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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주절주절]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왜 매번 실패하는 걸까?

영화 목록에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올라와 있는 걸 발견하고 재생했습니다. 별 생각도 없이 제가 하던 일을 하며 흘려 보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왜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2편 이후 매번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듣는가?"

 

언뜻 몇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워낙 기대작이다보니 성공의 기준치가 높아서일 것이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그 다음이 전작의 거대한 명성 때문에 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애초에 사람들의 기대치가 엄청나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었죠.

 

몇 십 년 동안 6편의 영화가 나왔고 이 중에 절반 이상은 애초 3부작을 상정해두고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고, 사람이 가진 취향이란 게 워낙에 다양하다보니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맘에 드는 게 있는가 하면, 맘에 들지 않는 게 있기도 합니다.

 

예컨데, 저의 경우 (몇 번 이야기했지만) 다루지 않던 걸 다루어낸 4편을 좋게 보는 편이고, 전작의 부정이 너무 심한 3편은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나머지 작품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대동소이합니다. 뭐 다음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다뤄져야 평가를 하던지 말던지 수준의 평작 정도로요.

 

여하튼, 이러한 생각을 하다보니 왜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2편 이래로 실패했냐는 이야기를 듣는지에 대해 대략적으로 정리해볼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하부터 터미네이터 각 시리즈를 나온 순서대로 첫번째 터미네이터 영화를 1, 심판의 날을 2,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을 3, 미래전쟁의 시작을 4, 제니시스를 5, 다크페이트를 6으로 칭하겠습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흔히 독이 든 성배라고 비유하곤 합니다만, 2022년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 시점에선 더 이상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시리즈의 절정부라 할 수 있는 2편 이후로 꾸준히 내리막을 타고 있는 시리즈니까요. 이전까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던 "제임스 카메론이 직접 연출하면 다시 한 번 히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조차 더 이상 이전과 같은 기대치를 가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비슷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거든요. 영화가 개봉하기 이전에 전작의 배우가 나와서 다를 거라느니, 현재 높은 주가의 배우가 나와서 다를 거라느니, 개성있는 감독과 제작자가 참여해서 다를거라느니,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에 참여해서 다를 거라느니 했지만, 결과는? 예. 아시는 그대로 입니다.

 

이미 시도할 만한 것을 거진 다 해 버려 새로이 신작으로 만들어질 이유가 없다는 점도 치명적입니다. 애초 2편으로 이야기적 완결성을 갖추었기에, 신작들이 이어질 당위가 부족했다는 점을 제하고서라도 말이죠.

 


이젠 이 영화를 언제 처음 봤는지에 대한 기억도 애매합니다. 일단 이른 아침 시간에 가서 봤었고, 극장을 나서면서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었죠. 터미네이터 시리즈 신작을 볼 때 마다 느끼는 공통적인 감상에서 벗어나지 않았거든요.

 

매번 했던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더 깊이가 있진 않습니다. 더 오락적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이 보이는 한 편, 딱히 더 재밌지도 않습니다. 기존 시리즈의 근간을 뒤흔들만한 몇몇 설정들이 있지만, 그게 본격적으로 다뤄지진 않고요. 시간여행이 중요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설정변경을 위한 편의성으로만 이용될 뿐 딱히 의미는 없습니다. 30년의 지난 시간을 반영한다고 하기엔 딱히 그 시절 SF 콘텐츠들이 예견했던 상황과 다를 바도 없고요. 그 시절의 감상을 불러일으킬 요소들을 박아놨지만,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적당히 타협한 결과만이 찾아옵니다.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콘텐츠라는 것을 감안해도 결과물 자체는 사실 많이 아쉽다는 거죠.

 

 


사실 이전 블로그에 분석글도 썼었고, 감상문도 남겼었습니다만 왜 이렇게 계속해서 나오는 걸까에 대해선 딱히 다뤄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니시스가 받는 부정적인 평가는 결국 본질적으로 왜 이 시리즈가 부정적인 평가를 계속해서 받는지에 대한 대답과도 같기 때문에, 한번쯤 논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첫째로.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시리즈는 4를 제외하면 몽땅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도 대동소이합니다. 세부적인 사항은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다 같은 캐릭터고 심지어 전작에 대한 오마주란 핑계 아래 하는 대사까지도 비슷합니다. 애초 이야기의 발단에서 다룰 수 있는 게 인물의 소개나 세계관 설정 및 설명, 장르적인 틀의 구축 정돋로 제한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척, 새로운 척 하지만 시리즈를 봐 온 사람들에겐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기획이 삼부작이라 완결성과 연결성 간에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터미네이터 2는 오랜 시간 본편을 뛰어넘는 속편으로 불려왔습니다. 이는 양자는 캐릭터의 설정과 변화가 긴밀하게 이어지면서도 영화가 추구하는 재미는 서로 다른 장르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연결성과 완결성이 적절히 균형을 이뤘다는 소리죠. 하지만 1과 2, 2부작과 달리 이후에 이어지는 시리즈는 물리적인 시간의 단절이 존재했습니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완결성을 강조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전작과의 연결성이 흐려지는 문제가 벌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연결성만 강조하며 완결성을 떨어뜨린다면? 작품성은 물론이고 작품의 최소한의 재미도 담보하지 못합니다. 전작의 명성과 속편이라는 기대치를 동시에 만족한다는 것은 그런 일인 거죠.

 

세번째는 제작자들 스스로가 캐릭터와 배우를 구분을 못한다는 점입니다. 시리즈의 정통성을 논하며 아놀드 슈월츠제네거가 출연하니마니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죠. 이건 배우의 노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애초에 각각 영화에 나오는 T-800들은 기종만 같을 뿐 다른 개체라는 걸 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희미한 연결성을 외적인 출연배우라는 요소로 메꾸고 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이야기의 질적하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속편의 행색을 취하곤 있지만 속편이 아니란 이야길 듣는 것도 이 때문이죠.

 

네번째는 악역의 존재감입니다. T-1000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신기종 터미네이터가 나올 수 있느냐는 터미네이터 시리즈 팬들의 오랜 궁금증 가운데 하나입니다. 존 코너가 터미네이터가 되건, 인간을 기반으로 만든 사이보그형 터미네이터가 등장을 하건, 분신술을 쓰건 간에 액체금속 T-1000의 존재감을 뛰어넘은 터미네이터는 등장하지 못했으니까요. 설정상 부품 하나로 대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이야기하더라도, 이러한 기능이 그들의 목표를 수행하는데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는 영화상의 표현 한계가 작용하는 거죠. 스카이넷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 기계일 것이다, 소프트웨어다,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운영체제다, 사실은 차원의 여행자다 등등의 설정과 가설이 있습니다만 본편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으니 까놓고 2편의 기계인 시절과 다를 바도 없죠.

 

마지막은 소진된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터미네이터는 크게 다섯가지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운명론적 구세주의 탄생, 둘째 시간이동으로 인한 패러독스, 셋째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 넷째 인간을 대체해가는 기계, 다섯째 서로 다른 존재들의 이해를 통한 유사가족으로의 완성. 80년대까지만 해도 SF 장르에서 이들의 조합은 상당히 낯선 것이었습니다만,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죠. 당연히 여기엔 터미네이터 2부작의 영향이 절대적입니다. 최소한 기획이 통과되어 전세계에서 개봉할 정도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아이디어를 짜냈던 후속작도 있습니다만, 이들 개개의 소재들을 더욱 더 파고들이 터미네이터를 뛰어넘은 영역을 구축한 콘텐츠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매트릭스 시리즈이고, 실제로 터미네이터 신작은 매트릭스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원작의 품격을 보여줘야 하지만, 신작으로의 세련됨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말처럼 쉽진 않죠.

 

 


처음으로 봤던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두 번째 영화 심판의 날이었습니다. 2개의 VHS 테이프로 나뉜 초록색 스티커를 붙인 영화였죠. 당시 제가 받았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당시엔 시간이동의 아이러니보단 기계 추적자의 냉혹함이 더욱 크게 와닿았지만 말이죠.

 

제가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대해 가지는 감상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적으로 뭔가 완성이 된 걸 평가해야하는데, 매번 운만 뗐다가 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망하는 걸 감안하고 새로운 시리즈로 출발할 수 있었을 그 거창한 아이디어 좀 영화로 구경해보자 싶은 마음이 어쩌면 가장 큰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현실성 없는 이야기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