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뒤늦게 본 배틀로얄. 기타노는 진짜 잘 모르겠다
지금 네이버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 치지직에서 "배틀로얄 같이 보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그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링크는 여기입니다. 9월 4일 오후6까지 볼 수 있다고 하네요.
사실 이런 식의 '같이보기'식으로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호오가 갈릴 겁니다. 참고로 여기서의 같이보기란, "스트리머가 영상을 띄워놓고, 표정을 화면의 하단에 같이 띄워 감상과 동시에 리액션을 하는 송출방식"을 말합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같이 보는 것이나 ott를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다르죠. 채팅창을 통해 영상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때론 영화 외적인 온갖 잡다한 정보가 채팅창에서 쏟아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거의 겹칠 정도로 스트리머가 영상에 리액션도 실시간으로 합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유행했던 리액션 비디오의 일종이고, 실제로 해당 포맷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영화를 감상하기 꽤나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혼자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즐겁게 영화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 대해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함께본다는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사실 이전에도 배틀로얄 영화를 볼 기회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만, 보질 않았습니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쉽게 정리하면 원작과 코믹스판을 워낙 인상깊게 봐서 굳이 영화를 볼 필요성을 못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화의 여러 인상적인 평가들에도 불구하고, 원작과 소설에 비해 여러모로 아쉽다는 평가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긴 했거든요. 영화를 본 지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상적인 부분이 있지만, 너무 편의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고, 원작의 설정에 비해 순화되고 뒤바뀐 메시지가 딱히 완성도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것도 아닐 뿐더러, 영화의 고유적인 설정이 딱히 재밌지도 흥미롭지도 않네요.
단편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농구라는 소재와 대동아 뭐시기가 가진 본질적인 한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원작에선 군국주의에 미쳐 날뛰는 일본이 징병제를 대체하여 중학생들을 배틀로얄에 밀어넣습니다. 뭐 여러 이유가 있었죠. 겉으로야 병사육성을 내세웠습니다만, 실제론 국민통제수단이었고, 미국에 져버린 것을 억울해 하는 세대들의 한풀이겸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기도 했죠. 실제로 저걸 빌미로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사상을 가진 이들까지 공격하고 날려버리곤 하니까요.
아직 저러한 사상에 경도되지 않은 어린 세대들은 저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결코 저기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결국 희생양이 됩니다. 구세대들은 이러한 선별과정을 통해 그들이 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었다 선동하지만, 실제론 저 끔찍한 과정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을 무의미하게 날려 버렸고, 그에서 어찌저찌 살아남은 사람들은 폐인이 되거나, 체제에 대해 철저히 반골적인 사람이 되거나 하는 식이 되어 버립니다.
또한 작중에서 저러한 난관을 뛰어넘는데 크게작게 기여하는 농구라는 스포츠는 그들이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스포츠입니다. 이는 저러한 배틀로얄 프로그램이 가진 근본적인 모순을 꼬집고 있으며, 그들이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이들이 아닌 나라의 미래와 그들 스스로이며, 결국 더 부강한 나라를 떠드는 그들이 가장 큰 적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풍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군국주의와 계급화된 사회, 젊은 세대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구태에 대한 비판, 그리고 무한경쟁으로 인해 도태되는 다양한 개성군의 학생교육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닌 붕괴된 공교육으로 인한 학생들과 그러한 학생들에 대해 어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삐걱거리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초반 10분 바뀐 설정에 대해 설명해주는 파트를 놓치면, 대체 왜 이렇게 원작 대비 잡스럽게 각색했나 생각이 들 정도로요.
실제로 기타노 타케시...
이 영화에서 이 양반이 없어져야 영화가 훨씬 깔끔하게 뽑히지 않았을까요? 그에 대해 엄청나게 호평하는 글을 몇 개 봐서 솔직히 납득이 되질 않더라고요. 연기 스타일부터 시작해서 캐릭터가 기능하는 방식,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활용되는 것-뭐... 예컨데 총 맞아도 자기 딸에게 온 전화는 멀쩡하게 받는 식의-도 그렇고... 진짜 잘 모르겠네요.
예를 들어, 학생들의 문제를 강조하고 싶었으면 기타노는 선생과 프로그램 진행자 역할, 그리고 군의 지휘관 역할을 동시에 맡았으면 안됐던 거 아닌가요? 좋게좋게 포장해서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냥 하고 싶은 거 한다 내지 애매한 건 다 떠넘겼다 이상도 이하로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선생역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원작의 흔적 때문이건 뭐건 이 작품의 캐릭터들 가운데 일부는 묘사된 과거나, 대사를 통해 무작정 "모든 게 니들 탓이야"라는 비난을 받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공교육이건 뭐건 어쨌든 사회적인 구제와 계도 시스템이 필요한 이들이었죠. 원작은 이러한 이들을 한 곳에 몰아넣어 대충 퉁쳐 버리는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학생들의 존재에 의의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기타노를 궁지로 몰아넣은 원죄가 있는 자들로 묘사했습니다. 물론 직접적인 묘사가 있는 캐릭터는 하나 뿐이었고, 왕따 등이 묘사되긴 했지만, 정작 학생 하나하나가 묘사될 땐 이를 뒷받침하는 것들이 제대로 존재치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영화상 각색된 부분만 끼워넣었지만 기존 이야기의 흐름은 거의 안건드렸다는 거죠.
그래서 기타노의 존재가 붕 뜹니다. 기타노의 인간적인 선생으로서의 모습은 여 주인공 한정으로만 보여지는 것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가 보면 오해할만한 장면도 꽤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작중에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걸었던 선생이 따로 존재하고요. "여주인공이 기타노 딸 아냐?" 라는 식의 이야기라거나 "애초에 기타노가 이 학급을 선택한 거 아냐?"라거나 "여주인공은 아무것도 안해도 결국 기타노 때문에 살았겠네"라는 식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도 굳이 그가 선생 포지션에 있을 필요가 없는 방식으로 영화에서 기능하는데, 정작 끝까지 선생 포지션이 강조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게 현 학교생활에서의 선생과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기엔, '두 사람의 지원자'가 너무 걸립니다. 쾌락살인마와 해당 프로그램의 경험자말이죠. 원작에선 '유력 정치인 자식이건, 재벌 후계자건 선택되면 올 수밖에 없다'는 룰 아래서 펼쳐지기 때문에 제각각의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펼쳐도 납득을 할 수 밖에-군국주의는 결국 모두를 망친다, 더 가진 자건 이미 경험한 자건 간에- 없었던 건데, 저런 지원자가 있어 버리니 학교에서의 문제로 한정하여 지적하기 애매해지는 겁니다. 한쪽은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생겨난 이레귤러고, 다른 한쪽은 이 프로그램을 졸업하여 생겨난 존재입니다. 기존의 학교 시스템과는 무관한, 오직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서만 생겨난 존재입니다. 좋게해석해주면야 결국 이 프로그램도 학생들의 문제를 해소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암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서야 기타노를 막다른 곳으로 몰고간 학생들이라는 포지션은 제대로 강조될 수가 없죠
기타노는 분명 선생 시절에 끔찍한 경험을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고통도 겪었고요. 하지만 동시에 작중 내내 그의 기괴한 취향이 강조되고, 초월적인 권한과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 룰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정에서 소외되고 직장에서 고통받았다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꺼림칙한 게 많습니다.
특히 기타노가 보여주는 죽음과 자살을 미화하는 듯한 일본 특유의 문화는... 예. 그 외 문화권에 사는 사람에겐 진짜 뜬금없고 기괴하게 느껴지네요. 특히 이미지에 확실히 반전을 줬어야 했던 결말부의 여주인공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보고나서조차 '학생들이 밑도 끝도 없이 이 사람 수업을 거부했던 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갖게할 정도입니다.
물론 작중에선 결국 자기가 죽기를 바라던 여 주인공이 아니라 남주인공에게 죽었기에 완전한 구원은 아니었다는 식으로 눈가리고 아웅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애초에 영화를 보면 남주인공이 여주인공 이상으로 더 고귀한 존재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했고, 정작 부모의 부재가 강조된 건 결국 남주인공이었기 때문에 딱히 달라진 것도 아니네요.
기타노 관련으로 투덜투덜댔습니다만, 그래도 재밌게 봤습니다.
사실 이 배틀로얄이라는 건 2000년대 초에 엽기라는 이름 하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쏟아진 일본 문화 중 하나였고, 이런 것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 표현의 폭의 범주를 대폭 넓힌 작품이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콘셉트의 작품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결의 창작물과 게임은 명백히 이 배틀로얄의 영향을 받았고요.
이러한 오락성이 강조된 데엔, 사실 이처럼 이빨빠진 방식의 구조와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묘사가 작용했을 지도 모릅니다. 수십발의 총알을 맞아도 상대방을 죽이기 전까진 절대로 멈추지 않는 대다수의 캐릭터들과, 그런 상대들에게 난사를 하면서도 결코 총알이 바닥나지 않는 무한탄창의 소유자, 그리고 나름대로 더 많은 뒷이야기가 있어보이는 캐릭터들이 한순간에 픽픽 나자빠지며 급속도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진행 속도를 보면 더더욱.
영화적은 구조의 부실함도, 현실에서 결국은 벌어지는 문제에 대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혼란스러운 입장에서 비롯된, 정말 어찌할 지 모르는 발버둥이었다고 친다면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 지 잘 느낌이 오지 않으니 백년만에 별점이나 매겨볼까요. 이런저런 영화 외적인 이슈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강렬한 소재를 어쨌든 살려서 영상화했다는 점에서 플러스를 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원작과 코믹스의 성과를 생각해보면 마이너스를 받게 되겠군요. 별 다섯개 가운데 세개에서 세개 반 사이 정도를 주려 합니다.
사족1. b급과 컬트에 한없이 가까운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엄청나게 히트쳤고, 고유명사에 가까운 위치까지 점했으니 대단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 후대의 여러 매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예컨데 게임 배틀 그라운드와 같이 말이죠. 여하튼 만화나 소설만이었다면 어려웠을지도 모를 파급력이었습니다.
사족2. 작중 배틀로얄의 결과가 미디어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방영되는 등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데, 정작 학생들은 자기들이 어떠한 상황에 닥쳤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에 지원자가 둘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또 기타노는 정작 선별해서 이 학급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뭐가 자꾸 툭툭 걸립니다.
사족3. 애초에 br법의 존재의의도 괴상하긴 합니다. 학급 하나 본보기 삼아 두들겨 패서 다른 학생들 전부를 말 듣게 한다? 현실성도, 가능성도 없지 않나요. 심지어 중삐리 서바이벌 한 번 한다고 수십수백명의 군인이 동원되고 특정 지역을 아예 비우도록 하는 건 더, 더 괴상하죠. 차라리 그 군인으로 직접 학교 관리하게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경제적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데 정작 작중 묘사되는 사회문제는 또 선진국형 문제에 가깝습니다. 마찬가지로 툭툭 걸리는 부분. 참고로 원작에선 일본이 북한같은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저런 게 벌어졌다 이야기합니다. 본작은 심의문제인지 아니면 현실의 일본 교육 문제를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인지 전혀 다른 모양새가 되었습니다만.
사족4. 예. 세계관이 정말로 괴상합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칼에 맞는 골때리는 상황이 펼쳐졌는데, 바로 다다음컷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수학여행을 가는 일상적인 모습이 그려집니다. 선생한테 칼을 휘두른 애는 주인공의 도덕적, 심리적인 잣대와 책임의 기준으로 계속 얼굴을 비춥니다. 타락해버린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여자애만은 선생을 잘대했기에 선생이 다르게 취급했다라는 식으로 영화가 전개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여자애가 누구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사이좋게 이야기하는 친구가 몇이나 나오고, 그 여자애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애들도 여럿 나옵니다. 또한 우정을 잃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거란 식의 묘사도 계속 나옵니다. 본인의 참여나 제반환경이 어느 정도 갖춰지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스포츠 클럽활동이 활성화될 정도의 환경인데, 저런 막장상황이 같이 공존한다는 건 참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왕따나 선생한테 칼 휘두른 것 등은 전부 영화의 각색에서 삽입된 설정이죠. 이 영화는 빈말로도 각색이 잘 됐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사족5. 애초에 기타노가 이 br법을 집행하고 학급을 선택하는 이였고, 이것이 알려져 있었다면,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 의문들이 해결됩니다. 애초에 저 정신나간 법을 집행하는 것에 기여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 취급 안받겠다는 소리나 다를 바가 없으니까요. 동료 교사나 학생들도, 심지어 가족들도 정상적인 취급 안했을 겁니다. ...물론 이걸로 해결이 안되는 묘사도 많습니다. 만약 저게 진짜였다면 적대시하기보단 무슨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차라리 없는 취급을 했겠죠. 실제로 그에게 반대한 선생은 죽었고, 그에게 칼을 휘두른 학생은 똑같이 고통받다 그에게 죽었습니다.
사족6. 배우 기타노 타케시가 기타노 타케시라는 이름의 캐릭터로 나옵니다. 원작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캐릭터와 전혀 다릅니다. 상술했듯 원작은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경계를 주로 삼고 있고, 해당 캐릭터는 절대악에 가까운 모양새입니다만, 본작에서의 기타노는 붕괴된 공교육에 의한 피해자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습니다. 영화의 틀은 배틀로얄로 구성되어 있지만, 정작 주제는 전혀 다른데, 그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이 양반입니다. 그런만큼 영화에서 기타노의 비중은 매우 높고, 그에게 기대고 있는 바도 큽니다. 이에 대해 저는 "어려운 주제를 다뤄서 뭔가 있어 보이기는 해야하는데 민감한 문제라 뭐라 결론은 못내리겠고, 벌어지는 학생문제에 대해 창작물로서 대리 해소적인 역할은 해야 겠는데 선을 끝까진 넘을 순 없고, 영화적인 재미는 줘야겠는데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신인이고 캐릭터당 비중은 작을 수밖에 없는 구조네... 대충 기타노에게 던지자"라 감독이 여긴거 아닌가- 그런 근거없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그때문인지 뭔지 그는 상술했듯 연기고 뭐고 엄청 튑니다, 본작에서. 아마도,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추측이라는 단서를 달고 하는 말입니다만, 예능 등에서 모습을 비추던 "성질 더러워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할 말 못 할 말 다 하며 일침놓으며 웃기고, 또 때론 두들겨 맞는 꼰대 캐릭터" 그 기타노 타케시를 영화에 아예 끌어온 거 아닌가 싶네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근데 만일 정말 그렇다면, 이건 정말 일본 문화에 대해 잘 아는 사람만 와닿는 요소일 겁니다. 당장 바다 건너 한국인만해도 이런데 서구에서는 어땠을까요? 그래도 교육환경이 어느 정도 비슷한 한일과 달리, 아예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 별개로 받아들였을까요? 물론 상술했듯, 이러한 사항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어른들이 학생들을 죽음의 게임에 몰아넣어 서로를 죽이게 한다'는 그 압도적인 자극적 소재로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친 작품입니다.
사족7. 카즈오같은 경우, 코믹스에선 통배권 쓰고 초상비쓰고 난리가 납니다. 그런데도 영화가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영화상 묘사되는 모습을 보면 터미네이터가 따로 없습니다. 아니 진짜로. 사실 그뿐만이 아니라 "총에 맞았는데 왜 안죽어?" 하는 경우가 몇분 걸러 한 번씩 나옵니다. 아마 작중에서 나오는 총들은 빨간 페인트가 튀도록 개조된 총일지도 모릅니다. 맞으면 정말로 아프고 많이 맞다보면 결국은 죽는데 바로 죽지는 않는. 그렇지 않다면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족8. 이 영화에 대해 널리 알려진 사실 중에 하나가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가 열렬한 팬이라 밝힌 작품이라는 점일 겁니다. 자기가 이 영화를 만들지 않은게 질투가 날 정도였다고 했었나요. 실제로 본작에 쿠리야마 치아키가 나오는데 아주 강렬합니다. 어중간한 주역급 캐릭터보다 더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가 있고, 연기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많습니다. 실제로 이후 킬빌에서 고고 유바리로 캐스팅되었고, 마찬가지로 아주 강렬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사족9. 상술했듯 굉장히 속도감있게 전개됩니다. "오 이 녀석 좀 치겠는데?"라고 생각될 정도의 인상과 비중을 보여줘도 순식간에 죽어 버립니다. 그리고 원작대비 수위도 낮아졌습니다. 도저히 타자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상황을 겪었던 캐릭터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캐릭터들의 과거는 단편적인 대사와 잠깐의 회상 정도의 암시로만 제시됩니다. 결과적으로 주인공은 부모의 부재 외의 방식으로 크게 어필되지 않고 비중상 상당한 너프를 먹었습니다. 반대로 보호와 구조의 대상이 되었던 여자주인공은 반대로 의외의 역할을 제시받아 비중이 크게 늘었습니다.
사족10. 소재가 소재다보니 개봉 관련해서 여러 나라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던 영화입니다. 이건 제작된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었다고 하는데, 반대로 이것 때문에 더 홍보가 되어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네요. 반대로 학교에서의 총기난사와 관련하여 개봉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족11. 저 엄청난 속도로 전개되는 데에는 학급 전체가 등장인물이라는 이유도 있을 겁니다. 중심 등장인물이 셋만 되어도 산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가 종종 있을 정도인데, 이 영화엔 대사가 최소 몇줄은 되는 인물이 수십은 됩니다.
사족12. 원작 기준 탈인간급의 무술가, 스포츠스타, 프로그램 졸업자, 사이코패스 초천재, 경국지색급의 초미녀, 국가전복을 위한 엘리트 교육을 받은 반란분자 등등등의 학생 캐릭터가 나옵니다. 그래서일까요? 원작을 각색한 사람은 이게 말이 안됐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불순분자격인 애들이 모인 학급이었으며, 지원자도 받았다는 식의 설정으로 변경했습니다. 하지만 상술했듯 이 부분을 건드리는 바람에 뭔가 충돌하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사족13. 이번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 새삼 느낀 건데, 원작에선 1년에 50개 학급으로 저 짓을 벌였었군요. ...한 반에 40명 이라고 치면, 매년 2000명을 저 지옥에 떨어뜨리고 그 중 50명 정도만 살아남았다는 건데- 진짜 막장이네요.
사족14. 상술했듯 남자주인공은 비중이 원작대비 상당히 축소되었는데, 여자 주인공은 반대로 상당히 늘어났습니다. 사실상 본작의 주제의식을 꿰뚫는 캐릭터인데, 이 캐릭터의 키워드는 왕따, 보호받는 존재, 그리고 상처의 공유입니다. 특히 '기타노를 베어 버린 칼을 감춰버리고 보관하다, 모든 일이 끝난 후 남자주인공에게 주는 것'에 대해 굉장히 많은 해석이 존재합니다. 특히 그녀는 본작에서 거의 유이한 정상인 기믹의 캐릭터인데, 끄트머리에 가선 "애도 좀 많이 이상하다"는 소리가 나오게 만들었으니까요. 기타노도 회상장면서 "너같은 애한테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식의 대사를 치는데, 딱 관객들 반응이 그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