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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주절주절) 플래시. 초라한 디씨 영화 시리즈의 끝

...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만, 아쿠아맨이나 블루비틀같은 영화가 또 DCEU에 속할 수도 있다는 썰이 돌고 있어서 끝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예. 참 잘~ 굴러가네요.

 

 

일단 DCEU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오브스틸을 시작으로 한 디씨 영화 시리즈의 총칭입니다. 그리고 제임스 건 감독이 새로 메가폰을 잡아 앞으로 시작될 디씨 영화 시리즈의 총칭은 DCU입니다.

 

플래시는 이 DCEU의 마지막 영화로 홍보되었고, 실제로 영화상에서도 그러한 인상을 줍니다만, 결국 어떻게 될 지는 모르는 게 현실이네요. 이후 개봉되는 블루비틀, 그리고 아쿠아맨2를 봐야 알 수 있는 이야기겠죠.

 

 

플래시를 개봉한 그 주의 주말에 봤었습니다.

 

인상?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평도 했었죠. "애초에 이 정도로 만들어 왔으면 지금와서 리부트한다고 난리 나지도 않았다"라고요.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들, 이해는 하고 납득도 합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호가 조금 더 앞서는 편이었고, 영화도 무난하게 손익분기점을 달성하지 않을까 예상했었습니다만- 현실은 슈퍼 히어로 무비 역사상 최악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온갖 조롱거리가 되던 슈퍼히어로의 망작들과, 결과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죠.

 

자... 일단 영화의 좋았던 점에 대해 꼽아 봅시다.

 

일단 기본적인 완성도는 갖췄습니다. 플래시는 기존에 기원담에 대해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영화에선 말이죠. 그래서 다소 붕뜨는 감이 있었습니다만, 영화에선 몇차례 변주하여 기원담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동시에 이것을 성장담으로 잇는데, 나름대로 매력적입니다. 특히나 성장하지 못한 베리와 대비되는 방식으로 볼 수 있게 해서 그 간극을 더욱 크게 체감하도록 해 줍니다.

 

둘째로 다양한 캐릭터들을 보는 맛이 있습니다. 온갖 기대하지 않은 까메오에서부터 눈이 즐겁고,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을 보면 정말 함박웃음이 지어집니다. 특히나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목표를 달성한 배트맨이 나온다는 건 디씨의 영화를 오래도록 보아온 이들에겐 상당히 감격적인 장면이 될 겁니다.

 

셋째로 어쨌든 첫 단독 솔로 영화다보니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들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이건 DCEU에 나온 모든 영화에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자. 나쁜 점을 꼽아볼까요?

 

CG가 구립니다. 개봉 당시엔 "이질감 등등을 표현하려고 한 거 같긴 한데 솔직히 와닿지 않는다" 정도로 유보적으로 표현했었습니다만, 이후에 사실 CG작업할 시간이 없어서 서둘러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게 언론을 타게 됐죠. 실제로 아기가 나올 때 "뭐지 속임수인가"라고 생각했고, 이미 고인이 된 배우들의 모습이 나올 땐 "차라리 필름을 트는 게 낫지 않나...?"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두번째로 DCEU팬도 만족 못시키는 팬서비스, 원작 코믹스팬도 만족 못시키는 각색입니다. DC의 여러 캐릭터들이 얼굴을 비춥니다. 문제는 DCEU의 캐릭터들은 그보다는 좀 더 나왔어야죠. 헨리 카빌의 슈퍼맨은 잠깐 딴 생각하면 나온지도 모릅니다. 배트맨은 그나마 얼굴을 비춥니다만, 원작 코믹스에서 '마찬가지로 거의 얼굴을 비추지 않은' 배트맨의 비중과 비교하면 억울할 정도입니다. 원더우먼 등은 그래도 대사라도 쳤으니 다행인 정도고요. 이 영화 시리즈는 결국 DCEU의 팬들의 성원을 통해 구축된 것이고, 원작 코믹스의 아이디어와 인지도가 있기에 단독 영화로서 나올 수 있었던 건데, DCEU 고유의 캐릭터들에 대한 팬서비스는 구색만 갖춘 수준이며, 원작 코믹스의 각색은 규모의 축소와 열화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구조가 뻔합니다. 이건 제가 원작을 봤기 때문이 아닙니다. 원작과 다른 각색된 부분을 보고 결말까지 손쉽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저는 예고편도 최대한 피했고, 다른 차원의 베리가 나오는 것도 몰랐습니다. 물론 원작도 이야기를 추론하기 뻔하기는 매 한가지였습니다만, 코믹스는 이 뻔함을 변화된 캐릭터들의 충격적인 행보를 통해 상쇄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뻔한 반전은 그조차도 극후반에 위치해 있죠.

 

 

자 호불호가 갈리지 않나 싶은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봅시다.

 

CG작업할 시간이 없어서였을까요? 플래시의 전매특허 재빠른 움직임을 통한 트리키한 액션 역시 그리 흥미롭지 못합니다. 액션의 절정부는 슈퍼걸, 배트맨과 함께 적과 맞서 싸울 때인데, 이야기전개상 카타르시스를 폭발시키지 못하고 불완전 연소한 채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갑니다. 이겨도 시간을 되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았을텐데 왜 그랬을까요.

 

저는 변화된 결말- 그러니까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에 개입해 현실을 바꾸는 결말에 대해 그렇게까지 나쁘게 보지는 않습니다. 사실 코믹스에선 미래에 크게 영향을 주는 포인트와 그렇지 않은 포인트가 있어서 전자를 건드리면 슈퍼맨이 악당이 되는 변화가 생기는 반면 후자를 건드리면 그저 몇몇 사실만이 바뀔 뿐 대체적으로 그대로인 상황이 제시되곤 합니다. 아마 영화도 이러한 부분에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그렇게 퉁치기엔 영화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고 있고, 이로 인해 이야기 전체의 '이빨이 빠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도 합니다. 

 

적 캐릭터에 대해서도 다소 호불호가 갈릴 듯 하네요. 조드 장군, 굳이 나올 필요 없었습니다. 사실 본작에서 플래시와 다크플래시 빼면 다 안나와도 되긴 하죠. ...뭐, 여하튼. 다크 플래시도 모순을 통해 태어나 모순으로 인해 사라진 캐릭터이니만큼 결국 캐릭터의 성장의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됩니다. 근데 플래시의 정체성이 제대로 구축이 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을 이야기해도 좀... 공허하죠.

 

 

저는, 블랙아담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슈퍼히어로계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마블과 디씨가 서로 그간 구축한 성을 영화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최대한 자신의 영역을 크게 펼쳐보이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뭐, 그러니까 소재가 많이 겹치고, 연출도 엇비슷하고, 심지어 캐릭터에 대한 디자인이나 묘사조차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감상에 거슬리는 수준으로요. 실제로 수어사이드스쿼드에서 갑자기 마법 관련 소재가 나왔을 때, 마블의 닥터스트레인지를 저격한 거다, 김빼기 한거다 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나돌았었죠. 물론 원작에 나왔던 건데 영화 먼저 나왔다고 다 쓰지 말라고 하는 게 말이되냐고 한다면, 저도 그에대해 딱히 부정적인 답을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코믹스의 역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차용과 차용의 연속이었고, 그 결과가 항상 좋기만한 건 아니었잖아요? 저는 영화에선 그게 더 안좋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나 생각합니다.

 

(문득 남자의 자격과 무한도전의 모습도 언뜻 스쳐지나갔습니다. 연초에 한해의 계획을 발표하며, "쟤들이 한다고 하기 전에 일단 우리가 먼저 침을 발라 놓자"라고 했었죠?)

 

 

영화의 실패원인을 찾는 것은 성공원인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뭐 하나만 작용한 게 아니라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니까요. 일단 배우의 행태나 리부트로 인한 관심 저하 등등은 배제하겠습니다. 작은 영향은 아니지만 절대적인 것은 또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적잖은 사람들이 피로감을 꼽습니다. 어중간한 완성도로 십년 가까이 끌어온 DCEU에 대한 피로감일 수도 있고, 판 전체를 지배하다시피한 슈퍼히어로라는 장르에서 비롯된 것일 지도 모릅니다. 아니, 최근 특히나 유행하고 있는, 이전에도 너무 편의적이고 작위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평행세계라는 소재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마블은 이걸로 앞으로 십년 가까이 더 끌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디씨는 마무리를 지었으니 새로이 시작하며 앞으로 펼쳐질 세계관을 단단히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이 이를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미덕이 '독창성'이었으면 좋겠네요. 어디서 봤던 것만 계속 반복되는 건 좀 그렇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