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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이야기] 주어진 한계와 색다른 시도. 드라큘라 2 : 어센션

일단, 참 오랜만에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이네요.

 

 

 

 


 

히트 친 영화의 속편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규모의 확대겠네요. 더 거대한 배경을 선택하거나 새로운 등장인물을 나오게 하여 영화의 전체적인 볼륨을 키우는 겁니다. 전작보다 부실한 속편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은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게 바로 가장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기존의 성공공식을 따르고 그 재료를 살리면서, 새로운 조미료를 가미하고 양을 늘리는- 새로운 느낌과 불어난 양으로 만족을 주는 그런 거 말입니다. 이는 굳이 성공한 재료와 연출을 두고 위험부담을 짊어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 반대로 이야기 해 봅시다.

 

히트치지 못한 영화의 속편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그 대답이 될 수 있는 영화, 드라큘라 2 : 어센션입니다. 국내에서의 제목은 전작인 드라큐라2000에 이은 드라큐라2003이고요.

 

 

전작 드라큐라2000은 과감한 설정 한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지극히 무난한 뱀파이어 헌터 물이었습니다.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인 드라큐라가 주인공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괴롭히지만, 결국 위기를 극복해낸 주인공이 뱀파이어를 물리친다는 내용이죠. 이 영화를 검색하면 앤 라이스가 쓴 소설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이 함께 뜨는데, 비슷한 시기 영화화된 뱀파이어물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두 영화 모두 현대에 되살아난 고대의 뱀파이어가 세계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정말 지극히 뻔한 플롯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앤 라이스의 소설이 80년대에 써진 것을 고려하면, 그리고 브람스토커의 소설 드라큐라부터가 위와 거의 같은 플롯을 사용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사실 신선하다고는 빈말로도 하기 어렵죠.

 

그렇기에 1편이 히트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겁니다. 당장 20세기 뱀파이어물 가운데 가장 좋은 평과 흥행세를 기록했던 뱀파이어 연대기의 하나면서, 뱀파이어물의 불세출의 걸작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그 영화의 속편격에 해당하는 저주받은 자들의 여왕조차 그리 좋은 흥행성적을 거두진 못했는데, 어설픈 이식에 가까운 드라큘라2000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영화는 고전의 충실한 이식이라는 측면에서, 최소한의 재미는 담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이 보여주는 비주얼과 연기, 그리고 인상에 남을 법한 문제적인 설정은 의미가 있었죠. 그리하여 흔히 이야기하는 2차판권 시장에서 일정한 기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속편의 제작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편은 극장개봉이 아닌 비디오 영화로서 개봉하게 됩니다.

 

 

자.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히트치지 못한 영화는 어떤 공식을 통해 만들어져야 할까요? 전작의 호평받은 공식은 재구성하여 최소한의 장르적 재미는 공유하되, 혹평받은 요소는 최대한 개혁해야 합니다. 단순히 비디오 시장에서는 성공했었으니 그저 비디오 영화로 직행시킨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기본적으로 극장 개봉 영화와 비디오 영화는 투입되는 자본의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드라큘라2003, 어센션은 주역 배우들의 교체, 배경의 제한을 통한 제작비의 절감, 이로 인해 단순해질 수 있는 이야기의 구조를 세가지 이야기 줄기를 꼬아놓는 방식의 플롯의 강화를 통해 해소하려 하였습니다.

 

먼저 영화가 성공하게 된 부분에 대한 계승입니다. 뱀파이어 헌터물은 사실상 90년대 초에 이르러 이미 그 정형이 완성되다시피하여 뻔한 클리셰 소리를 들었습니다. 현대사회의 단절된 구조와 향락에 취약한 모습 등으로 인해 고대의 뱀파이어가 부활하게 되고, 공공에 밝혀지지 않은 사명을 지닌 뱀파이어 사냥꾼들이 뱀파이어를 쫓는다는 이야기 구조는 2000년대 중반까지 유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라큘라2000에서 다른 영화와 비교하여 차별화될 만한 요소로 꼽혔던 것이 바로 '드라큘라의 기원' 그리고 '뱀파이어의 힘을 이용하여 그를 쫓는 사냥꾼'이었습니다.

 

뱀파이어물의 적잖은 작품들은 루마니아의 역사적 인물에서 기원을 찾았습니다. 애초 드라큘라라는 이름 자체가 거기서 기인했죠. 이러한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초자연적 존재로서 뱀파이어를 그린 이들도 있었습니다. 뱀파이어의 이집트 기원담을 다룬 앤 라이스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본작은 특이하게 은화에 예수를 팔았던 유다가 죽었다 되살아나며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뱀파이어로 살아오며 드라큘라를 포함한 다양한 이름을 갖고 활동했다는 거죠. 전작에선 이는 짧게 지나가는 대사 몇 줄과 몇개의 씬에서만 드러나는 사실입니다만, 이를 통해 순식간에 캐릭터의 서사에 천년이 넘는 시간이 부여되었습니다. 특히나 기독교 문화권인 곳에서 이는 더욱 충격적으로 와닿았을 겁니다. 상반된다 여겨진 괴담과 종교를 뒤섞어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본작은 이 흥미로운 기원담에 더욱 문제되는 질문을 던져넣습니다. "유다가 되살아났고 그는 뱀파이어가 되었다. 유다의 배신으로 십자가에 못박혔던 예수는 3일 후에 부활했다. 과연 이들의 재회는 어떠한 형식이었을까?" 영화는 이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주진 않습니다. 하지만 피칠갑과 쾌락에 빠진 흡혈귀들의 모습과 함께, 누구보다 자신은 예수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예수 또한 자신을 사랑했다 말하는 드라큐라, 그리고 그가 전하는 환상을 보며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는 우피지 신부의 모습은 대사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뭔가 끔찍하고 엄청난 일'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외국의 사이트에선 '유다가 예수를 뱀파이어로 만들어 버렸다'는 정보가 많이 보였습니다만, 얼마든지 '예수가 유다를 뱀파이어로 만들었다'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장면이죠. 이는 유다의 배신은 결국 정해진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기독교 하에서의 해석과 함께 뒤섞이며, 그 어느쪽으로 해석해도 커다란 충격으로 와닿게 됩니다.

 

 

또한 전작에서 이야기의 해결의 단초가 되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중간자'라는 설정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습니다. 전작에선 방식으로 '뱀파이어의 피에 의해 고통은 받지만 반대로 뱀파이어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갖는다'라는 식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은 거머리를 통해 뱀파이어의 독은 제거하고 수명을 늘리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선에서 그쳤을 뿐, 나머지는 지극히 뻔한 방식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본작은 뱀파이어의 피에 의해 고통을 받는 우피지 신부와, 뱀파이어의 피로 자신의 질병을 치유받고 영생을 바라는 사람들을 동시에 제시하여 이야기에 변칙성과 다양성을 부여하였습니다. 이는 본작에서 딱히 촬영 분량이 많다고 하기 힘든 우피지 신부의 개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기능했죠.

 

그저 뻔한 냉혹하고 상처받아 거친 모습의 복수자에서, 번민하고 고통받지만 결국 이겨내고 절망하는 모습을 통해 인상적인 뱀파이어 사냥꾼의 모습을 그려낸 겁니다.

 

이제 전작에서 아예 갈아버린 요소들을 살펴봅시다. 상술했듯 본작은 전작과 사실상 별개의 영화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는 완전히 교체되어 버린 주역 배우들과, 달라져 버린 장르적인 재미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꼽고 싶은 것은 이야기의 구조입니다. 전작은 뱀파이어가 자신의 목표가 되는 소녀를 쫓고, 뱀파이어 사냥꾼들은 그것을 방해하며 뱀파이어를 물리치는 이야기를 취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추격전이며,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작은 뱀파이어와 그 대립자 사이 뱀파이어 추종자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을 끼워넣습니다. 물론 실제 극에선 뱀파이어 추종자라기보단 연구자들이 뱀파이어의 힘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만, 수행하는 역할은 결국 뱀파이어 추종자니까요. 여하튼. 전작의 쫓고 쫓기는 단순한 구조는, 본작에서 훨씬 복잡해집니다. 뱀파이어는 붙잡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이 추종자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을 혼란에 빠뜨려 자신의 목적에 맞게 움직이게 합니다. 법의 테두리 밖에 나가게 된 추종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뱀파이어를 이용하려 합니다만, 자신들이 뱀파이어에게 이용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뱀파이어 사냥꾼을 방해합니다. 그리고 뱀파이어 사냥꾼은 앞을 막아서는 것을 모두 물리치지만 단신이라는 한계와 뱀파이어가 만들어낸 또 다른 뱀파이어를 해치워야 하는 패널티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 세력은 각자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며 이야기를 보다 흥미롭게 만들어 줍니다.

 

상술했듯 본작의 제작비는 극장개봉영화보다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나라를 오가고 다양한 세트에서 촬영하는 전작과 같을 수는 없는 거죠. 실제로 드라큘라는 시체안치소에서 인수된 이후 영화가 끝날 때까지 폐가에 있습니다. 드라큘라를 추격하는 우피지의 액션은 지금의 액션영화들을 기대하고 본다면 맥빠지는 정도로 뭔가 부족합니다. 심지어 분량조차 그리 많지 않아 그가 영화의 메인 스토리에 개입하는 것은 그야말로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입니다

 

하지만 액션은 우피지가 소화하고 심리적인 스릴러는 드라큘라가 제공하면서 영화는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비로소 만났을 때, 영화는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안겨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독특한 결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는 뱀파이어 사냥꾼의 찬란한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피지는 뱀파이어의 피에 중독되었고, 그를 이겨내기 위해 매일 자신을 깎아먹는 고행을 해내야 합니다. 뱀파이어 추종자에서 이야기를 이끌고 가던 루크는 자신이 구하고자 하는 이가 스스로 뱀파이어를 따라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뱀파이어는 우피지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준 채 그를 무력화한 후 조소하며 떠나 버립니다. 한없이 배드엔딩에 가까운 이 형태는, 사실 속편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근래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승리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인피니티 워에서 빌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한 것과 거진 동일한 모습인 셈입니다.

 

전작에 비해 제작규모가 크게 줄어들면서 표현할 수 있는 폭이 제한되다보니 반대급부로 각본에 힘을 줬기에, 극의 완성도가 가장 높고, 장르적인 재미도 더 커졌으며, 추후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는 속편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도전적인 마무리가 가능했던 겁니다.

 

 

이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본작은 이전작과 사실상 별개의 영화라도 봐도 무방합니다. 전작의 주역들이 모조리 교체되었죠. 단순히 연기하는 배역이 바뀌었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아예 상기한 굵직한 설정 외엔 아예 캐릭터가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전작에서 개심아닌 개심을 하여 주인공을 다시 인간으로 돌려줬었던 드라큘라는 전작보다도 더한 악한이 되었고, 대놓고 헬싱의 이름을 계승하며 감시자 역할을 자처했던 이는 아예 존재조차 사라졌습니다. 아니 애초에 드라큘라의 시신을 수습하여 봉인했던 것이 전작의 마무리였던 것을 생각하면, 사실 본작은 전작을 부정하며 시작한 것과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이 뱀파이어 사냥꾼의 역할은 우피지 신부로 바뀌게 됩니다.

 

이는 상당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이 시리즈는 영화를 이끌고 가는 힘의 상당수를 우피지 신부의 매력에서 얻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피지의 절대적인 분량이 적은 2편에서야 어느 정도 균형이 맞습니다만, 3편이 되면 사실상 그의 원맨쇼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은제 작살과 말뚝을 박던 지극히 뻔한 캐릭터와 뻔한 액션을 보여주던 전작의 뱀파이어 헌터들에 비하면, 단련된 육체와 강인한 인상, 채찍과 사슬낫을 휘두르며 가차없이 뱀파이어를 도륙하는  우피지의 모습은 비교가 불가할 정도입니다. 극중 유일하게 나오는 동양인이라는 점도 이러한 인상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요.

 

또 이 영화는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악역이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전작은 여자 하나 꼬시려다 스스로 자멸해버린 전형적인 힘 세고 우둔한 거인류의 악당이었습니다. 말로는 뛰어나고 위협적이라고 하지만, 그가 초래한 위기는 소모적 캐릭터들로 충분히 타개가 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본작의 드라큘라는 죽다 되살아났고, 심지어 포박당한 채 자외선을 쬐고 있습니다만, 자신을 이용하려는 추종자 캐릭터들을 역으로 이용해 그들을 위기에 몰아넣고 역으로 자유를 되찾기에 이릅니다. 그들의 비틀린 욕망과 우연한 계기로 감염시킨 캐릭터를 아주 제한적으로 이용하면서 말이죠. 어떤 의미에서 본작의 주인공은 바로 이 드라큘라이며 대적자로 우피지 신부가 나온다고 봐도 될 정도죠.

 

이 두 캐릭터는 전작과 본작을 확실하게 차별화하면서, 영화가 뻔한 뱀파이어 헌터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게 만들어 줍니다.

 

 


 

 

 

 

호평하는 내용이 많으니 명작이겠지? ...라고 기대하고 보시면 실망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결국 본문은 이 영화의 비교군으로 여타의 뱀파이어 및 뱀파이어 헌터물을 내세운 게 아니라, 동 시리즈의 다른 두 영화를 잡고 있으니까요. 각잡고 만들어진 뱀파이어 및 뱀파이어 헌터물 명작에 비하면 영 어설프다는 생각이 드실겁니다. 또한 2000년대 초에 만들어진 비디오 영화다 보니 당시엔 색다르다 느껴진 부분도 현재 시점에선 흔해진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2편과 3편이 동시에 제작된 탓일까요, 저는 꽤 오랜 시간 2편과 3편의 이미지를 뒤섞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3편의 꽤 많은 부분이 날아간 형태로요.

 

다만 성직자 동양인 뱀파이어 헌터 우피지 신부 캐릭터는 지금와서도 눈에 띄고, 문제적인 설정과 암시, 이야기의 마무리는 독특한 감상을 가지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다양한 상황을 연기하는 제이슨 스콧 리의 팬이라면 더욱 재밌게 볼 수 있을 거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꽤나 재밌게 봤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전에 썼던 3편의 분량, 그리고 앞으로 쓸 1편의 분량 중에 2편의 내용이 가장 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