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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감상문] 내용보다는 비주얼. 영화 13고스트

서구권에 흔히 알려진 숫자 13에 대한 불길함은 종종 공포 영화에 반영되곤 했습니다. 널리 알려져 이젠 아이콘으로 취급되는 13일의 금요일이 그렇고, 공포와 역경을 상징하는 미션13도 그렇고, 오늘 이야기할 13고스트도 그러합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사고로 인해 아내와 집을 잃은 아서는 홀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힘겹기만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삼촌이 죽으며 자신에게 대저택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 저택은 13명의 영혼을 제물로 바쳐 악마를 소환하는 장치 그 자체였으며 저택 안엔 12명의 영혼이 있었고, 마지막 13번째 영혼이 다름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화는 13의 전형적인 이미지- 기존의 질서를 깨고 새로운 질서를 재편하는데 그게 영 좋지 않은 상황- 을 차용합니다. 하지만 지극히 오컬트적으로 흐를 것만 같은 소재들이지만, 21세기 기준으로 디자인된 저택이 색다른 질감을 부여해줍니다. 첨단의 기술로 꾸며진 저택의 함정 장치들은 귀신들의 공격과 별개로 일행을 압박하며, 영화에 대한 색다른 감상을 갖게 합니다.

 

 

영화는 복합적인 장르에 해당합니다. 고전적인 귀신의 집 카테고리 안에 있지만, 집이 등장인물들에게 위험한 건 다른 인간이 설치한 덫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밀실공포와 부비트랩 장르에 속하기도 합니다. 물론 귀신들이 등장하고 실제로 위협을 가하기도 하기 때문에 크게 초자연현상물에 포함된 영화입니다. 부비트랩 장르는 기상천외한 기믹이 등장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SF와 결합하곤 했고, 귀신의집 장르는 집과 귀신이라는 소재가 동시에 등장하는 동서를 불문하고 오랜기간 사랑받아온 장르입니다.

 

SF와 초자연현상 호러 장르의 결합은 미래적인 이미지와 고전적인 이미지가 뒤섞여 색다른 감상을 남기게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결국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미지의 것에는 무력하다는 구조가 인간의 무력함을 강조하는 장치가 되어 줍니다. 호러가 지향하는 미지에 대한 공포에 이토록 부합하는 결합이 있을까 싶을 정도죠.

 

하지만 그렇게까지 많이 찾아볼 수 있진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만들기도 어렵고 돈도 많이 든다.

 

 

호러 장르를 흔히 저예산으로 제작된다 떠올리곤 합니다. 실제로 능력있는 감독들이 호러 영화로 처음 데뷔하는 경우가 잦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워낙 저예산으로 제작되고 반대로 극장에 걸려 거두는 수익은 다른 장르의 영화와 똑같다보니 실제로 오랜 시간 투자대비 가장 많은 이득을 거둔 장르가 호러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호러 장르는 제작환경에서 비롯되는 특유의 궁핍함과 쌈마이함이 매력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니까요.

 

반대로 SF장르는 돈잡아먹는 하마로 불리곤 합니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소품, 세트 등을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지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SF라는 장르에 대한 사람들이 기대치를 무시하지못합니다. 이야기 구성 측면에서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과학적이라고 여기지만, 또 이해를 못하는 선에 가서는 안되는 아주 어려운 선을 타야 하죠. 또 SF 장르는 소위 말하는 싼티에 너무나도 취약한 구성을 취하고 있기도 합니다.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만큼 양자는 소재적으로도 비주얼적으로도 융화시키기 쉽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귀신과, 현실에 엇비슷한 게 존재는 하지만 명백히 발전한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 기술을 동시에 소개하고 체감시켜야 하다니. 두 장르를 합친다는 건 장점을 합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점을 합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드는데, 이야기적으로 완성도는 떨어지고 쉽게 몰입하지도 못하는 그런.

 

이야기적으로도 서로 상반된 것이다보니, 서로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도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기술의 발전이 알고보니 초자연현상의 끄트머리에 진입하는 것-예컨데 이벤트 호라이즌처럼-으로 묘사할 수도 있고, 기술의 발전을 통해 초자연현상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경우-예컨데 고스트 버스터즈-도 있습니다. 13고스트는 고스트 버스터즈와 걷는 길은 같다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소 불리한 면이 있습니다. 코미디에 호러 색체가 가미된 고스트버스터즈는 초자연현상과 과학의 발전을 나누어 묘사하는 편의성을 보여도 별달리 이야기적인 타격을 입진 않았지만, 13고스트는 엄연히 정통호러에 속하는 영화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이 이야기적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묘사하기도, 이야기의 전개에 녹여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사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주제 아래 저 잘 만들어진 저택과, 저 잘 꾸며진 귀신들이 사라져 버립니다. 어느 순간 없어도 무방하죠. 귀신은 사람을 위협하지만 애초에 구원해야 했던 대상이고, 저택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지만 정작 저택이 귀신들로부터 일행을 보호합니다. 저택이 특이하다보니 무슨 기믹이 나와도 그저 그렇구나하고 넘겨버리고, 주인공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저택 안이라는 점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심화시킵니다. 영화의 두 세가지 반전-인지 너무 대놓고 보여줘서 아닌지 헷갈리긴 합니다만-에 저 소재들이 너무 쉽게 재료로 사용되어 버린 거죠.

 

 

영화의 스토리는 본문의 제목처럼 비주얼과 몇몇 캐릭터, 소품을 제하면 그리 바로 돌아서면 잊을 정도입니다. 영화 자체의 만족감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엔 감독 스스로가 자신의 강점은 비주얼이라고 여긴다 생각될 정도로 자신있게 내세우는 컷들도 존재합니다.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들어졌구나 생각나는 부분에서도 매력적인 캐릭터와 연출을 내세워 정면으로 돌파합니다. 특히 분노의 공주는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회자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첫번째 사족입니다. 연기 잘하는 아역은 어디나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십수년 전 한 아역배우가 호러 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줘 호러퀸이라고까지 불리며 많은 영화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게 괜한게 아닙니다. 연기 잘하는 아역은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더 귀한 모양입니다. 

 

두번째 사족입니다. 아버지 역할을 하는 배우가 어디에 방점을 잡고 연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썼었는데, 다시 봐도 같은 생각이 드네요. 사고 이후 정신이 불안정해졌다는 걸 묘사하려 했던 걸까요? 근데 그 톤이 영화 내내 유지되는 건 다시 봐도 아니다 싶습니다. 귀신이 나오고 목숨이 위험해진 상황인데 처음 아이 때문에 화났던 톤이 계속 나오는 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