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완벽한 타인 - 완벽한 연기와 완벽한 설정, 그리고 반전
자, 오랜만에 쓰는 글입니다.
이전에 썼던 글도 있고, 쓰다 만 글도 있는데, 중요한 건 접속이 잘 안됩니다. 티스토리에. 다른 블로그에 대략적으로 설명을 했습니다만 간헐적으로 접속이 됩니다. 간헐적으로 접속이 안되는 게 아니라, 간헐적으로 접속이 됩니다.
이 부분은 생략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현재 치지직에서 같이 보기로 완벽한 타인을 내놓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도, 원작인 영화도, 그리고 연극무대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아예 사전 정보조차 하나도 몰랐습니다.
영화를 보기 직전 포스터를 보고 이서진이 나오는구나 했고(구도도 그렇고 시선도 그렇고 관객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올 법 하죠), 소년들이 나오는 영화 도입부를 보고, "저 남자 넷이 주연이구나" 라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남자 넷의 아내들이 상당히 무게감 있는 배우들인 것을 발견하곤, "조연에 왜 이렇게 힘을 줬지?"라고 여겼고요.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니 사실상 등장인물 전부가 약간의 비중상의 차이일 뿐 내용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사실상 7인이 모두 주연이라 말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요.
영화가 이 일곱 명 모두에게 고루 포커스를 준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이 일곱 명 외엔 유의미한 등장인물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일곱이 얽히고 설켜 내용을 전개하고 다른 캐릭터들은 대사 정도만이 등장하며 이들 사이의 갈등을 격화시킵니다. 매씬 주목받는 캐릭터가 달라지고, 원샷을 받을 때 내용을 진행시키기 위한 힘을 배우들이 발휘합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습니다. 결국 영화의 내용은 "휴대폰이 울린다, 이로 인해 서로 갈등이 생긴다. 유야무야 넘긴다. 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새로운 갈등을 빚는다"가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구성입니다. 단조로운 이 구성을 이끌고 가는 힘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에서 비롯되며, 고저차를 부여하며 이야기에 긴장감을 부여하여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연출의 힘입니다.
이 영화에는 몇몇 반전이 있습니다. 사실 영화의 구성 자체가 "서로간에 감추었던 비밀이 드러나면서 갈등이 폭발한다"에 해당하니, 순차적으로 밝혀지는 비밀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스릴러에 가까운 인상을 줄지언정, 진짜 해당 장르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그 비밀의 정도라는 것의 수위라는 것은 일상의 드라마의 범주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영화의 반전을 영화 초중반부에 눈치채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진 반전영화인 이유는 각자가 지닌 비밀이 지금까지의 영화 내용을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캐릭터를 망가뜨리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반전에 목매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깎아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다소 작위적인 요소들이 나오더라도 크게 어색하지 않게 흘러가며 내용 감상에 불편함을 주지 않습니다.
치지직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합니다. 쉴새없이 내용이 뒤집히고 순간순간 도파민을 돌게 만들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나쁘지 않은. 그러면서 배우들의 면면을 보기도 부족함이 없는 영화.
다만, 마지막 인셉션 오마주씬은 호불호가 심히 갈릴 것 같습니다. 게임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을 가정하고 펼쳐진, 게임을 한 상황은 월식 상황에서의 일탈처럼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야기하는 듯한 장면이었는데... 굳이 필요했나 싶긴 합니다. 물론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임에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비밀을 갖고 있고, 이 비밀을 모두 드러내 보이는 것이 결코 인간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물론 여기서 한 번 더 꼬긴 했습니다. 그래서 비밀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옳았나요? 그리고 더 행복해지는 방법이었나요? 영화는 거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달을 비추는 것으로 끝맺음을 했습니다.
뭐, 너 알아서 하라는 거죠.
기본적으로 '같이보기'는 영화를 보다 재밌게 즐기기 위한 포맷입니다. 하지만, 이 인셉션씬만큼은 같이보기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포인트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아내를 쫓아나간 이서진, 그리고 음식을 먹는 조진웅을 뒤에서 끌어안는 김지수. 그리고 인셉션이 펼쳐집니다. 도는 반지가 멈추질 않아요. 사실 저는 영화를 처음 보는 입장이었음에도 "어, 이거?"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오마주를 한 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반지씬 뒤로 펼쳐지는, 게임을 하지 않은 세계관으로 잇는 과정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혼동을 주기 위한 연출에 해당합니다. 관객이 이 혼동의 끝에 이야기를 하나로 잇는 과정에서 주제가 강조되죠. 그런데 같이보기를 하게 되면 영화의 이러한 의도적인 혼란을 야기하는 연출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습니다.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 혹은 이미 정리된 내용을 보고 온 사람들이 채팅창에 답을 이야기해버리거든요.
그렇잖아도 인셉션처럼 하네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감독은 이걸 의도했고 작가는 이걸 의도했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면, 해석의 폭은 급격하게 줄어들어 버립니다. 내 생각이 뭐였는지 나도 모르게 되죠.
영화 내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같이 보기 이후, 누가 제일 쓰레기인가에 대해 순위를 정하는 놀이를 하더군요. 저도 거기에 참여해보자면-
1위는 이서진.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내를 배신했고, 친구를 배신했고, 심지어 외도 상대까지 배신했습니다. 심지어 그걸 그만둘 마음도 없고, 수습할 능력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서진의 비밀은 연쇄적으로 밝혀지는 특히나 더 위험한 것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속이는 다른 이들에 대해 격렬하게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합니다. 자신의 손익과 무관한 부분에 대해서도요.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캐릭터화된 듯한 느낌입니다. 실제로 이 캐릭터는 비밀이 드러나지 않은 세계관에서 잘못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점점 더 불행하게 만들고 있죠. 물론 그 자신도요.
2위는 김지수입니다. "아니! 이딴 게임을 왜 하는 거야, 대체"라는 말이 계속나오게 만든 원흉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비밀은 결코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 게임을 시작했다는 점은 특히 더 섬뜩하게 와닿습니다. 애초에 이 목적도 이서진과 그 아내를 이간질시키기 위함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경우, 악의의 크기로만 따지면 다른 이와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입니다. 심지어 그녀는 과거 자신이 속도위반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행동을 후회하고 있음을 대놓고 보여주고 있으며, 남편이 자신은 그 그릇된 행동의 결과물임을 알고 괴로워하고 있음에도, 그에대해 전혀 마음쓰지 않고 있습니다. 작중 딸이 그녀에 대해 "아빠는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의 대사를 하기도 하고, 어머니에 대해 "엄마나 잘하라"라는 식의 대사를 하기도 합니다.
3위는 염정아입니다.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남편과 같이 지내는 모습이 보여지며, 애초에 이 부부가 가진 비밀들은 그저 솔직히 소통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다른 부부와는 달랐다라고 하는 식으로 비춰집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가요? 저는 이 캐릭터가 이혼을 이야기하며 퇴장하는 씬에서 "그냥 애초에 헤어지고 싶었는데, 약점 잡혔다고 생각해서 이혼도 못했구나"라고 이해했습니다. 애초에 이 캐릭터가 털어놓은 비밀인 음주운전 뺑소니는 다른 이들의 비밀 공개와는 성질이 다릅니다. 다른 이의 비밀공개는 사적인 관계가 비밀이 되어 이것이 공개됨으로 인한 관계파탄으로 자기파멸이었씁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죠. 공적인 관계가 비밀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남들은 도덕적인 문제라면 이쪽은 법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그녀가 다른 이와 동등하기 위해선 피해자나 경찰 앞에서 저 비밀을 털어놨어야죠. 다른 이들이 경찰에 신고를 할 거에요, 어쩔거에요. 영화는 개인간의 관계에 대해 집중하고, 식사시간에 벌어진 사건을 중점으로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에 그녀가 털어놓은 이 비밀이 피부에 와닿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래도 되나 싶은 게 바로 이 캐릭터입니다. (여담이지만 남편은 벌어진 범죄 대비 상당히 작은 처벌을 받았을 겁니다. 음주운전도 아니었고, 뺑소니로 취급은 됐겠지만 자수를 했으니 상당히 경감받았겠죠.) 또 자신의 소설 팬과의 비밀스런 소통도 찜찜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누가봐도 해당 남자는 '찌르는 중'이었고, 아내가 칼같이 쳐낸 상황은 결코 아니었죠. 더욱이 남편은 면허가 박탈된 상황이라 운전하지 못하는데 술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과연 이 부부의 미래는 어떨까요?
4위는 고민이 많았습니다만 조진웅을 골랐습니다. 아무래도 20억의 임팩트가 강하네요. 집과 병원 모두를 담보 잡힌 상태에서 사기를 당했는데, 그걸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건... 더군다나 이건 감출 수 있는 성질의 비밀이 아니죠. 많은 이들이 게임을 했건 하지 않았건 이 부부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조진웅의 비밀은 이 영화에서 모두 드러나지 않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줍니다. 아내가 자신과 결혼한 과거를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으며, 아내의 외도에 대해 확신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가정을 파괴할 정도의 비밀을 갖고 있지만, 자신이 악의를 갖고 한 행동은 아니었고, 자신에게 비밀을 가진 아내로 인해 피해자로서의 면기 강하게 강조됩니다. 그 외의 영역에선 굉장히 상식적인 스탠스를 비추는데, 이게 내로남불의 끝에 가 있는 다른 캐릭터에 비해선 확실하게 가벼운 면이 있습니다.
5위는 유해진입니다. 사실 4위와 5위는 순위가 바뀌어도 크게 문제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해진의 비밀은 누드 사진을 받아본다는 것인데, 사실 야동을 보는 것에도 학을 떼는 여성들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문제될 수 있는 일입니다. 후에 에필로그를 보면 정말 사진만 받아보는 거 같긴 한데 꺼림칙한 게 사실이긴 하죠. 하지만 동시에 아내와 친구의 비밀을 감춰주는 면을 갖추고 있으며, 이 비밀로 인해 자신의 주변이 무너져가는 상황 속에서도 결코 자신의 입으로는 비밀을 털어놓지 않습니다. 그게 옳았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가장 의리가 있는 캐릭터라 평가되고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법적으로도 가족의 범행을 조사하는 것에 대해 협조하지 않거나 하는 등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못합니다. 법도 그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본능이라고 보기 때문에. 물론 아예 작정하고 수사에 혼선을 주거나 하는 식까지는 아니지만.
6위는 윤경호입니다. 한없이 아우팅에 가까운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해외에선 아우팅 자체가 범죄인 점을 생각해보면, 애초에 이 게임에 대해 제작진이 바라보는 시선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딴 거 하지 말라는 거죠. 캐릭터 자체적으로는 대화 중 분위기를 싸하게하는 막말을 하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만, 캐릭터가 처한 특수한 포지션 때문에 감안하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사실 이 캐릭터는 제작진이 본 영화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라 봐도 과언이 아니고, 이 주제를 전달하는 과정이 사실 다소 오그라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이 캐릭터는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아 문제를 극단적으로 키우는 작위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캐릭터를 완전한 피해자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가 가진 비밀은 그의 파트너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기도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파트너 캐릭터가 기능하는 방식도 워낙 작위적이라 또 이런저런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7위는 이서진의 아내 역을 맡은 송하윤입니다.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한 피해자 캐릭터입니다. 이런 저런 오해를 사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결백한 캐릭터가 됩니다. 이건 바꾸어 말하자면 가장 비중이 적다는 소리기도 하죠. 실제로 말리는 시누이 포지션, 하는 말은 맞는데 밉상인 포지션이기도 합니다. 다만, 가장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결국 구원받는 캐릭터이기에 모든 캐릭터 통틀어 가장 잃은 것이 없는-아니 많은 것을 얻은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대충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인간은 세 개의 삶을 산다. 공적인 나, 사적인 나. 그리고 비밀을 가진 나."
공적인 부분이라는 건 자신과 아무런 상관없는 제 3자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약점을 드러나 있지 않고,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포장으로 감싸진 모습을 의미합니다. 사회적인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사적인 부분이라는 것은 자신과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의 인물들에게만 보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건 친구관계가 될 수 있고, 연인관계가 될 수도 있죠. 이 사적관계에서는 인정받는 관계가 다른 사적관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해 두루 널리 알릴 수는 없습니다만, 어찌되었건 사회적인 교류는 나눌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 관계의 기본이 바로 이 사적관계이고, 현대사회가 비대해지면서 공적인 부분이 더 부각되게 되었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밀의 그것이 더 깊어지게 된 셈이죠.
비밀인 부분은 개인적인 부분이 보다 심화된 형태입니다. 현대사회는 휴대폰 등의 기기를 통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진 시대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도저히 보일 수 없는 모습이 유지되고 지속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 여기서 더 나아갔습니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등의 이유로 나 자신보다 이 기기들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있을 정도죠. 실제로 수억원과 자신의 검색기록을 공개하기 따위의 놀이가 있고, 자신이 예기치 못한 이유로 사망할 시 이용하던 컴퓨터 등의 기기를 포맷해주는 서비스도 존재하니까요.
이 영화는 결국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말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하고, 모든 것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선 비극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영화는 비밀의 존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관조하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이 영화를 바라보는 감상이 더욱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영화는 특정한 스탠스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주며 때론 작위적이라 느껴질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합니다만.
뭐, 여하튼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 영화는 특히 재감상을 통해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류의 영화입니다. 잘 만들어진 반전영화의 미덕이죠.
- 사족1. 크롬으로 접속이 잘 안됩니다. 간간히 접속이 안된다가 아니라, 간간히 접속이 됩니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이게 올라갈지 올라가지 않을지 모르겠네요.
- 사족2. 몇달만에 쓰는 글인지 모르겠네요. 일단 글을 쓸 마음이 들어야 하고, 영화도 봐야하고, 이런저런 준비도 되어야 하는데, 정작 사이트에 접속이 안되면 다 리셋되어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