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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주절주절] 공포와 웃음. 호러 코미디

30도 중반을 훌쩍 넘어가는 기온과 80퍼센트를 훌쩍 넘어가는 습도가 매일매일 반복되고 있습니다. 기운없이 축 늘어져 시간을 보내다보면, 문득 온몸의 털을 솟게 하는 공포영화가 문득 보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너무 무서운 공포영화는 막상 싫고, 밤에 뒤를 계속해서 돌아보고 싶진 않은 사람들은 어떤 영화를 택해야 할까요?

 

적당히 무섭고, 적당히 웃긴 영화를 보고 싶다면 말입니다.

 

예. 오늘 이야기할 코미디 호러 장르말이죠. 실제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기도 합니다.

 

 

 

호러와 코미디. 양자는 공포와 웃음이라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양자의 특성을 동시에 가지는 호러 코미디라는 장르가 존재합니다. 이는 인간의 감정이라는 측면에선 쉽게 성립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창작물을 감상하는 입장에선 공포영화를 보며 드는 감정이나 코미디영화를 보며 드는 감정 모두가 크게 '즐거움'이라는 범주 하에 존재하기 때문에 성립될 수 있습니다.

 

두 장르가 표현하고자 하는 즐거움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측면을 가집니다.

 

먼저 양자가 가지는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공포 장르 표현의 극대화를 위해 가지는 전제조건 '일상의 비일상화', '예측의 범위를 벗어나는 상황의 전개', '감상자의 현실이 끼어들지 않을 정도의 극도의 몰입감'은 코미디 장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다른 사람을 웃기기 위해선 먼저 그 사람이 몰입할 수 있을만큼의 일상성이 제시되어야 하며, 그러한 상황에서 예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상황이 펼쳐져야 반사적인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웃음은 조건반사와도 같은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데 있어 보는 사람의 인식이나 의지가 먼저 개입할 틈을 줘서는 안됩니다. 결국 웃음이나 공포나 결국 인간 본연의 감정을 반사적으로 건드려야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양자는 결정적인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상황 그 안에 포함시켜 공포라는 감정을 체험시키는 호러 장르와 상황 그 자체와 거리를 두게하여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차이 말아죠. 그러한 측면에서 호러 장르는 참으로 놀려먹기 쉬운 장르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상정하는 호러 장르가 가질 수 밖에 없는 한없는 진지함은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한 농담거리기 때문이죠. 창작적 허용을 통해 작용하는 호러 장르 특유의 비약은,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들어지면서 연출로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 한없이 비트는 공포영화 제작자들의 태도와 함께 어우러지며 한 두 걸음만 떨어져 보면 우습기 그지 없는 일이 됩니다. 비일상적 모습의 일상화이자. 극한의 계획의 산물이며, 현실의 지독한 한계와 맞닿은 결과물인 셈이죠.

 

실제로 핀트만 살짝 틀어주면 공포 영화의 모든 면면은 코미디의 그것이 됩니다. 공포 영화가 자주 패러디되는 것도 이 때문이겠죠.

 

기본적으로 저렴하게 제작되는 장르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둘이기에 그만큼이나 쉽게 결합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거 하는 김에 저것도 같이가 저만큼이나 쉽게 이뤄지는 것도 없겠죠.

 

또한 호러 장르의 연출을 하다 생겨난 어설픔이 웃음을 불러오기도 하고, 웃음을 일으키기 위해 한 몇몇 무리수가 끔찍한 거부감을 부르는 것도 우리는 종종 봐왔죠. 한 장르의 실패가 정작 다른 장르의 추구점이라는 점도 양자를 동전의 양면이라 부르는 면면이 되기도 합니다.

 

 

호러 코미디 영화를 분류하는 데에 다양한 방식이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구분하곤 합니다. 너무 황당하고 불쾌하지만 엄연히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블랙코미디적 색체가 녹아있는 경우, 호러 장르의 문법을 잘 따르고 본질적으로는 호러 장르에 속하지만 특유의 표현법을 극단적으로 과장해 불쾌하기보단 차라리 웃음이 나오는 경우, 그리고 호러 영화의 작법을 따르지만 애초에 목적이 코미디에 있어 호러적인 수위가 낮고 해석과 패러디가 우선되는 경우로 말이죠.

 

물론 모두가 무 자르듯 딱딱 나눠지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오늘 날에 와선 코미디 호러 영화 상당수는 패러디나 오마주적 색체가 굉장히 짙게 나오곤 합니다. 이게 다 웃음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체감상의 이야기기는 합니다만, 블레어위치 이래로 혁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호러 장르의 연출은 사실상 더는 나오지 않는다 말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고, 호러 영화에서 내놓을 수 있을 만한 공식이나 활용법도 거의 다 정립되어 뭔가 새롭다 말하기 힘든 상황이 호러 코미디 장르에도 적용되는 것이죠. 그래서 최근 이야기하는 코미디 호러는 대개 패러디 영화가 꼽히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