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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주절주절] 금옥만당과 만화의 실사화

7090 홍콩 영화를 볼 때 문득, 그 특유의 과장이나 연출을 보노라면 실사화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현재의 일본 영화계가 떠오릅니다. 물론 일본 원작의 만화나 게임을 영화화한 케이스나 주성치처럼 대놓고 패러디하는 케이스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흔히 영화의 친척으로 애니메이션을 꼽곤 합니다. 움직이는 것이 사진인지 그림인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뇌는 이것을 적절히 필터링해 받아들이기 때문에 수용자의 입장에선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는 거죠. 실제로 두 경계를 오가는 작품들이 종종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표현상 사진과 그림이 같이 움직여 만화 캐릭터와 배우가 함께 나오는 영화가 있습니다. 로저 래빗 등에 가기 전까지, 오늘 날의 대규모 블록버스터를 떠올려 보세요. 배경과 소품은 물론 인물까지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해버립니다.

 

하지만 그 말이 곧 양자는 본질적으로 같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리얼하게 표현한 애니메이션, 만화적으로 과장한 실사 영화라고 평하곤 합니다. 평면의 캐릭터의 그림과 입체적인 배우의 사진은 담고 있는 정보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고 으 움직이는 것과 입체적인 배우가 움직이는 것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작의 과정에서 양자는 한정된 컷 안에 그만의 정보를 녹여내는데, 필요에 따라 비율과 비례 소품의 위치 등등을 왜곡하고 조절할 수 있는 그림과 달리 사진은 그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구도와 연출에서 양자는 차이를 보이게 되었고, 만화적인 장면과 그렇지 않은 장면을 우리는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도 익숙하게 구분해낼 수 있습니다. 그게 자연스러운가, 자연스럽지 않은가로 말이죠.

 


여하튼 같은 매커니즘을 가졌지만 받아들이는 것에 차이가 있었기에, 양자의 표현방식은 서로에게 매혹적이었습니다. 적절한 각색과 왜곡된 시점 등등을 적절히 조절해 내 균형만 잡아낸다면, 색다른 연출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균형을 잃지 않는다면.

 

혹자가 범죄행위로 지정해야 한다 말할 정도로 일본의 만화원작 실사화는 우리에게 당혹스러운 감정을 안겨주곤 합니다. 엄연히 다른 차원에 속하는 만화의 재현을 최우선순위로 둔 바람에 부자연스러움의 극치가 된 만화원작 영화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알고 있죠. 그림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바꾸는 과정에서도 시점의 수정이나 각색 등이 필요한데, 그림에서 움직이는 사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게 얼마나 더 필요할지는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실사화된 케이스 가운데 성공사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성공의 예라는 것이 워낙에 천차만별인지라, 무엇을 본으로 삼아야 할 지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아이디어만 차용한 채 완전히 각색하거나, 장르적인 특색으로 만화적 연출을 소화하거나, 아니면 캐릭터의 매력으로 과장된 연출을 소화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금옥만당은 마지막에 속하는 부류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요리대결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소원해졌던 가족관계를 회복하며,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소재나 주제를 보노라면 전형적인 일본의 요리대결 만화의 그것인지라 일본 만화를 영상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정도로요. 실제로 이 작품은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실제로 그를 드러내는 연출을 대놓고 보여주기도 합니다.

 

요리 대결이라는 소재 자체가 지극히 일본스러운 것입니다. 특이하게도 중화요리를 소재로 한 일본의 요리 대결 콘텐츠가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널리 인기를 끌기도 했었죠. 드문드문 사용되는 연출에서도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망친 물고기의 꼬리 때문에 낯선 여자와 사고로 키스하는 장면은 뭐 말할 것도 없이 일본식 러브 코미디의 그것이죠. 아예 일본인 캐릭터의 주변에 요리재료가 빙글빙글 도는 연출까지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만화식 연출이나 소재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뭘까요? 무협으로 대변되는 홍콩영화 특유의 과장법도 물론 영향을 끼쳤습니다만, 저는 과하디시피 독특한 설정의 캐릭터를 들고 싶습니다. 원영의가 보여주는 톡톡 튀면서도 막나가는 듯 뭔가 어설픈 여주인공과, 사랑을 쫓아 다 버리고 가려고 하면서도 뭔가 미련을 가지고 주변에 휘둘리지만 뭔가 또 야물딱지기도 한 장국영의 캐릭터는 만화적 설정도 리얼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되어 줍니다.

 

다소 과한 요소들을 충실하게 배우가 소화하게 하면서 관객들이 어색함을 느끼지 않게 해준다는 거죠. 만화적이지만 비현실적이지는 않게, 화려한 요리가 영화 감상에 색체를 더해주며, 거부감이 아닌 사랑스러운 감정이 들게 합니다. 만화의 실사화가 성공하는 여러 방법 중에 하나를 이 영화가 제시하지 않았나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