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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주절주절] 살인소설, 진짜 무서울 뻔 하다가-

장르의 전형적인 특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건 인간의 본능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일단 창작물로 존재하는 한,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컨데 코미디의 경우,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에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그 틀을 깨려고 하죠. 남을 놀리거나 때리고,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기를 자처하고, 물건을 부수는 등등의 행동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호러 장르의 경우, 공포를 체험하게 할 뿐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으려 합니다. 공포란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것임을 인정하고 출발하는 것이죠. 이는 인간이 아직 제대로 된 문명을 구축하기 이전,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은 직면한 짐승의 이빨이 아닌 어둠속에 숨어 있는 알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구체화된 위협은 공포가 아닌 대응의 대상이었던 반면, 알수 없는 공포는 그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공포영화 태반이 인간의 무력함을 강조하는 구조기도 합니다. 서서히 일정한 징조를 겪지만 그것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이윽고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이해한 후에 비로소 공포라는 감정에서 벗어나는 구조를 취하고 있죠.

 

 

 


 

이성의 시대를 거치며, 인간은 기존에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요소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단순한 어둠은 인간의 공포를 자극하지 못하게 되었죠.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들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오컬트라는 것이 그러했고, 인간사회 구조 그 자체가 가진 모순이 그러했으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존재도 그에 해당했습니다. 이들 각자는 별개의 장르로서 호러 영화계에 자리잡았고요.

 

당연히 사람마다 더 공포를 느끼는 요소들은 차이가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귀신이나 괴물과 같은 오컬트 성향의 호러 장르에 대해선 그렇게까지 무섭게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뭐,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금 당장 제가 꾸며써도 나올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만큼 다른 경쟁작들과 구분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중요하며, 그것을 전달하는 연출과 이야기의 설득력이 비중있게 다뤄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재기발랄한 신인 감독들의 재능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장르기도 합니다.

 

인간사회의 모순에서 두려움을 얻는 장르는 사회고발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회의 구성원으로 위치해있고, 이 과정에서 크고 작건 사회적인 압박을 받게 됩니다. 자연스레 경험에서 오는 학습된 공포가 영화와 함께 작용하게 되죠. 인간 개인의 힘으로 타개할 수 있는 부분이 극히 한정적이기에 주는 무력한 공포가 뛰어납니다만,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그 해결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속에서도 작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 쉬운 장르기도 합니다. 창작물의 경쟁자는 또 다른 창작물이지 현실이 되지는 않는 거니까요.

 

마지막으로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 위치해 있습니다. 세 분류 가운데 가장 일상적이면서, 가장 이질적이기도 합니다. 개개인과 겪는 분쟁은 옆 집과의 다툼에서부터 뉴스에서 나오는 흉악범의 범죄까지 수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서의 위협은 그렇게까지 크진 않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관점하에선 다른 어떤 분류보다도 피부에 와닿는 방식의 공포를 전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이는 무수한 네트워크가 이전의 어둠처럼 직접적인 위험을 감추는 틀이되는 거죠.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장르기도 하고, 실제로 최근의 트렌드기도 합니다. 가장 완성도있다 평가되고 있기도 하고요.

 

 

 

 


좀 멀리 돌아왔습니다. 이제 영화 이야기 좀 해볼까요?

 

살인소설은 잘만든 호러 영화입니다. 흥미로운 소재로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끌고, 약간의 변주를 가해 흥미를 더해주며, 나름의 반전을 통해 이야기의 여운을 지속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남에게 추천할만한 영화정도로 분류하고 있고요.

 

이 영화의 주된 소재만 해도 아주 무시무시합니다. 실제사건을 추격하는 과거의 명서을 되찾으려 절박한 소설가와 사람이 다치고 죽는 것을 촬영하여 기록에 남기는 스너프 필름. 그리고 어른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무언가에 반응하는 어린 소년, 소녀의 모습. 그리고 수십년간 이어져 오는 연쇄살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시자까지. 이 엄청난 조합에서 주는 시너지는 비교적 소규모로 촬영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줍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이 영화에 대한 감정은 사실 아쉬움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제 감상을 딱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와... 진짜 무서울 뻔한 영화였는데...!" 이니까요. "에단 호크의 호연에 더불어 금기시된 소재가 주는 몰입감은 기대 그 이상이지만 영화의 변주는 끝맛을 아쉽게 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두 문단 전의 세 장르 구분법은 사실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고, 이 장르인 것처럼 티를 냈다가 사실은 다른 장르였다라고 방향전환을 하는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살인소설은 후자에 가까운 예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식의 변주는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

 

실제로 저는 다른 글에서, "이거 사실 다 귀신이 벌인 짓이었다"를 "사실 나는 특이체질이었다!"와 함께 어지간해선 해선 안되는 반전이라고 설명했던 바 있습니다. 하나씩 쌓아왔던 이야기 재료가 반전이라는 이름 하에 다 날아가버리잖아요? 이게 어느 정도 납득되는 선과 정도가 지켜진다면 신선함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과하다면? 관객 입장에선 이를 농락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살인소설은 여기에 속하지는 않습니다만, 이야기가 주는 매력이 '이해할 수 없는 타인' 장르에 한없이 가까웠던 반면, 이야기가 결론내어지는 과정은 말 그대로 '오컬트'에 해당하다보니 여러 측면에서 아쉬운 겁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오컬트 요소가 없다고 한 것도 아니었고...

 

제가 이렇게나 아쉬움을 표하는 건, 이 영화가 정말로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연하게 건조하게 갔다간 모큐멘터리 꼴이 나지 않을 거란 장담도 못하겠네요. 실제로 이 영화는 그 정도로 일정 시점까지 줄타기를 현란하게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