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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감상문]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 의외로 하드한 판타지

흔히 서양의 3대 고전 판타지 소설로 반지의 제왕, 어스시의 마법사, 나니아 연대기가 꼽히곤 합니다. 이 가운데 어스시의 마법사를 제외한 두 작품은 대작 판타지 영화 3부작으로도 제작되어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 두 영화의 대략적인 이미지는 전자의 경우 정통 판타지, 후자의 경우는 종교적 이미지를 가진 동화적 판타지인데- 뒤늦게 본 영화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는 이러한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하드하더라고요.

 

 


영화는 1편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나니아의 태평성대를 열었던 주인공들이 다시 현실로 돌아온 지 1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다시금 나니아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미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나니아가 아니었죠. 천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며 나니아의 원주민들은 숲 속 깊은 곳으로 숨었고, 그들과 맞서 싸웠던 이들이 나니아의 주류가 되어 왕권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설속 왕들을 불러낸 정당한 왕위 계승자 캐스피언 왕자와 이러쿵저러쿵 하는 이야기인데- 이게 생각보다 하드합니다. 예전 시대의 낭만은 사라지고,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히는 시대에, 옛 시대의 왕들이자 현 시대의 아이들이 떨어진 거니까요.

 

사실 절대다수의 판타지 장르는 이른 바 끼인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신과 신화의 시대는 저물고, 실리와 실용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전의 시대를 마법과 낭만의 시대라 부르며 막연한 동경을 품고, 그것이 재현됨으로써 다시금 그때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죠. 이건 전적으로 이야기를 읽는 독자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실리의 시대를 사는 이들로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하지만, 판타지라는 장르를 접하는 이들이 가진 욕구도 채워야 하니까요.

 

1편을 보고 오랜 시간히 흘러 2편을 접한 저에게, 이 끼인 시대로서의 배경은 더욱 와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른 바 낭만의 시대의 당사자들이 어려진 상태로 실리의 시대로 온 것이었으니까요. 이전과 같이 절대악이라 할 수 있었던 하얀마녀와 맞서 싸우는 것도 아니며, 그들의 승리가 곧 나니아의 순수한 승리인 것만도 아닙니다. 적의 적은 같은 편이 될 수 있고, 결국 왕자의 약속이 담보되어야 했던 일이니까요.

 

 


그래서 이 영화는 생각보다 독특한 감상을 남깁니다.

 

"니들이 옛 시대의 왕이라고? 근데 애들이잖아?", "니가 정당한 왕위 계승자라고? 근데 네 조상은 예전에 하얀마녀 밑에서 싸웠었잖아?", "내가 병력에서 앞서잖아? 근데 왜 결투를 해야 해?" 등등등 그들 스스로도 이 대비되는 요소가 주는 이질감을 몇번이고 강조하죠.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을 쫓아가지 못하는 현실을 어필하는 겁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실을, 판타지라는 배경에서 펼치다보니, 생각보다 하드하게 내용이 전개됩니다.

 

수시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전쟁은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밀고 당기는 정도의 수준으로 묘사되는 것을 넘어섭니다. 물론 전체관람가 영화로서의 선을 넘지는 않습니다만, 명백히 1편과 달라진 지향점을 보여줍니다. 그 절정부는 피터와 미라즈 왕의 결투인데, 단순히 힘을 겨루는 수준을 넘어 갑옷과 장비의 특성을 고려하여 인체에 타격을 입히는 방식까지 묘사합니다. 나중에 벗겨지기는 합니다만, 투구는 물론 방패까지 사용하고요.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제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이 정보를 접하는 데에 한계치가 있기 때문에, 굳이 제 취향에 맞지 않거나 기존에 이미 필요한 만큼 정보를 접했다 생각했던 부류의 영화엔 관심이 덜 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우연히 보게 된 이 영화는 제 생각보다 더 하드했고, 생각보다 훨씬 더 정통적인 판타지를 다루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쉬엄쉬엄보자는 제 태도를 완전히 고칠 수밖에 없었죠.

 

실제로 이 영화를 보고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원작을 찾아봐야 겠다"였습니다. 영상화되지 않은 원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