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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감상문] 1999년작 사이버 체인지. 영국 영화다운 시크함?

당연하지만 영화는 만들어지는 국가의 정서같은 것이 담기기 마련입니다. 대중문화란 게 그렇죠. 같은 나라의 관객들은 그것을 특별히 체감하진 못하지만, 외국인들이 감상할 경우 이러한 특성이 드러나곤 합니다. 이것은 보통 신선함을 제공합니다만, 때론 감상에 있어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가장 안 좋은 케이스는 각국이 가진 문화적 특수성으로 인해 영화의 특정 요소가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때인데, 개봉지가 중요한 곳일 경우 애초에 영화 제작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해당 요소를 배제하거나, 심지어는 이미 제작된 경우 삭제조치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국 영화에 대해 제가 받은 여러 인상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현실을 반영하는 데 상당히 신경을 쓴다는 점입니다. 제가 많은 영화를 보았기에 그 특성을 사실주의라고 뭉뚱그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최소한 "그 후로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라는 식의 뜬구름 잡는 판타지적인 내용은 지양하는 인상을 받곤 합니다. 때론 전혀 다른 장르처럼 느껴지지만 배경을 알고 보면 사회고발적인 영화가 있는가하면(빌리 엘리엇), 공포영화의 패러디인 줄 알고봤더니 인간의 삶에 대해 우화적으로 그린 영화도 있습니다. (에드거 라이트의 영화들) 묘하게  쉬크하고 냉소적인 개그감각을 갖고 있달까요.

 

그리고 오늘 소개할 영화 역시 이러한 묘~한 냉소적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장르는 바로 러브 코미디입니다.

 

싼티가 난다고 말해도 딱히 반박은 못할 듯 하네요

 


 

사이버 체인지를 제가 처음 보게 된 것은 케이블의 영화채널에서 였습니다. 이미 영화가 진행된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는데, 이후 굳이 다시 찾아볼 정도로 영화의 결말이, 아직 학교에서 급식을 먹던 저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으로 와닿았었기 때문이거든요.

 

영화는 전형적인 서양의 클리셰대로 시작합니다. 십대 중후반에 접어든 소녀가 빨리 처녀총각 딱지를 떼고 싶다며 여기 쿵, 저기 쿵 부딪히며 난리를 피우는 러브 코미디의 전형적인 모습으로요.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에는 화려하게 자신을 꾸미고 능숙하게 상대를 대하는 남녀, 그리고 조금은 찐따같지만 늘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는 순박한 남자, 그리고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주인공에게 길을 열어주는 단짝 친구가 있습니다. 예,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참으로 전형적이죠. 이미 누구와 누구가 이어질 지 정말 뻔히 보이지 않나요?

 

그런데 이 시점에서 이 영화의 대체되지 않는 특성 하나를 말해볼까 합니다. 저기엔 한 사람의 등장인물이 더 있습니다. 바로 여자 주인공이 평생을 꿈꿔온 이상형이죠. 그는 사고로 인해 갑자기 나타나게 되는데, 이 평생의 이상형과 맺어지는 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일지를 시작으로, 영화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합니다. 과연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사람과 얼마나 구분될 수 있는 존재일까요? 그리고 그런 사람과 단 한 번의 실수와 잘못 없이 한 번에 맺어지게 된다면 그게 진정한 행복일까요? 내게 진정으로 맞는 운명의 상대는 과연 그 사람 자신을 위해 사랑을 하는 걸까요, 아니면 나라는 사람만을 위해 사랑을 하는 걸까요?

 

너무나 심오합니다.

 

완벽한 남자를 못찾겠다면 만들어 봐요!


 

영화에선 가상성형기기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자신이 조작해 만들어낸 이상형 청년으로 변해버린 소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소녀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꿈꾸던 자기의 상상이 현실과 거리가 있으며, 운명의 짝이라는 게 과연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되짚어 봅니다.

 

그리고 결말부에 이르러 소녀는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그리고 그를 위해 행동한다는 게 어떤 건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영원불멸한 것도 아니라는 것도 함께 이야기하고요.

 

영화 특유의 쉬크함은 영화가 흔하디 흔한 10대 러브 코미디 물과 오래도록 차별화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찌보면 냉소적이기까지한 요소를 전혀 이상한 것도, 그리고 불편한 것도 아니며, 되려 사랑스럽기까지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흥미롭기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에 대해 사전정보 하나 없이 보았음에도 전 이 작품이 소설이 원작인 것을 영화화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는 벌어지는 사건 대비 작중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색한 상황이 반복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소설이 원작인 작품을 영상화했을 때 벌어지는 전형적인 현상 중 하나거든요. 소설과 영화는 그 작법상 차이가 있는데 소설이 텀을 주는 간격을 영환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기에 벌어지곤 합니다. 배경을 달리하는 부분 역시 7080식 연출을 사용하여 사람을 오그라들게 만들고요. 그리고 소설에선 별개의 에피소드처럼 다뤄 주제를 강화하는 캐릭터가 무리없이 섞여들지만, 영화는 한정된 시간 내에 그런 캐릭터까지 등장시키면 산만스럽다는 인상을 피하기 힘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밌게 보고, 또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참고로 여성의 노출신은 크게는 없습니다만, 남성의 노출이 간간히 있습니다. 이게 단순히 노출이라고 표현하기 무색한 게, 사실상의 성기노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중 애니메이션 효과로 얼른 가립니다만- 노골적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상술했듯 남자로 변해버린 여성이 주인공이다보니 남성의 신체적 특성을 부각하는 과정에서 다뤄지는데, 이게 성적인 의미는 크게 없는지라 현재의 관람가로 따져도 충분히 15세 관람에는 속할 거라고 봅니다. 어찌보자면 학창시절 이 씬을 보고 놀라서 오래 기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이 표지는 사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