 개발자인 홀리데이는 이와는 다른 입장이었으니 배제됩니다. 퍼시발과 다른 게이머는 기본적으로 경쟁자이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일을 해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게임 외적인 방식으로 게임이용에 제한을 가했습니다.

 

그런데 이 논리는 아주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습니다. 첫째 오직 퍼시발만이 할리데이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라는 거고, 둘째 애초에 이 영화에서 게임은 저러한 수단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세번째로 퍼시발은 게임에서만 활동한 사람도 아니라는 겁니다.

 

퍼시발은 할리데이의 시험을 통과한 시점에서 일반 게이머가 더이상 아닙니다. 그가 자기가 물려받은 회사를 어떻게 하건 결국 그건 그의 자유고, 그가 게이머로서 다른 게이머들과 앞으로 경쟁하건 말건 그건 그의 자유입니다. 더군다나 할리데이가 그것을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상품의 규모가 크고, 일반 게이머의 입장에 더 몰입하기 쉬운 구조였기 때문이었을까요. 굳이 비교를 하자면 회사지분을 물려받은 천상계 실력의 얼굴마담격 프로게이머가 차라리 퍼시발에 더 가까운데, 온라인 게이머A정도로 여기니 구조 자체가 불평하다는 생각이 드는 지도 모릅니다. 실상 이 영화에 대한 비판 상당수는 90년대부터 온라인 게임이 크게 흥행하여 그에 익숙하여 그 틀이 확실하게 잡힌 한국 게이머들의 기준에 영화가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겁니다.

 

또한 본작은 게임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며, 더 나아가 인간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기도 합니다.

 

로열티부서로 인해 게임 이용에 제약을 받는 작중 이용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를 사랑하지만 영화를 만들다보면 계속해서 태클을 거는 저작권 부서들에 대해 골머리를 앓는 창작자들에 이야기기도 하다는 평가가 있죠. 결국 창작은 누군가에 대한 차용에서 비롯되는 건데, 지금의 환경은 너무나 각박하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 영화가 시대와 국가를 뛰어넘은 문화의 총체를 노렸다는 점에서, 이른 바 거장으로 불리는 사람이 만들어준 창작의 폭의 확대라고도 할 수 있겠죠.

 

또한 작중에서 게임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수단입니다. 퍼시발은 홀리데이와 영화감독 스필버그는 매부리코에 곱슬머리를 가진 유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실상 감독 그 자신의 자전적인 캐릭터이기도 한 것이죠. 퍼시발은 홀리데이로부터 세계의 알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을 이어받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상징성을 가장 잘 드러내보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터에그는 그 정의상 드러내보이지 않은 숨겨진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작중에서 에그는 사람을 죽이려드는 악당조차 감화시키는 그 어떤 무언가입니다. 단순히 홀리데이의 메시지인 것만이 아닙니다. 에그는 그 세계의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고, 관계를 만들어가고, 또 많은 것을 얻어가는 세계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생명의 탄생은 그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처럼, 세계의 탄생은 그 무엇보다도- 심지어 게임을 단순히 이윤의 수단으로 추구하고 다른 사람을 죽이려했던 악당조차 감동하게 만드는 것이었죠.

 

퍼시발은 이 세계의 알을 통해 홀리데이의 세상을 넘어 자신의 세상을 펼치게 됩니다. 좋은 동료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게 된 그는 정당한 계승자로서 홀리데이가 저질렀던 실책을 자신은 저지르지 않겠다 천명합니다.

 

홀리데이는 퍼시발이 자신이 저질렀던 실책을 반복하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는 오직 게임(영화)만 알고 주변 사람들을 떠나보냈고, 그 분야에서 비교할 바 없는 거대한 성공을 거뒀지만, 종래엔 결국 그것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초라한 삶을 후회했습니다. 게임 내 소년과 노년 할리데이는 존재하지만, 청년과 중년 할리데이는 부재합니다. 이것은 그가 실패를 저질렀던 시기이고, 이 시기는 지금의 퍼시발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홀리데이는 유년기 순수했던 게임(영화)에 대한 추구를 결국은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그 유년기의 끝에 찾아온 것은 그저 게임 한 편과 자신의 죽음 뿐이었고 그는 이것을 후회했습니다. 그가 퍼시발의 "당신은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결국 감사를 표하는 것은, 자신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남겨두었던 게임이 자신의 실수를 뛰어넘어 새로이 이어지는 세계로 완성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퍼시발은 게임(영화/문화)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것이 가지는 힘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집단의 내부에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풍족하게 해 주었고, 더 나아가 그의 인간관계를 넓히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게임(영화/문화)에 대한 예찬만으로 끝나는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결국 그것이 우리네 삶을 보다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이야기하였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퍼시발의 관계는 게임에서 비롯되었지만, 게임 외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퍼시발의 투쟁은 게임에서 시작되었지만, 게임 바깥에서도 계속됩니다.

 

이 영화는, 게임(영화/문화)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며, 그렇기에 그들이 가지는 힘을 긍정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이 우리의 삶일 수 있는 이유이며, 게임이 즐거운 만큼 우리의 삶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하자 이야기하죠. 게임 내 세상이 우리에게 진짜라면, 우리가 사는 세계도 우리에게 진짜 아닌가요?

 

사다리차기라는 것은, 이 영화를 너무 협소하게 해석한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마치 작중 아이오아이의 논리를 긍정하고, 할리데이의 후회가 틀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영화가 나타내고자했던 바와 정반대로 받아들인 셈입니다.

 

 

같은 의미로, 이 영화가 게임에 대한 규제나 셧다운에 대해 찬성했다는 논리는 너무 개인적인 감상이라 뭐라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느낌까지 드냐면, "나는 빨간색에 대해 안좋은 기억이 있는데, 이 영화에선 빨간색이 많이 나오네요? 기분나쁘니 나는 이 영화를 쓰레기라 부르겠습니다." 라는 정도랄까요?

 

물론 이것이 '틀린' 해석은 아닙니다. 어차피 대중문화라는 게 그걸 접하는 개개인의 기준과 관점에 따라 달리해석되는 거고 이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상술했듯, 이에 대치되는 상징들도 영화 내에 많이 포함되어 있고, 그래도 저러한 해석이 나름대로 힘을 얻으려면 보편적인 기준 하에서 논해져야 하는데, 그 정도까지인가 고민이 된다는 거죠.

 

어차피 사다리차기와 꼰대 이야기를 운운하는 사람들에겐 전혀 중요하게 와닿지 않겠지만, 한국보다 훨씬 개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나라들이 저것을 심각한 하자로 보지 않았다는 점도 어필할 만한 포인트입니다. 흔히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할까요? 한국이나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 문제되었던 것을 끌어와 다른 소재에 대해 투영하며 우리 문화권에 있었던 일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인격적인 비하까지 하는게 맞나 싶은 거죠.

 

 

 

길게 쓸 필요는 없죠. 다시 한 번 이야기하겠지만, 이미 여러 커뮤니티에서 해당 영화에 대한 평가는 쓰레기로 끝이 났고, 결말로 영화를 조진 대표적인 영화라며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 두 사람이 그에 상반되는 평가를 한다고 해서 이러한 평가가 뒤집힐 거 같지도 않네요. 나름대로 대중에게 친화적인 여러 평론가들이 영화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했음에도 되려 그 평론가를 조롱하는 상황인 걸 생각하면 더 더욱이.

 

다만 제가 걱정이 되는 것은, 추후에 영화를 보려 고민하는 사람들이 저런 평가에 휘둘려 자기가 직접 영화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배제해버릴까, 입니다. 이게 그렇게까지 나쁜 영화인가요? 이 영화를 보고 즐거움을 느낀 사람들이 저런 평가들을 보고 내가 영화를 잘못 본 것인가라며 자신의 감상을 재고하고, 영화를 본 사실을 후회할 정도로? 아무리 평론가와 관객의 시점이 동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이라지만, 정말 그 정도라고요? 솔직히 말해, 저는 저 영화에 대해 그토록이나 신랄하게 비난하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정말 저 영화를 보긴 했나 하는 고민을 갖곤 합니다.

 

 

 


 

 

사족1. 몇 번 썼던 글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정말 시도때도 없이 온라인에서 까이는 영화입니다.

 

사족2. 제임스 할리데이와 오그든 모로의 관계는 작중 스필버그와 스탠리 큐브릭의 면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산다는 것과 만든다는 것. 그것이 이어주는 관계는 때론 죽음을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죠.

 

사족3. 이 영화가 유달리 더 비판받은 또 다른 이유는 개봉 시점의 문제도 작용했을 겁니다. 보통 유행하는 소재는 일정한 타이밍이 지나면 처음엔 분석의 대상이 되고, 그 이후엔 비판의 대상이 되며, 그 이후엔 지루함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유행이 완전히 지나가 버리죠. 2010년대 초 한국에서의 게임 판타지 계열의 콘텐츠는 확연이 힘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지판과 지루함의 대상 그 사이였달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개봉하는 레디플레이어원은 그 엄청난 까메오와 헐리우드의 대규모 자본으로 무장했기에 이러한 지지부진함을 날려줄 작품으로 기대받았습니다만, 작중의 묘사는 20세기 말, 21세기 초의 그것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아쉬워한 사람들이 꽤 되었었습니다. 엄연히 그 사이에 증강현실이나 VR 등의 이런저런 기술들이 상용화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