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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감상문] 다크맨, 샘 레이미가 만든 안티히어로

21세기 헐리우드 영화계를 장식한 수많은 영화가 있지만, 그 자리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히어로 무비임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끊임없이 흥행신기록을 기록하며, 각 제작사가 그들만의 유니버스를 만들려 끊임없이 시도하게 만들게 했죠.

 

하지만 히어로 콘텐츠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하는 이들조차 이 유행이 언제 갑자기 끝날지 모른다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전의 서부극이 그랬듯, 예전 에로틱 스릴러나 괴수물이 그랬듯이 말이죠. 실제로 이미 히어로 콘텐츠는 80년대에 기존 장르의 공식을 거의 완벽하게 해석하고 해체하여, 재해석까지 이뤄냈습니다. 영상물로서도 십수년 후에 이것이 이뤄졌고요. 다소 맥을 달리 한다곤 합니다만, 엑스맨 시리즈와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에서 다시금 촉발된 21세기 히어로 콘텐츠들 결과들이 앞서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 기존 마블이 추구하는 히어로 일대기는, 히어로의 탄생과 각성, 그리고 성장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한 다소 스케일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놀런의 다크나이트,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히어로 장르의 해체라는 측면에선 뭘 해도 벗어나기 힘든 언브레이커블과 왓치맨이 있고, 2010년엔 슈퍼나 킥애스와 같은 슈퍼히어로가 아닌 개인의 담론을 다루거나 패러디한 작품도 있습니다. 심지언 히어로라는 장르 속에 주요한 담론을 캐릭터의 상징성을 통해 풀어내는 배트맨 리턴즈 같은 영화도 존재했고요.

 

그리고 그 가운데엔, 악당과도 같은 행동을 하지만 결국 긍정적인 결과를 남기는 영웅이나, 악당이지만 영웅적인 측면을 갖춰 때론 긍정적인 결과를 남기는 '안티히어로물'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베놈과 모비우스, 데드풀이 대표적인 예인데- 물론 이 또한 앞선 영화가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샘 레이미의 영화 다크맨 말입니다.

 


다크맨은 사실 아주 전형적인 이야기의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인 주인공이 불합리한 일에 휘말려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자, 자신의 전공을 살려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이죠. 단지 그가 전문인 영역이 인공피부에 대한 연구이며, 그가 잃는 것엔 자신의 얼굴도 포함된다는 차이가 있지만.

 

리암 니슨이 연기하는 주인공은 악당의 습격으로 인해 얼굴을 잃게 됩니다. 피부가 벗겨져 흉측해진 얼굴을 처음엔 더러운 붕대로 가리다, 이후엔 지속시간에 제한이 있는 인공 피부로 가려 변장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작중 표현대로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존재"로 거듭나고, 이윽고 악당들에게 복수를 위해 나서게 됩니다. 이전의 순수하고 순진했던 모습과는 내면도 외면도 완전히 달라진 채 말이죠.

 

사실 전형적인 영화로 샘 레이미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굳이 찾아봤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못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새롭게 느낄만한 영화는 아니었다는 거죠. 캐릭터에게 일부 신선한 요소가 있긴 하지만, 돌아서면 서서히 잊히는 영화였습니다. 앞선 시대의 영화를 후대의 기준으로 평가받는 것은 부당한 일임에 분명합니다만, 당대의 기준으로 판단한다하더라도 과연 달랐을까요. 저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가 생깁니다. 아니, 좀 전엔 안티 히어로 물로서는 앞서 있는 영화라며?

 


히어로 장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쫄쫄이를 입고 남들보다 우월한 능력을 바탕으로 보다 고귀한 가치를 위해 힘쓰고 성장하는 이가 등장하는 영화를 우리는 흔히 히어로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상술했듯 히어로 콘텐츠의 역사는 기나길고, 그 사이 적잖은 예외들이 쌓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히어로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콘텐츠를 눈 앞에 두고 있는데, 이는 히어로물이라 부르는 콘텐츠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히어로물일까요? 어느 순간 우리는 '주인공'을 '히어로'로 대체해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안티 히어로라는 표현은, 히어로의 반대표현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뜻대로 풀이하자면, 그냥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캐릭터상과 다를 바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다크맨의 캐릭터가 안티 히어로의 면면을 갖추고 있지만 캐릭터적으로는 참으로 흔하다라는 평을 듣게 되는 거죠. 부정의 부정은 결국 동의라는 말과 같은 거니까요. 어찌보자면 너무 히어로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것도 뭐든지 히어로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안티 히어로가 주류인 상황이 되면 의미가 없는 일이 되어 버릴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다시 한 번 이야기합니다만 이게 영화가 별로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전 시대의 영화를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불합리한 일이고, 이 영화는 나름의 색과 완성도를 갖췄으니까요. 물론 제 기준으로 그렇게까지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만.

 


여하튼 젊은 시절 리암 니슨의 연기를 본다는 것과, 망가진 신체로 인해 이전과 사람의 내면까지도 달라지고 그것이 변장능력으로 발현된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망가진 상태를 표현하는 샘 레이미 특유의 연출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한 B급 색체가 강하고, 코믹스에서 흔히 보이는 연출을 활용하는데, 정작 원작은 영화이고 이후 코믹스로 수출된 케이스라는 점 역시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