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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이야기] 마지막 한 컷이 주는 임팩트. 드라큘라 3: 레거시

호러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웨스 크레이븐. 그가 직접 만든 영화들도 있습니다만, 그의 산하에서 만들어진 영화들도 적진 않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드라큐라 레거시도 그러한 영화들 중 하나죠.

 

예. 눈치 빠르신 분들은 이미 짐작하셨을 겁니다. 영화 포스터에서 "대작 영화 제작진이 만들어낸 올 여름 블록 버스터...!" 따위의 말이 들어가면 그 영화는 믿고 걸러도 된다는 말을 한 셈이죠. 이 영화는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만든 게 아닙니다. 그의 산하에서 만들어진, 웨스 크레이븐 프레젠트 영화죠. 실제로 완성도만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리 길게 말할 건덕지는 없는 영화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극장 개봉 영화도 아닌 비디오샵 직행 영화로, 흔히 이야기하는 B급 영화에 해당합니다.

 

 

영화 제목에 박혀있는 3이라는 숫자는 이 영화가 시리즈의 세번째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웨스 크레이븐 드라큐라 3부작에 속하는 영화이며, 이 세 영화는 모두 국내 공중파 내지 케이블에서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첫번째 영화 드라큐라 2000은 브람스토커의 드라큐라가 21세기에 되살아났다면 어땠을까를 다룬 작품으로, 브람스토커의 드라큐라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속편같은 느낌도 줍니다. 실제로 현대에 되살아난 고대의 강력한 뱀파이어는 정말로 많이 유행했던 소재기도 하죠.

 

두번째 영화 드라큐라2 어센션은 3편과 동시에 제작한 작품으로, 1편과는 굵직한 설정을 공유할 뿐 별개의 영화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시체안치소에 들어온 시체가 흡혈귀의 시체임을 알아낸 의료진이 이것을 이용해 불치병을 치료하려 하다 생기는 일을 다루는 영화로,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여러 상황이 벌어졌던 전작과 달리 규모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보다 과감한 시도와 전작의 반 헬싱류와는 다른 계열의 뱀파이어 헌터가 등장한 작품입니다.

 

세번째가 바로 이 영화입니다만-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세 편의 영화 가운데 이 영화에 대해선 가장 박하게 평가를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적잖은 이들이 동의를 하곤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상술했듯 이 영화들은 연속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연결성이 다소 미묘한 측면이 있습니다. 1편 이후 별도의 계획을 통해 제작된 2편이 억지로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인상이 강한 거야 그렇다 칩니다만, 그 2편과 동시에 제작된 3편도 기묘하게 튀는 부분이 생긴다는 점은 종합적인 완성도가 낮다는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죠. 

 

여하튼 이 세 번째 영화는 되살아난 뱀파이어가 자신의 고향 루마니아로 돌아가 국가적인 내란을 일으킨 상황을 바탕으로 펼쳐집니다. 드러나지 않은 외진 곳에 숨은 그는 다른 뱀파이어는 물론 뱀파이어 추종자들을 이용하여 자신을 위협하는 주인공 일행을 없애려 하죠. 그리고 전작에서 뱀파이어에게 상처입고 소중한 이들을 빼앗긴 이들은 그와 맞서 싸워 모든 것을 원위치 시키려 합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로드무비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야기의 마무리를 담당하지만, 새로운 시작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이 트릴로지는 세 편 모두, 굵직한 이야기 구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드라큐라라 불리는 존재는 오랜 시간 인류를 위협해온 초월적 존재다. 그러던 중 이 드라큐라의 힘을 의도치 않게 인간의 몸으로 받아낸 존재들이, 그를 무찌르고 봉인하는 일에 나서게 된다.'는 핵심 플롯 말이죠.

 

문제는 가장 직관적으로 와닿을 드라큐라라는 존재가 각 영화에서 다소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흡혈귀라 불리는 존재들을 흔히 떠올리게 하는 설정들로 무장했지만, 각 영화에서 연기한 배우도 다르고 그 배우들이 보여주고자하는 드라큐라의 모습도 다릅니다. 심지어 때론 이 드라큐라들이 같은 과거를 갖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을 정도로요.

 

결국 영화를 시리즈로 묶어 주는 것은 드라큐라의 피에 감염된 중간자들입니다. 첫번째 영화에선 헬싱교수의 딸이 그랬고, 두번째 영화에선 뱀파이어 슬레이어 우피지가 그러하죠. 그리고 영화의 전체적인 인상을 확연히 결정한 우피지야 말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만 합니다.

 

재미라는 측면에서 세 편의 시리즈 가운데 가장 높게 평가받는 것은 두번째 어센션일 것입니다. 색다른 시도가 있고, 나름대로 독특한 해석이 있으며,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도 다른 영화에 비해 나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두 핵이 되는 드라큐라와 우피지가 가장 강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야기적인 완성도는 무난히 이야기를 구성한 1편이 가장 나을 겁니다. 괜히 정도가 왕도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죠. 기본적으로 브람스토커의 소설을 영상화한 컨텐츠의 이식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인상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하게 모난 부분도 없습니다. 지루하긴 하지만, 그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도 있습니다.

 

3편은 두 기준에서 모두 낮게 평가됩니다. 로드무비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파트너가 약하고 몰개성합니다. 이야기의 스케일이라는 측면에서도 건물 하나인 2편보다 낫다지만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펼쳐지던 1편에 비하자면 소박하기 그지 없습니다. 내전상태의 루마니아 시골길이라니. 거기다 악역은 전작에서 기껏 밝혀진 문제적인 과거는 전혀 소화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소모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액션이 전작들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가? 그조차 아닙니다. 저는 이 영화를 십년 가까이 지나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이게 편이 나뉘어진 영화였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예. 3편을 2편에 대한 부록 정도로 자체적으로 뇌가 필터링해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씬 하나 때문에 이 영화 시리즈의 가치가 상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이 영화의 주연인 제이슨 스콧 리의 비주얼과 연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소룡의 전기영화로 유명한 드래곤 : 브루스 리 스토리의 주연배우로 알려진 이 동양계 배우가 소화한 우피지 신부는 크게 유행했던 뱀파이어 슬레이어의 여러 갈래 중 하나의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신명을 받아 따르며 단련된 육체와 정신을 통해 뱀파이어와 그 일족들과 맞서 싸우죠. 물론 사용하는 무기만 보면 영미에서 유행했던 뱀파이어 슬레이어보다는 게임 캐슬배니아 시리즈의 주인공에 훨씬 가까운 모양새이기는 합니다만.

 

여하튼 영화는 우피지 신부의 행적에 모든 게 맞춰져 있는 모양새입니다. 사실상 그가 원톱으로 이끌어가는 영화인 셈이죠. 그가 악에 맞서 싸우는 모습, 그러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버리는 모습, 뱀파이어에게 중독되었지만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매일 햇빛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지만 언젠가 뱀파이어로 변해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갑작스레 찾아온 인연에 번민하는 모습, 그리고 결국 악을 물리치고, 연인에게 굴복하는 모습까지 상당히 다양한 역할을 소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최후의 씬에서 보여주는 우피지의 모습은, 계속해서 다뤄지던 클래식한 뱀파이어 세계관과의 작별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결말이라는 측면에선 약하지만,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라는 측면에선 나름 좋은 평가를 받을 법 합니다. 뱀파이어라는 콘텐츠에서 브람스토커가 남긴 막대한 영향력을 생각해보자면 그 시도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거죠.

 

실제로 결말부 우피지의 포지션은 근 몇년간 유행했던 주인공상에 해당하며, 예수와 유다의 관계를 차용한 전작의 설정을 다시금 되살리며 색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이 영화가 아마 더 잘 만들어졌고, 더 큰 히트를 쳤다면 흑인 드라큐라로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블래큐라마냥, 동양인 드라큐라로서 제이슨 스콧 리가 회자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 정도로 마지막 한 컷에서 주는 인상이 강렬합니다.

 

 

사족1. 본문에서 드라큐라 드라큘라 구분없이 막 썼는데 실제 국내 정발명에서 양자가 계속해서 혼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본문에서도 마구 뒤섞어 버렸네요.

 

사족2. 많은 이들은 이 영화를 제이슨 스콧 리의 매력에 지나치게 기댄 영화라 평하곤 합니다. 우피지 신부의 비중과는 별개로 소화해줘야 했던 나머지 영역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단 소리겠죠.

 

사족3. 바꿔 말하자면 우피지 신부는 동양인 캐릭터하면 흔히 생각하는 틀에서 확실하게 벗어나 있습니다. 인격적으로 변화가 없을 정도로 완성이 되어 있어 재미는 없지만, 무술실력은 뛰어나 눈요기를 제공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주연급 캐릭터에게 도움이 되는 도구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딱히 여성캐릭터와는 어지간해서는 맺어지지 않는다는 법칙을 이소룡의 전기영화처럼 모두 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