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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감상문] 토르 러브앤썬더, 망작은 아닌데... 아닌데...

영화에 대한 감상의 독은 지나친 기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토르의 이번 신작은 고평가받기 힘든 영화였음에 분명합니다. 세번째 솔로 영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인피니티 워에서 사실상 주인공의 포지션을 소화했었으니까요. 토르와 함께 큰 비중을 갖던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가 하차한 상황에서, 토르에 대한 기대치는 현재 존재하는 마블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최고치에 달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가끔 이런 기대치조차 뛰어넘는 영화도 간간히 나옵니다만, 토르의 네 번째 영화 러브앤썬더는 거기에 속하진 못했습니다. 엔드게임 이후 마블은 망했다라는 저주를 퍼붓는 이들의 말대로 소위 망작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대중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정도냐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달까요.

 

저는 그 이유를, 소재와 주제, 연출이 따로놀기 때문이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일단 영화의 감상을 나눔에 있어, 상대가 어떠한 시선으로 영화를 보았는지를 안다면, 왜 영화에 대해 그러한 감상을 남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남겼던 토르에 대한 대략적인 평은 이러합니다. 토르1 - 어벤져스에 대한 기대치를 제하면 정말 기본만 하려 했고 그조차 버거웠던 영화. 토르2 - 확 치고 나가 어필할 포인트를 못잡았지만 그래도 구색은 갖췄던 영화. 토르3 - 기존에 길과 다른 길을 걸어 성공은 했지만 애초 토르가 갖고 있던 매력을 상당부분 버린 영화.

 

그런 제가 본 토르4 러브앤썬더는... 3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영화였습니다. 애초에 감독이 같지 않냐고 말하면 그게 정답이라고 대꾸할 수밖에 없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영화의 소재와 주제는 잘 잡은 거 같은데, 더 보여줘야 할 부분은 못보여준 영화라고요. 저게 영화상 필요한가 싶은 부분은 정작 3에선 매력포인트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선 제쳐놓기로 하죠.

 

여하튼 영화는 최초 각본은 잘 썼겠구나 싶은 캐릭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신에 대한 열렬한 믿음을 가졌었지만 그 도움을 받지 못하고 배신당해 사랑하는 딸을 잃은 고르는, 우연한 기회에 저주받은 무기 네크로소드를 얻게 됩니다. 이를 통해 신에 대한 복수를 결의하고 신 한 사람 한 사람 살해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주적 존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제인 포스터는 세계적인 학자로 거듭났지만, 정작 암으로 인해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천둥의 신 토르가 남긴 묠니르를 통해 신적 존재로 거듭났지만, 자신에게 닥친 죽음이란 운명을 피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신들을 살해하는 고르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우주를 구하기 위해 나선 토르와 협력하며 다른 신들의 도움을 구하고 이윽고 자신을 희생합니다.

 

모든 것을 잃은 토르는 여전히 다른 약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지만, 진정한 신과 영웅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뇌를 끝마치지 못한 상황입니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이와 우주에 닥친 위기에 다시금 분연히 일어서지만, 자신이 믿어왔던 가치가 부정당하고, 그 자신은 신이며 다른 이들의 바람을 들어주지만, 정작 자신이 바라는 것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그가 매달릴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제우스는 신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즐기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도움을 바라는 이들을 거절하고, 그들에게 닥쳐오는 위기만을 피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겪어, 토르가 하는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체의 손해를 보지 않으려 아무런 행동도 나서지 않습니다.

 


 

영화는 상당히 굵직한 질문들을 연이어 던집니다.

 

첫째로, 신은 바라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가,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에게 구원을 주는가.

둘째로, 갑자기 사고처럼 닥친 불행은 인간을 어떻게 만들고, 인간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셋째로, 고난을 극복한다는 것은 바라는 것인가 행하는 것인가 받아들이는 것인가.

넷째로, 남고 남기는 것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신인가, 인간인가.

다섯째로, 그렇다면 고난을 극복하는 것은 신의 역할인가, 인간의 역할인가.

여섯째로, 인간이 고난을 극복해냈다면 과연 그를 신이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일곱째로, 그렇다면 고난을 극복하지 못하는 신은 인간과 다를 건 또 뭔가.

여덟째로, 신이 해야 할 일을 영웅이 한다면, 영웅은 신이 되는가.

아홉째로, 영웅이란 존재가 하는 희생이란 행위는 신적행위인가, 인간적 행위인가.

열번째로, 이러한 희생이 다른 이의 변화를 이끈다면, 이것은 신적행위인가 영웅적 행위인가.

 

대충 영화를 보면서 적은 메모에 이렇게 적혀 있네요. 영화를 보면서 두서없이 마구 적은 거라 이야기의 흐름과 정확하게 부합하지는 않습니다만, 대충 저런 내용이 읽혔습니다.

 

흔히 잘 만들어진 영화는 특정한 주제를 갖건 갖지 않건 일정한 흐름에 따라 하나의 이야기 덩어리를 만듭니다. 하지만 토르4는 각 캐릭터의 개성과 행동을 통해 위 질문들을 던질 준비를 하지만 제대로 질문을 하지도, 그에 대한 대답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흘러흘러 흘러갈 뿐입니다. 관성에 기대어 내용을 전개하는데 이게 매끄럽질 못하니 따로 논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겁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애초에 인격신이라고는 하지만 애초 토르 시리즈는 신은 뛰어난 능력을 지닌 외계인이라는 시선에서 출발한 작품이고, 상영시간에 비해 전개해야 하는 내용이 많았을 수도 있고, 일대일로 대비시켜야 부각되는 질문이 가운데 끼어든 이런저런 감초 캐릭터 때문에 묻혀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죠.

 


 

작중 가장 아쉬운 부분은 무기를 짚어주는 연출입니다. 러브앤썬더는 전설의 무기가 가장 많이 나온 작품이고, 실제로 각 무기가 해당 캐릭터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화려하지만 영 내실은 없고 비로소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 함께 하는데서 진가가 발휘되는 제우스의 무기, 부서졌었지만 굳센 의지를 통해 다시금 활약하는 묠니르, 늘 그 자리에서 우직한 면을 보이지만 사랑받기 원하며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은 스톰 브레이커, 가진 자를 저주받게 하고 괴물을 불러오며 상대를 침식하며 재생은 하지만 그것이 묠니르에는 미치지 못하는 네크로소드까지.

 

당연히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의 무기를 쓰는 것은, 토르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게 하는 것과 함께 캐릭터의 변화와 각성을 이끄는 중대한 이벤트인데, 영화는 관성에 기댄 채 "다 알고 있지?"라고 넘어가 버립니다. 좀 더 확실하게 짚어줬다면, 좀 더 명확하게 대비시켜줬다면 영화는 더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