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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감상문] 블레어 위치의 정식 속편도 결국 아류

처음 블레어 위치를 봤을 때의 충격을 저는 아직 기억합니다. 영화의 본질이라는 게 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고, 공포영화의 본질은 결국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확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종종 호러 영화는 능력있는 감독들의 데뷔작으로 선택받곤 합니다. 여타의 장르와 달리 비교적 저예산으로 꾸릴 수 있으면서, 기존의 공포영화와는 차별화되는 감독만의 연출을 녹여내는 것을 통해 그 평가를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블레어 위치로 대변되는 이런 파운드 푸티지 계열의 영화는 그것이 더욱 극단적이 되어, 출연진을 다섯손가락 내외로 끊을 수 있을 정도로 적게 쓰고, 심지어 그 중 하나나 둘을 카메라 맨이라며 따로 빼버릴 수도 있습니다. 연출도 카메라를 흔들거나 다른 것을 비추는 것으로 퉁쳐버리는 편의성을 보여주는데, 이게 호러라는 장르와 시너지를 불러 일으키며 더 큰 공포를 불러 일으킵니다.

 

영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며, 공포라는 감정은 설명되는 순간 강도가 반분되어 버린다는 특성이 있었기에, 양 특성이 극단적으로 반영된 파운드 푸티치 장르의 블레어위치는 그야말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고, 이윽고 하나의 장르로 거듭나게 됩니다. 좀 더 마일드하게 풀어주는 게 이후의 파라노말 액티비티며, 한국식으로 이식한 게 곤지암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신선함이 사라진다면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아니 이걸, 영화라고 할 순 있을까라는 상당히 심각한 질문에 직면하게 되는 거죠.

 

 

블레어위치를 비롯한 계열의 영화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체험해야 하는 영화입니다. 분위기를 느껴야 하는 거죠.그래서 밝은 상황 하에서 감상은 집중력을 크게 저하시킵니다. 정제된 틀에 짜여진 씬이 아니라, 거칠고 날 것 느낌으로 관객에게 집어던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상당한 집중력을 요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영화의 감상과 체감을 위해 심어놓은 정보가 극단적으로 한쪽에 몰려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죠. 보통 이런 장르는 사건의 발단을 다루면서, 이후에 닥치는 비현실적인 상황과 대비되는 평안한 시기를 그려야 하며, 왜 카메라로 촬영을 하며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는지 등을 영화 서두에 다룹니다. 거칠게 말해 장르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만 있어도 없어도 되는 씬이죠. 하지만 상영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이러한 씬들을 소비하고 나서 분위기를 잡고 내용을 전개하며 결말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자연스레 관객이 의미있게 받아들일만한 정보가 극단적으로 뒤로 쏠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처음엔 너무 지루해서, 나중엔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와서 집중력을 잃기 십상입니다.

 

더군다나 다급하고 실감나는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일반인스럽게 연기하고',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은 보이지 않는데다,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거나 극단적으로 얼굴을 당겨 촬영하는 등' 정보전달에 방해가 되는 요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화면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데 급박하다는 느낌만 받을 뿐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단점을 그나마 상쇄시키는 방법은 커다란 화면을 통해 보는 건데 우습게도 지금 기록적인 히트를 기록하는 탑건과 같이 극장에 더 어울리는 영화인 셈입니다. 다만 극단적으로 제작비가 작을 뿐.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영화가 참 많이 나왔습니다.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영화를 차용하지 않을 제작사가 어디있겠습니까. 문제는 상술한 사안으로 인해 '일반인이 연기하는 것처럼 어설퍼야 하지만 정보는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게 대사를 짜고 말하는 능력' 등처럼 그냥 영화를 찍는 것보다도 더욱 주의를 요해야 하는 장르인데, 그 부분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작품들이 정말로 많이 나왔습니다. 장르 자체에 질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요. 어느 정도냐면, 화면을 격렬하게 흔들어대는 씬이 나오면 '급박하구나'를 느끼는 게 아니라, '어설픈 배경 가리려고 수 쓰는 구나'라고 느껴버리는 수준까지 와 버렸습니다. 물론 간간히 히트작은 계속해 나오고 있지만, 애초에 정보의 전달을 통한 감상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니라, 분위기를 조성하고 느끼는 것을 통해 영화의 인상을 결정짓게 하는 것이 과연 영화에 대한 올바른 감상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은 되어 주지 못했습니다.

 

여하튼 이 장르를 창조했다 말하는 블레어 위치의 속편조차, 변해버린 이러한 시선에선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십수년전 잃어버린 누나를 찾아 블레어 위치를 찾은 일행들은 이런저런 속임수를 넘어 사건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전설 속 마녀로 추정되는 이가 일으키는 초자연현상이었고, 그들은 결국 기록만을 남긴 채 이런 초자연현상에 휘둘리며 서서히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솔직히 말해,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지 한참 시간이 지나 집에서 보는 것이었다는 점이 컸겠죠. 그 사이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매력에 빠져 이런저런 콘텐츠를 많이 찾아봐 많이 질려버린 탓도 있겠고요. 그럼에도 나름 영화를 보는 데에 요령이 있어 글을 쓰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생각했는데, 뭔가 머릿속에 하나의 상-그러니까 파운드푸티지의 진짜 뻔한 것들 말고-으로 맺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몇번을 다시 봤죠. (실제로 오랜만에 올라온 글이죠?) 그럼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이 적잖았는데, 나중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컨데 화면을 정지해서 찬찬히 누가 지나가는지를 봐야 할 정도로 짧게 지나가는 씬이 있는가하면 전작과 같은 방식으로 연출된 것이라 약간의 묘사를 생략했다거나 하는 식의 장면들이 있더군요.

 

 

사실 이러한 정보를 찾는 것도 '사실인 척 하지만 가짜'인 영화엔 놀 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이므로 나쁜 건 아닙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전혀 새롭지 않았다는 건- 좀 많이 나쁜 일이었습니다. 처음이기에 용인되었던 문제들이 십수년이 지나 똑같이 재현되니 흥미는 급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러 장르에 있어 신선함은 미덕이자 다른 뻔한 영화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인인데, 정식 후속작인 2016년작 블레어 위치조차 블레어위치 본편의 영향력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목도하는 것은 아무래도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설정을 구체적으로 덧붙이긴 했지만, 애초에 그 존재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게 공포라는 감정과 직결되는 게 아니니까요.

 

극단적으로 적은 캐릭터, 극단적으로 제한되는 영상 정보, 그리고 극단적으로 동일할 수밖에 없는 연출을 택한 시점에서, 애초 원작에서 더 나아갈 생각이 없던 영화였던 거죠. 결국 이 점이 제가 이 영화를 정식 속편임에도 아류작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