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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영화 주절주절]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그 때 그 시절 아동영화

지금의 심의등급제의 의의를 생각해보면 아동영화 내지 어린이영화라는 표현은 참 이상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전체관람가라는 표현은 모두가 볼 수 있다는 의미인데, 굳이 '아동'이라 그 대상을 한정하다니. 산업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최대한 많은 층을 타겟화하려 애쓰는데, 이미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상태에서 굳이 '애들만 보는 영화'라 굳이 한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심의제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접근과 표현의 제한을 의미합니다.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몇몇 컷을 잘라내어 등급을 더 낮추어 개봉했다는 영화의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곤 하는데, 이는 가이드에 제시된 표현의 제한을 어느 정도 따른다면 보다 많은 이들이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소리와도 같습니다. 실제로 역사적인 흥행을 기록한 영화들은 12세 내지 15세 관람가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성인들의 지도가 있다면 아이들도 볼 수 있는 수준의 수위에 해당하죠.

 

자, 여기서 하나의 맹점이 튀어 나옵니다. 전체관람가와 12세 혹은 15세 관람가는 또 차이가 있습니다. 전체관람가를 지향하는 게 경제적인 방식에서 더 올바른 추구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충분히 나올 수 있죠. 여기서 개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이 튀어 나옵니다. 12세, 세는 나이로는 14살이라는 것은 곧 중학생 정도의 연령인데- 사실 이 나이면 알 거 다 알죠. 영화의 관람이라는 측면에서 성인보다도 영화를 깊게 보는 이들이 종종 튀어나오는 나잇대이기도 합니다. 그 나이대의 이들에게 전체관람가는 상당히 유치한 수준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소재는 그래도 무난히 선택할 수 있고 표현만 은유적으로 해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12세, 15세 관람가와는 명백히 다릅니다.  전체관람가가 최대한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긴 하지만 그렇게 보지 않고, 그 윗 등급에서 더 많은 이들이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뭐 이러쿵 저러쿵 말을 계속했는데, 거칠게 말하자면 아동영화라는 표현엔 애들만 보는 영화라는 비하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소리입니다. 실제로 잘 만들어졌지만 전 연령대가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영화가 드물잖게 나오고, 가장 커다란 흥행을 선두하는 영화의 표현 등급이 12세, 15세 관람가가 다수인데 굳이 저렇게 지칭한 시점에서 더더욱.

 

아동영화의 전설. 영구와 땡칠이. 실제로 코미디언 심형래와 감독 남기남은 한국의 아동영화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자. 이제 '한국에서의 아동영화'라는 표현에 주목해 봅시다. 위에서 저렇게까지 뻔한 이야기를 지루하게 늘어놓은 것은, 아동영화의 또 다른 용례에 대해 살펴보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아동영화라는 표현은, 근래에 두가지 용례로 사용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첫째는 아이들을 주 관객 삼아 만들어지는 영화로, 상단의 저 심의제에 따른 분류법에 의한 것을 이야기할 때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90년대까지 한국에서 주로 만들어진 어린이 대상 영화들'로 쓰입니다.

 

당시 어린 아이들의 놀거리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2024년 지금과 가장 다른 것은 단연코 인터넷, pc, 게임의 존재입니다만 그보다 더 피부에 와닿는 것은 공중파tv 채널이 24시간 방송을 하지 않았다는 점일 겁니다. 실제로 공중파가 24시간 뉴스를 한 지 이제 10년이 조금 넘었다는 것을 요즘의 어린 세대들은 알지 못할 겁니다. 그 이전엔 오전6시부터 새벽1시까지 방영이 됐고, 그 이전엔 심지어 오후방송조차 없었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대충 오후 1시부터 5시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케이블tv는 당시에도 있었지만, 이게 완전히 대중화된 시기와는 또 약간의 시차가 있었습니다.

 

여하튼 어린 아이들이 tv리모콘을 쥘 수 있는 시간대엔 tv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그 이후 시간대가 되면 어른들에게 tv리모콘을 빼앗겼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 시간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린 아동영화로 문화생활을 하였습니다.  90년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아동영화의 이면엔 아이들의 놀거리가 부족하다는 현실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영구의 라이벌로 취급받던 맹구. 사람에 따라선 영구보다 더 뛰어난 바보 캐릭터라 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아동 영화에서는 종합적으로 영구가 더 우위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들은, 조금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대다수의 만듦새가 지금 극장가에 걸리는 영화들에 미치지 못합니다. 아니, 오늘 날 수준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곤 하는 ott직행영화들의 수준에도 못미치는 것들이 많을 정도고요. 실제로 b급 및 컬트영화 마니아로 불리던 평론가가 어떤 아동영화를 호평하면서 '당시 아동영화들은 오늘 날의 영화들과 같은 잣대로 평가하기 곤란하다'라는 말을 덧붙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정말 최소한의 만듦새로 찍어낸 것들이었습니다. 기획이나 제작환경이 어찌나 열악했는지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제대로 완결이 난 작품이 정말 가뭄에 콩나듯 하는 수준이었죠. 이들은 철저히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들로, vhs의 판매와 대여를 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였습니다. 애초에 극장가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수익추구의 방향성이 달랐습니다. 다른 기억과 섞인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 당시 아동영화 비디오는 일반적으로 대여료가 500원 정도였는데, 이는 신작이나 다른 인기작에 비하면 절반정도의 가격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즐기기 좋은 콘텐츠였다는 거죠.

 

사실상 90년대 스타일의 아동영화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소릴 듣던 시절에 나왔던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했지만 위 평가는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금 딴 길로 새볼까요? 지금은 아시아에서 영화를 가장 잘 만든다는 소리를 듣고 있고, 영화 외에 다양한 문화산업으로 전 세계적인 영향을 떨치고 있는 한국입니다만, 90년대엔 그러지 못했습니다. 영향을 주기 보단 받는 게 더 많았던 시절이죠. 언젠가 썼던 '내 인생과 만화 이야기'를 거칠게 요약하면, '한국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았고, 그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려 했는가'에 대한 일대기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인데, 이는 영화의 흐름상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아예 종속되다시피했던 만화에 비하면야 나았습니다만.

 

이는 독재정권 하에서 제대로 된 문화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술의 성장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궤를 같이 하는데, 그 엄혹하던 시기는 예술이 성장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죠. 90년대 이전까지의 한국 영화는, 물론 잘 만들어진 명작이 있었습니다만, 애석하게도 돈벌이용 수입 영화 사이를 때우기 위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상술했듯 이 땜질용 영화들은 해외의 영화들에 적잖은 영향을 받았는데, 사실 이는 단순히 영화의 수입만으로 이뤄진 일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홍콩 영화같은 경우엔 한국 영화계와 협업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있기도 했었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완성도로 후딱후딱 구색만 갖춰 만들어진 날림용 영화로 평가됐습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독재정권이 몰락하고 한국 영화도 성장했습니다.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고, 특기할 만한 영화들도 등장했죠. 하지만 지금처럼 관객층을 자세히 분석하여 세분화된 시기는 여전히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린이 회관을 대상으로 한 영화와, vhs로 바로 직행하는 영화들이 제작됩니다. 이들은 과거 날림용 영화들의 흐름을 잇는 존재들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산업자체의 기반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고, 그간 제작되던 흐름의 연장선상에 위치해 있으면서, 또한 그간의 제작 노하우가 나름대로 쌓인. 다만 그 타겟층이 아동에 한정된.

스트리트 파이터 가두쟁패전. 그 시절엔 그냥 별 생각없이 봤었는데, 나이 들고 보니 무협지의 온갖 클리셰가 녹아있더군요. 그래서 재미면에선 딱히 흠 잡을 게 없습니다.

 

당시 만들어진 아동영화는 몇가지 특성을 가지는데, 아이들이 몰입할 만한 스타 캐릭터가 주인공이고, 액션이 가미되어 있으며, 독창성보다는 순수하고도 철저하게 아동의 재미에만 집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뭐,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첫째 정통배우보다는 코미디언이나 다른 만화나 게임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둘째로 당시 홍콩의 액션 영화들과 어느 정도 궤가 통하는 면이 있을 정도로 생각보다 액션 자체는 괜찮은 경우가 많고, 셋째로 도용이나 표절에 한없이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정말 철저히 어린이들이 보는 것에만 방점이 찍혀있었기 때문에, 상술했듯 '완성도를 기준으로 당시의 영화들을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어떤 평론가가 이야기했을 정도니까요. (계속 반복해서 인용은 하는데 그 평론가가 누구였는지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질 않네요..)

 

실제로 당대 어린이 영화의 대표주자인 '영구와 땡칠이'의 경우, 지금와서 보면 괴이할 정도로 편집이 심각하게 튀거나 앞뒤 장면이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로 튀어나옵니다. 영화극으로 따지자면 불합격에 한없이 가깝지만, 어쨌든 당대를 평정한 히트작이고, 무엇보다 영화보다 무대에 가까운 인상의 영화기 때문에 이것을 심각한 하자로 여기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뢰매. 뭐가됐건 아동영화 시장에서 심형래와 김청기의 존재감을 보여줬던 시리즈.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갑자기 아동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건 딴 게 아닙니다. 유튜브 추천영상에 당대 아동영화들이 떴길래 클릭해봤더니, 옛생각이 나서 한번 줄줄 읊어 봤습니다.